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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물을 다시 자연으로 – 하수처리장 미생물 운영기사 서씨의 하루

yugoon 2025. 8. 14. 22:26

우리는 수돗물을 쓰고 변기의 레버를 내리는 것으로 하루를 끝낸다. 그 이후의 과정은 대개 잊힌다. 그러나 도시의 끝에서, 또 다른 시작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 하수처리장 미생물 운영기사, 서지훈(가명) 씨는 41세. 그는 매일 도시가 내보낸 물을 미생물의 호흡으로 정화해 강으로 돌려보낸다. “하수는 더럽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저희 눈엔 ‘살아 있는 수질 데이터’예요. 숫자를 읽고, 냄새를 듣고, 물의 표정을 보는 일이죠.”

 

도시의 물 하수처리장 미생물 운영기사

새벽, SCADA 화면 앞의 점검

새벽 5시 반, 서씨는 중앙제어실에서 SCADA 화면을 켠다. 유입 유량, 유기물(TOC·COD 계열 온라인 센서), 용존산소(DO), pH, 수온, 반송슬러지(RAS) 유량, 잉여슬러지(WAS) 인출량, 송풍기 가동률… 수십 개의 그래프가 밤새 남긴 흔적을 훑는다. 알람 로그를 점검하고, 유입펌프의 교번 운전 기록과 우수우회(Storm Bypass) 밸브 상태도 확인한다. “밤사이 비가 왔는지, 공정이 얼마나 흔들렸는지 데이터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숫자들이 먼저 ‘안녕’을 건네죠.”

미생물의 컨디션을 묻다

폭기조로 내려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슬러지 농도(MLSS)와 슬러지 벌킹 지표(SVI)를 재는 것이다. 소형 채수기로 시료를 떠서 원심분리기에 돌리고, 현장형 탁도계로 대략의 농도를 본 뒤 실험실에서 정밀 측정한다. DO는 1.5~2.0mg/L 사이를 유지하도록 자동제어가 걸려 있지만, 교반 강도와 미세기포 분포는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미생물도 컨디션이 있어요. 플록이 탱글하게 뭉치면 건강한 날, 솜처럼 풀어지면 스트레스 받은 날이죠.”

질산화·탈질의 호흡을 맞추다

서씨의 손끝은 질소의 길을 따라 움직인다. 1단 폭기조에서 암모니아성 질소가 아질산·질산으로 산화(질산화)되고, 무산소조에서 탄소원을 먹고 질산이 질소가스로 빠져나간다(탈질). 그는 RAS 비율을 조정해 미생물을 무산소조로 더 보내거나, 탄소원(내부탄소·외부메탄올)을 미세하게 보강한다. “DO가 높으면 탈질이 멈추고, 너무 낮으면 질산화가 주저앉아요. 두 호흡의 박자를 맞추는 게 일의 절반이죠.”

균형의 기술, F/M과 SRT

하루 유입 유기물 부하가 변동할 때는 F/M(유기물대미생물비)과 SRT(슬러지 체류시간)를 동시에 본다. 유입이 많아지면 WAS를 줄여 미생물 체류시간을 늘리고, 반대로 저부하가 지속되면 잉여슬러지를 늘려 노화된 슬러지를 뽑아낸다. SVI가 150을 넘기 시작하면 벌킹·스컴을 의심하고, 응집을 돕기 위해 폴리머를 소량 투입하거나 교반 조건을 바꾼다. “숫자는 교과서지만, 현장은 미생물의 표정이에요. 둘을 동시에 봐야 길을 잃지 않아요.”

장마와 건기의 두 얼굴

폭우가 쏟아지는 날엔 우수와 함께 유입수가 묽어져 유기물 농도가 급락한다. 부하는 줄지만 체류시간도 짧아져 질산화가 미끄러지기 쉬운 상황. 서씨는 단계별 송풍기 제어로 산소 과공급을 피하고, 무산소조 체류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RAS 비율을 조정한다. 반대로 한여름 건기에는 수온 상승으로 미생물 대사 속도가 빨라져 DO가 바닥나기 쉬우므로 에어 디퓨저 점검과 블로워 예열을 서두른다. “같은 공정이라도 계절에 따라 완전히 다른 동물이 돼요.”

스크린·침사·슬러지의 무게

전처리동에서는 스크린이 머리카락과 거름망을, 침사조가 모래와 작은 자갈을 걷어낸다. 그 뒤에 오는 1차침전지의 부상·침전물은 슬러지 처리동으로 보낸다. 농축조와 탈수기(벨트프레스 또는 원심탈수기)에서 고형물을 짜내며 폴리머 주입량을 최적화한다. “슬러지는 물의 그림자예요. 물이 깨끗해질수록 슬러지는 더 무거워지죠.” 악취가 강한 슬러지 구역은 바이오필터·활성탄 흡착·약액세정이 층층이 지킨다.

냄새보다 무서운 건 H₂S

처리장에선 냄새가 민원으로 가장 빨리 도착한다. 서씨는 탈취설비 DP(압력손실)와 약액 농도를 확인하고, 환기량을 조정한다. 하지만 그가 더 경계하는 건 황화수소(H₂S)다. 저농도에서도 후각이 둔해져 위험을 놓치기 쉽고, 고농도는 순식간에 의식을 앗아간다. 밀폐공간 작업 전에는 가스측정기·송기마스크·감시자 배치가 필수다. “냄새는 참을 수 있어도, 방심은 치명적이에요.”

현미경 아래의 도시

실험실에서 그는 플록을 얇게 펼쳐 현미경을 들이댄다. 섬모충이 활발하고, 나비날개 같은 로타리퍼가 적당히 보이면 공정이 안정적이라는 신호. 편모충이 급증하면 저부하를, 세포외다당(EPS)이 과다하면 벌킹 징후를 의심한다. “미생물 군집은 도시의 축소판이에요. 다양성이 건강을 만들죠.” 그는 관찰 결과를 운전일지에 기록하고, 내일의 RAS·WAS 계획을 수정한다.

에너지와 탄소중립의 실험실

서씨의 또 다른 관심은 에너지. 블로워 전력은 공정 전체 소비의 절반을 먹는다. 그는 DO-피드백 제어로 송풍량을 줄이고, 슬러지 소화조에서 발생한 바이오가스로 보일러를 돌려 열을 회수한다. 일부 슬러지는 소각 대신 건조·재활용(토양개량재) 파일럿을 돌린다. “물은 깨끗해지되, 탄소발자국은 줄어드는 공정. 그게 다음 세대의 처리장이죠.”

시민을 위한 투명성

처리수 방류구로 가면 수면은 맑고 잔잔하다. 방류수는 투명하지만, 그 투명함을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다. 서씨는 주 1회 시민 견학 프로그램에서 장비와 공정을 설명한다. “하수처리장은 혐오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폐를 닦는 시설이에요.” 그는 원수·처리수 수질표를 공개하고, 악취 민원에 대한 대응 기록도 안내한다. 이해가 늘어나면 불안이 줄어든다.

서씨가 바라는 내일

서씨는 ‘예측 운전’을 꿈꾼다. 강우 예보·유량 예측·미생물 상태를 모델로 엮어, 공정이 스스로 미리 준비하는 시스템. 동시에 그는 인간의 감각을 잃지 않겠다고 말한다. “결국 마지막 1%는 사람의 눈과 코, 손끝이에요. 그 1%가 도시의 강을 지킵니다.”

물의 문장

퇴근 전, 그는 운전일지를 덮고 방류수 표면을 한 번 더 바라본다. 낮은 햇빛이 수면을 비추며 잔물결이 번진다. “아침보다 조금 더 맑아졌다면, 오늘도 성공한 거죠.” 도시는 다시 물을 마시고 내보낸다. 그리고 서씨는 내일도 미생물의 호흡을 맞추러, 또 한 번의 새벽으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