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도시 쓰레기 선별장 근무자 한씨의 하루: 우리가 버린 것들의 마지막을 보는 사람

yugoon 2025. 7. 27. 21:29

우리가 매일 버리는 쓰레기는 수거차에 실려 사라진 뒤 어디로 갈까? 대부분은 선별장으로 향한다. 재활용할 수 있는 것과 폐기해야 할 것을 나누는 이곳에서, 사람들의 손으로 마지막 선택이 이뤄진다. 한정호(가명) 씨, 49세. 그는 12년째 도시 쓰레기 선별장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버려진 것들’을 직접 마주해왔다.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것 속에 그들의 삶이 다 보여요. 먹다 남은 음식, 깨진 물건, 쪽지 하나까지.” 오늘은 한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우리가 쉽게 잊는 쓰레기의 마지막 과정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버린 도시 쓰레기를 선별하는 근무자

새벽 5시, 선별장의 하루가 시작된다

한씨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 쓰레기 트럭들이 줄지어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작업복과 안전장갑, 방진 마스크를 착용한 그는 먼저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류된 컨베이어 벨트 위로 올린다. 플라스틱, 종이, 캔, 유리, 음식물 쓰레기까지 한꺼번에 섞여 들어오는 걸 손으로 직접 골라내야 한다. “기계가 해주는 것도 있지만, 사람 손만큼 정확한 게 없어요.” 그는 속도를 맞춰 손을 움직이며 플라스틱에서 비닐을 떼고, 유리병에서 금속 뚜껑을 분리한다. 선별장의 공기는 늘 무겁지만, 그 속에서 그는 묵묵히 하루를 시작한다.

 

냄새와 먼지, 그리고 반복되는 노동

선별장의 가장 큰 적은 냄새와 먼지다. 특히 여름철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빠르게 부패해 악취가 심하고, 파리와 벌레가 들끓는다. 한씨는 작업 중 마스크를 두 겹으로 쓰지만 금세 젖어버린다. “아무리 익숙해도 냄새는 참기 힘들어요. 그래도 할 수밖에 없죠.” 먼지 속에서 일하다 보면 호흡기 질환이나 피부 트러블이 생기기 쉽지만, 그는 꾸준히 건강검진을 받으며 버티고 있다. 힘든 환경이지만, 그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버려진 것 속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삶

한씨는 선별장에서 일하며, 쓰레기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버려진 물건 속에는 사람들의 흔적과 이야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이 사진이 붙은 앨범, 오래된 편지, 한 번도 뜯지 않은 선물 상자… 그는 가끔 그런 물건들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의 추억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어요. 우리가 버린다는 건 끝이라는 의미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그는 재활용 가능한 물건들을 분리할 때마다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자부심도 느낀다. “우리가 분리한 것들이 다시 쓰여요. 그게 이 일의 보람이죠.”

 

한씨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면 그 뒤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별장의 노동자들은 그 끝을 매일 마주한다. “사람들은 우리 일을 잘 몰라요. 하지만 우리가 없으면 도시는 하루도 돌아가지 못할 거예요.” 한씨는 매일 반복되는 분리 작업 속에서도 책임감을 잃지 않는다. 그는 버려진 것 속에서 삶의 무게를 보고, 동시에 그 무게를 덜어내는 일을 한다. 오늘도 그는 무심히 버려진 것들 속에서 묵묵히 도시의 순환을 지키고 있다.

 

동료들과의 침묵 속 연대

한씨는 선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말을 많이 나누지 않는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쉴 새 없이 쓰레기가 올라오기에, 말 대신 손으로 소통하는 시간이 많다. 하지만 눈빛만 봐도 서로의 상태를 알 수 있다. 힘든 냄새에 지쳐도, 손이 베이거나 팔이 아파도, 서로 잠깐씩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무언의 연대감은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 “우린 다들 알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우리끼린 서로를 이해하니까요.”

 

사람들에게 바라는 작은 변화

한씨가 가장 바라는 건 사람들이 쓰레기를 조금 더 신경 써서 버려주는 것이다. 음식물이 담긴 페트병이나 기름 묻은 종이, 깨진 유리와 플라스틱이 섞여 있으면 선별 작업이 더 어려워진다. “조금만 헹구고 버리면 일이 훨씬 수월해져요.” 그는 시민들이 분리배출 규칙을 제대로 지킬 때마다, 그 작지만 큰 배려에 감사함을 느낀다.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준다는 게 느껴질 때 힘이 나요.”

 

버려진 것에서 느끼는 삶의 아이러니

선별장에서 일하다 보면 한씨는 삶의 아이러니를 자주 느낀다. 어제까지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물건이 오늘은 쓰레기가 되어 굴러다니기 때문이다. 명품 가방, 거의 새 것 같은 가전제품, 심지어 포장도 뜯지 않은 물건까지 버려지는 걸 보면 복잡한 감정이 든다. “누군가는 필요해서 쓰레기통을 뒤지는데, 누군가는 멀쩡한 걸 버리죠. 그 차이가 참 씁쓸해요.” 하지만 그는 동시에 그 물건들이 다시 재활용되어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본다.

 

한씨가 꿈꾸는 미래의 선별장

한씨는 언젠가 선별장이 더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으로 바뀌길 바란다. 최근 자동화 기술이 도입되며 일부 작업은 기계가 대신하지만, 여전히 사람 손이 닿아야 하는 부분이 많다. “기계가 해도 마지막 확인은 사람이 해요. 그게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니까요.” 그는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재활용률이 높아져 쓰레기가 줄어드는 미래를 꿈꾼다. “우리가 하는 일이 사라지면 가장 좋은 거예요. 버려질 게 없는 세상, 그게 제 진짜 바람이에요.”

 

오늘도 조용히 흐르는 손길

퇴근길, 한씨는 늘 선별장을 한 번 더 돌아본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남은 작은 먼지와 쓰레기까지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그의 습관이다. 그렇게 깨끗해진 작업장을 보고 나면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사람들은 모르죠. 우리가 여기서 하루 종일 손으로 무언가를 골라냈다는 걸. 근데 괜찮아요. 깨끗하게 돌아가는 도시를 보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한씨는 오늘도 묵묵히 우리가 버린 것들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내일도 다시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