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당연히’ 나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물이 집에 도달하기까지는 수십, 수백 킬로미터의 관로를 지나야 하며, 그 어느 지점에서라도 미세한 균열이 생기면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땅속으로 사라진다. 그 새는 물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상수도 누수 탐지 기사, 윤지훈(가명) 씨는 12년째 도시의 지하 관망을 귀로, 손끝으로, 데이터로 더듬으며 보이지 않는 누수를 찾아 막아왔다. “한 방울이 모이면 강이 되듯, 미세 누수도 시간이 지나면 도시의 자원을 삼켜요. 우리가 듣는 건 물소리지만, 사실은 도시의 심장박동이죠.”
새벽, 소리를 듣기 위한 준비
윤씨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된다. 누수 탐지는 도시가 조용해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장비 체크리스트를 점검한다. 지중청음기, 데이터 로거, 코릴레이터(상관기), 가스 추적 장비, 금속 탐지기, 그리고 최근 도입된 지표투과레이더(GPR)까지. 현장용 태블릿에는 GIS 기반 관로도면과 과거 파손 이력이 담겨 있다. “장비가 많아 보이지만 결국 기본은 귀예요. 장비는 귀로 들은 의심을 확인해주는 증거죠.” 팀원들과 간단한 브리핑을 마친 뒤, 그는 오늘의 1차 목표 구간으로 향한다.
청음에서 상관까지, 소리로 그리는 지도
현장에 도착하면 윤씨는 먼저 밸브박스와 소화전, 계량기 주변에 청음기를 댄다. 물이 흐르는 배경음 속에서 금속을 타고 전달되는 날카로운 ‘쉬익’ 소리, 규칙적이거나 비정상적으로 진동하는 음색을 구분해낸다. 의심 지점이 잡히면 두 개의 센서를 관로 양 끝에 설치해 상관기를 돌린다. 두 센서가 감지한 소음의 시간차를 분석해 누수 위치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낮엔 교통 소음, 배관 주변 기계 진동 때문에 신호가 깨져요. 그래서 새벽이 필요하죠.” 겨울엔 얼어붙은 지면이 소리를 더 단단하게 전달하지만, 한편으로는 균열이 급격히 커질 위험도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데이터로 확인하는 직감, 발로 보정하는 좌표
장비가 찾아준 좌표는 ‘가능성’일 뿐이다. 윤씨는 표면 변형, 미세한 지반 함몰, 보도블록의 들뜸, 흙의 습윤 정도를 육안으로 점검한다. 필요하면 지표투과레이더로 관 주변 밀도 변화를 스캔하고, 가스 추적 장비로 수소 혼합 추적가스를 주입해 누수를 역추적한다. “장비가 가리킨 지점이 30cm만 어긋나도 굴착 면적이 두 배로 늘어요. 그래서 마지막 1m는 사람의 감각이 완성합니다.” 그는 태블릿에 현장 사진과 청음 스펙트럼, 상관 결과를 기록하고, 관리 시스템에 실시간 업로드한다.
굴착과 복구,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성과
누수로 의심되는 지점에 굴착 허가가 떨어지면 도로의 일부를 절개한다. 아스팔트 아래로 모래층과 매립재를 걷어내면 금속 혹은 폴리에틸렌 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헤어라인처럼 가느다란 균열, 플랜지 주변의 미세 누수, 오래된 주철관의 핀홀… 윤씨는 관재와 압력, 주변 연결 관의 상태를 확인해 고무링 교체, 슬리브 보강, 관절부 재체결 등 최적의 조치를 택한다. “가끔은 우리가 판 지점이 멀쩡하고, 50cm 옆이 터져 나올 때도 있어요. 그 한 뼘을 줄이는 게 숙련의 차이죠.” 복구가 끝나면 도로 포장을 원상복구하고, 인근 가옥의 수압과 수질을 다시 점검한다.
계절과 시간, 그리고 위험의 패턴
누수는 계절을 탄다. 한파가 이어진 다음 날, 혹은 큰 일교차가 있는 봄가을에 신고가 폭증한다. 오래된 관로일수록 열팽창·수축에 민감해 미세 균열이 벌어진다. 폭우 뒤에는 지반이 약해져 관의 지지력이 떨어지면서 눈에 보이지 않던 누수 지점이 갑자기 붕괴로 이어지기도 한다. 윤씨는 이런 패턴을 팀원들과 공유하며 예방 점검 루트를 조정한다. “신고가 없다고 안전한 게 아니에요. 조용할 때가 오히려 점검할 때죠.” 그는 위험 예보처럼 누수의 ‘날씨’를 읽는다.
시민과의 대화, 오해를 풀어내는 기술
현장에 굴착 장비가 들어오면 민원이 따라붙는다. 소음과 통행 불편, 단수에 대한 불만은 당연하다. 윤씨는 공지 전단과 휴대용 스피커로 작업 시간을 안내하고, 대체 급수 포인트를 표시해 드린다. “어르신들은 수도세가 아까워서 새는 물을 그냥 흘려보내기도 해요. 누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문제라고 설명합니다.” 때로는 누수 때문이 아닌 내부 배관 문제로 방문한 가정도 있다. 그는 그럴 때일수록 친절하게 원인을 설명하고, 설비업체 연결까지 돕는다. 기술만큼 중요한 게 설명의 언어다.
팀워크와 안전, 그리고 작은 의례
누수 탐지는 항상 2인 1조 이상으로 움직인다. 좁은 맨홀 아래로 내려갈 땐 가스 측정과 송기 마스크를 확인하고, 지상 요원이 무전으로 상태를 상시 체크한다. 굴착 시엔 지중매설물 지도와 실제 위치가 다를 수 있어 가스관, 통신관을 ‘손 파기’로 먼저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장에서 서로의 버릇을 알아야 사고를 막아요. 우리는 작업 시작 전에 손전등 점멸, 손짓 신호를 한 번씩 맞춰봅니다.” 반복된 의례는 긴장을 풀고 사고를 예방하는 팀의 약속이다.
물의 도시를 위한 데이터와 꿈
윤씨는 누수를 막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데이터’라고 믿는다. 수압 로거와 유량계, 스마트 미터에서 올라오는 시간대별 변화는 숨은 누수를 조기에 드러낸다. 그는 관로 교체 우선순위를 정하는 예측 모델 구축에도 참여하고 있다. “새 관을 무작정 까는 게 아니라, 위험도와 비용을 정밀하게 맞추는 게 시대의 정답이죠.” 그의 꿈은 마을 단위의 디지털 트윈 수계도를 완성해, 누수가 생기기 전에 스스로 알리는 도시를 만드는 것. 그때에도 사람의 귀와 손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 확인은 인간이 하죠. 그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니까요.”
윤씨가 남기는 한 줄
퇴근길, 윤씨는 오늘의 청음 스펙트럼과 상관 결과를 다시 훑어본다. 내일 새벽 첫 점검 구간을 표시하고, 고무장갑과 청음기 헤드의 패드를 새것으로 교체한다. “물이 ‘당연히’ 나오게 하는 사람들. 그게 우리의 직업 설명서예요.” 도시의 물길이 소리 없이 흐르도록, 그의 귀는 내일도 어둔 새벽을 향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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