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바퀴를 돌리는 손 – 공유자전거 정비사 민씨의 하루
출퇴근 시간, 지하철역 앞 대여 거치대는 늘 분주하다. 누군가는 첫 차를 놓치고도 자전거로 시간을 만회하고, 또 누군가는 버스 환승 대신 두 정거장을 페달로 이어 붙인다. 이 ‘도시의 빈틈’을 메우는 이동 수단 뒤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공유자전거 정비사 민수호(가명) 씨, 37세. 그는 매일 수백 대의 자전거를 점검하고, 바람 빠진 바퀴에 숨을 불어 넣고, 고장 신고가 들어온 자전거를 다시 도로로 돌려보낸다. “우리가 놓치면 다음 이용자의 하루가 꼬여요. 그래서 이 일은 단순 수리가 아니라, 시간을 되돌려주는 작업이죠.”
새벽, 회수 라운드의 분주함
민씨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된다. 밤새 도심 곳곳에 흩어진 고장 신고 자전거를 회수하는 이른바 ‘새벽 라운드’가 첫 일정이다. 밴에 기본 공구와 예비 바퀴, 튜브, 체인, 브레이크 패드, 라이트 모듈을 실어 출발하면, 앱에 표시된 붉은 핀을 순서대로 찍고 다닌다. 거치대에서 쉽게 고칠 수 있는 경미한 결함은 현장에서 바로 처리한다. 타이어 공기압만 적정선으로 맞춰도 라이딩 감각은 놀랄 만큼 달라진다. “도시에 다시 아침이 오기 전, 최대한 많은 자전거를 정상화하는 게 목표예요.”
고장과 마모를 읽는 진단의 기술
정비소로 들어온 자전거는 먼저 진단대에 올려 세밀 검사를 한다. 휠 트루잉 스탠드로 림의 흔들림을 잡고, 토크 렌치로 주요 볼트의 조임 상태를 확인한다. 케이블 장력, 변속기의 인덱싱, 디스크 로터의 간섭, BB(바텀 브래킷)의 유격, 헤드셋의 마찰—민씨는 손끝의 감각으로 ‘정상’의 기준을 기억하고 있다. 브레이크 패드는 1mm 남짓이 되기 전에 교체하고, 체인은 늘어남(스트레치) 게이지로 마모도를 체크한다. “이용자가 급브레이크를 잡아도 휘청이지 않게 만드는 게 기본이죠. 자전거는 고장이 아니라 ‘작은 불편’에서 사고가 납니다.”
라이트와 자물쇠, 소프트웨어의 세계
공유자전거는 하드웨어만 고치는 직업이 아니다. 스마트락, GPS 모듈, 배터리 관리보드(BMS), 펌웨어 상태도 정비사의 영역이다. 라이트가 켜지지 않거나 잠금이 풀리지 않는 신고의 절반은 전기·통신 문제에서 비롯된다. 민씨는 진단용 동글을 연결해 오류 코드를 확인하고, 펌웨어를 업데이트하거나 모듈을 교체한다. “배터리 잔량이 남아 있어도 BMS가 셀 밸런스를 잘못 읽으면 전원이 차단돼요.” 하드와 소프트, 두 세계를 가로지르는 일이 그의 일상이다.
데이터가 안내하는 재배치
정비가 끝난 자전거는 어디로 보내야 가장 잘 쓰일까. 민씨는 운영팀이 제공하는 ‘수요 히트맵’과 기상·행사 정보를 참고해 재배치 동선을 짠다. 비가 오면 하천변 수요가 줄고, 시험기간에는 대학가 수요가 치솟는다. 출근 시간대엔 환승역 외곽의 주거지 거치대에, 퇴근 무렵엔 업무지구 근처에 물량을 미리 깔아둔다. “정비가 품질을 올린다면, 재배치는 접근성을 올립니다. 둘이 함께 굴러야 가동률이 올라가죠.”
시민과 마주하는 순간들
현장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페달이 헛돌아요”와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아요.” 민씨는 체인의 이탈 방지 가이드와 텐션 조절법, 브레이크 레버의 유격 조절 팁을 짧게 안내한다. 고장이 아니더라도 안장 높이를 맞추지 못해 불편을 겪는 이용자가 많다. 안장은 대퇴골 길이를 기준으로 대략 엉덩이뼈 높이까지, 멈췄을 때 발끝이 땅에 살짝 닿을 만큼이 적당하다. “사용법을 알면 불만의 절반은 줄어요.” 그는 작은 안내가 큰 체감 품질로 이어짐을 체감한다.
계절이 바꾸는 정비의 우선순위
장마철에는 방수 실링과 커넥터 청결이 생명이다. 물기가 침투하면 커넥터의 그린코로션이 진행되어 통신이 끊기는 경우가 많다. 겨울에는 염화칼슘 탓에 체인과 스프라켓이 빠르게 녹슨다. 민씨는 비수기엔 프레임 내부에 방청제를 도포하고 케이블 하우징을 교체해 봄철을 준비한다. 여름 폭염기에는 타이어 공기압을 소폭 낮춰 열팽창에 대비하고, 겨울에는 반대로 조금 높게 유지한다. 계절을 읽는 정비는 사고를 줄이고, 내구성을 늘린다.
안전을 위한 보이지 않는 규칙들
공유자전거 정비에는 팀만의 ‘불문율’이 있다. 브레이크는 언제나 앞·뒤 동시 교체, QR 레버는 마지막에 재확인, 체인 핀은 압입 후 시각·촉각 이중 검사, 고무 부품은 교체일자 표기. “사고의 90%는 사소한 절차를 건너뛰었을 때 생겨요.” 민씨는 신규 입사자에게 체크리스트의 의미를 ‘왜’로 설명한다. 규칙을 따르는 이유를 알면, 현장에서는 더 창의적으로 위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간 긴급콜과 보수의 시간
심야에 들어오는 긴급콜은 대부분 쓰러진 자전거, 도난 의심, 집단 파손 신고다. 그는 경찰·구청 합동 대응망과 연결해 현장을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인근 거치대의 물량을 임시로 늘린다. 다음 날 새벽, 불균형해진 거치대는 재배치로 다시 평형을 찾는다. “밤이 일의 끝이 아니라, 다음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이에요.” 도시가 잠든 사이 정비는 계속된다.
팀워크, 물류, 그리고 창고의 질서
정비사의 시간은 오롯이 손만 움직이는 시간이 아니다. 파츠를 적기에 조달하고, 창고를 정돈해 찾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생산성의 절반이다. 민씨의 창고는 모듈·소모품·공구가 셀 단위로 라벨링 되어 있다. 들어온 순서와 나가는 순서를 맞추는 FIFO 원칙, 수리 이력과 결함 유형을 파츠 로트와 매칭하는 트래킹 시스템 덕분에 불량률 원인 분석도 가능하다. “정비는 결국 정보 싸움이에요. 손보다 먼저 움직이는 건 데이터죠.”
미래의 바퀴를 그리다
민씨는 앞으로 공유자전거가 전동 어시스트와 급속 충전 스테이션, 헬멧 자판기 같은 주변 인프라와 결합하리라 본다. 배터리 스와핑을 표준화하면 운영 효율이 올라가고, 자전거 전용 도로망이 촘촘해질수록 안전은 더 강화된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공유 킥보드·대중교통·주차장 데이터와 연동된 ‘첫/마지막 1km’ 플랫폼이 도시의 기본 인프라가 될 것이라 말한다. “우리는 바퀴를 고치지만, 사실은 도시의 시간을 연결하고 있어요.”
페달을 한 번 더, 도시가 한 번 더 굴러가게
정비소 문을 닫기 전, 민씨는 마지막으로 다음 날 라우트를 점검한다. 자전거 몇 대가 더 도로로 돌아갈 수 있을지, 어느 거치대가 아침 러시에 버틸 수 있을지, 그는 머릿속으로 도시의 페달을 한 번 더 밟아본다. “우리가 하루를 다 채웠다는 확신, 그게 출근길 이용자 한 사람의 안도감이 되면 좋겠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시의 바퀴를 돌리는 손, 공유자전거 정비사의 하루는 그렇게 닫히고 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