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위에 뿌려진 씨앗
서울 마포구의 한 중층 건물 옥상. 햇살이 가득한 그곳에 조성된 작은 정원은 철제 화분과 재활용 플라스틱 상자들로 빼곡하다.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이지영(가명) 씨는 옥상텃밭 조성 전문가다. 그는 7년 전 도시농업에 입문한 후 지금까지 수십 개의 건물 옥상을 초록으로 바꿔왔다. “옥상은 도시에서 유일하게 남은 개방 공간이에요. 여기에 흙을 올리고 씨앗을 심는 건, 도시 속 자연을 되찾는 일이죠.” 아스팔트에 익숙해진 도시인에게 흙을 밟는 경험은 낯설고 신선하다. 그는 다양한 건물 구조에 맞춰 경량화된 배양토, 물빠짐 구조, 방수층 설계를 통해 도시형 텃밭을 설계하고 시공한다.
농사와 기술의 조우
옥상텃밭은 단순한 흙 작업이 아니다. 무게 제한과 배수, 자외선과 바람 등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지영 씨는 처음부터 건축구조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안전성과 지속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IoT 기술을 도입해 수분 센서와 온도 조절 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수분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원격 물주기를 할 수 있어요." 덕분에 텃밭을 처음 접하는 초보 도시농부들도 큰 어려움 없이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이씨는 기술이 농사의 접근 장벽을 낮추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을 키우는 텃밭
옥상텃밭이 가져오는 변화는 식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씨는 주로 지역 아파트 주민자치회나 초등학교, 요양시설과 협업해 공동 텃밭을 운영한다. 주민들이 함께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수확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대화와 연대가 생긴다. 특히 그는 요양병원 옥상에 조성한 치유텃밭 프로젝트를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는다. "치매 초기 어르신들이 매일 토마토와 고추를 돌보며 감각을 회복하고 표정이 밝아졌어요."
도시농업의 가능성
최근 이지영 씨는 도시농업 관련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텃밭을 통한 도시 생태계 복원과 기후 위기 대응의 가능성을 강조하며, 초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옥상 위 텃밭은 미세먼지를 줄이고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도시농업은 단지 채소를 기르는 게 아니에요. 도시와 사람의 관계를 바꾸는 일입니다.” 이씨는 더 많은 건물이 옥상 녹화를 도입하고, 시민이 직접 농사를 통해 도시 환경에 참여하는 사회를 꿈꾼다.
계절과 함께하는 도시의 변화
이지영 씨의 작업은 계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봄에는 모종을 심고, 여름엔 해충과의 전쟁, 가을에는 수확의 기쁨, 겨울에는 휴식과 설계를 반복한다. 사계절의 흐름 속에서 도심의 옥상은 작은 농촌처럼 생명력이 넘쳐난다. 특히 그녀는 겨울철에도 버려진 나무상자와 유휴 자재를 재활용해 퇴비를 만들고, 다음 해를 위한 씨앗을 선별하는 작업에 몰두한다. "계절을 느낀다는 건 단지 기온이 바뀌는 게 아니라, 삶의 리듬이 생긴다는 거예요."
도시 건축과의 공존
옥상텃밭은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지영 씨는 공간의 일조량, 바람의 방향, 건물의 구조를 철저히 분석한 후 식물 배치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강풍이 부는 고층 빌딩에는 키 작은 채소를 배치하고, 일조량이 많은 남향 옥상엔 허브류나 가지과 식물을 주로 심는다. 건축 요소와 자연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이 작업은 단순한 농사 이상의 도시 설계에 가깝다. 그녀는 도시 환경에 맞춘 생태 설계를 통해 도심 속 녹색 공간을 늘려가고 있다.
텃밭이 만든 공동체
옥상텃밭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교차점이 되기도 한다. 같은 건물에 살아도 한 번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이웃들이 텃밭을 통해 인사를 나누고, 수확한 채소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씨는 공동체 텃밭에서 생긴 작은 변화를 예로 든다. "한 번은 텃밭을 계기로 주민들끼리 김장 모임을 열었는데, 그 후로 서로 도와주고 돌보는 문화가 자리 잡았어요." 텃밭은 단지 식량을 길러내는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연결을 복원하는 장이기도 하다.
꿈꾸는 미래
이지영 씨는 장기적으로 공공기관과 협업해 도시농업 정책에 기여하고자 한다. 특히 학교, 공공도서관, 복지시설의 옥상 공간을 활용한 '생활농업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이를 통해 도시 전체에 생태적인 연결망을 만들고, 도심 속 식량 자급률을 소폭이나마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 "누구나 자신의 먹거리를 일부라도 키울 수 있는 도시, 그것이 제가 꿈꾸는 미래예요." 그녀의 손길이 닿은 옥상들은 지금도 조용히 도시의 숨을 불어넣고 있다.
정책과 제도의 벽
이지영 씨는 도시농업이 더 확산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옥상 공간 활용에 대한 규제가 여전히 엄격하고, 녹지 조성을 위한 인허가 절차도 까다롭다. “건물주는 선뜻 허락해주지 않고, 행정도 느려요.” 그녀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도시농업 관련 조례를 현실적으로 개선하고, 세제 혜택이나 지원금을 통해 시민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텃밭을 통한 교육 혁신
또한 그녀는 옥상텃밭이 미래 세대의 교육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몇몇 학교에서는 텃밭을 통해 생물학, 환경, 협동심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아이들의 반응도 뜨겁다. "손으로 흙을 만지며 배우는 수업은 아이들에게 가장 강한 기억으로 남아요." 그녀는 학교마다 최소한의 텃밭 공간이 마련되고, 정규 교과과정과 연계되는 교육 모델이 보편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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