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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도시의 문을 지키는 사람 – 지하철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기사 장씨의 하루

출근길, 열차가 들어오면 문과 문이 정확히 맞물리며 선로가 벽처럼 닫힌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줄을 맞추고, 신호음과 함께 스크린도어가 열리면 아무 일 없다는 듯 탑승한다. 장민호(가명) 씨는 39세, 11년 차 지하철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기사다.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지 않는 게 최선이에요. 아무 문제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는 선로와 승강장의 경계, 그 얇은 선 위에서 매일 ‘당연한 안전’을 정비한다.

 

지하철 문을 지키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새벽, 첫 차보다 먼저 여는 점검표

장씨의 하루는 첫 차가 투입되기 전, 역무실에서 SCADA 단말과 정비 앱을 켜는 일로 시작된다. 역별 고장 이력, 문짝별 개폐 횟수, 센서 에러 로그, 비상 개방 장치 상태 등을 확인하고, 오늘의 예방점검 목록을 뽑아든다. 선로 전원을 차단하고 감시자를 배치한 뒤, 승강장 측 문틀의 레일을 닦고 이물질을 제거한다. 도어 구동부의 감속기 오일 누유, 롤러의 편마모, 도어벨트 장력, 리미트 스위치 위치 편차를 하나하나 체크한다. “아침 혼잡 전에 작은 편차를 1mm라도 줄여야 오후의 큰 고장을 막습니다.”

문과 열차가 ‘만나는 점’의 정밀도

스크린도어의 핵심은 열차와의 정합이다. 정차 오차가 커지면 문과 문이 어긋나고, 센서가 위험을 감지해 도어가 열리지 않거나 잦은 재개폐가 발생한다. 장씨는 정차 마크와 차륜마모 데이터를 참고해 정위치 보정값을 미세 조정한다. 가속·감속 패턴이 달라진 신규 편성 투입 시에는 시험 운행을 반복하며 도어 컨트롤러의 허용 오차 범위를 다시 설정한다. “기계와 기계의 악수는 0.1초, 몇 밀리미터의 세계예요.”

센서의 언어를 해독하다

광센서, 적외선 커튼, 압력센서, 비상경보 스위치… 승객 안전을 지키는 수많은 센서는 고장이 아니라 ‘오염’으로도 오동작한다. 미세먼지, 물방울, 광고물의 반사, 겨울철 코트의 퍼(Fur) 끝이 광선을 끊는 경우까지. 장씨는 센서값의 분포를 보고 민감도를 조정하거나, 차단부의 조도·각도를 재배치한다. “센서는 솔직해요. 다만 우리가 그 언어를 배워야 하죠.” 기록은 곧 매뉴얼이 된다. 같은 계절, 같은 시간대의 ‘반복되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다.

혼잡 시간, 긴급출동의 분 단위 전쟁

피크타임에 고장 신고가 뜨면 초 단위로 상황이 흘러간다. 도어가 닫히지 않으면 열차가 떠나지 못하고, 플랫폼은 순식간에 포화가 된다. 장씨는 무전으로 관제와 연결해 운행을 일시 홀딩하거나, 수동 개방으로 승객을 분산시킨다. 구동부 이상이면 결함 도어만 일시 격리해 나머지 문으로 승하차를 유지하고, 센서 오염이면 현장에서 즉시 청소·리셋을 병행한다. “완벽한 해결이 아니라, 1분 안에 안전한 임시해법을 만드는 능력이 관건이에요.”

선로라는 작업장, 안전의 절차들

선로에 들어서는 모든 순간은 위험과 접한다. 장씨 팀은 전원차단·잠금(Lock-out/Tag-out), 제3자 확인, 감시자 지정, 위험물 위치확인(케이블덕트·신호기) 등 표준 절차를 엄격히 지킨다. 고소작업차 없이 트랙 위에서 작업할 때는 안전로프와 절연장갑, 난간형 이동바리로 최소한의 방어선을 친다. “기술은 사고 후에 좋아져요. 안전은 사고 전에만 작동합니다.” 매번 똑같은 ‘의례’가 생명을 지키는 장치다.

부품의 수명과 교체의 타이밍

스크린도어는 수만 번 열리고 닫힌다. 롤러와 베어링은 소리로 먼저 신호를 보내고, 벨트는 섬유가 풀리기 시작하면 파단까지 시간이 길지 않다. 장씨는 부품별 MTBF(평균고장간격)과 실제 사용 패턴을 비교해 교체 주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한다. 혼잡역은 계절별로 피로가 누적되므로 성수기 전 선제 교체를 원칙으로 한다. “가장 싸게 고치는 법은 고장나기 ‘직전’에 바꾸는 거예요.”

이용자와의 짧은 대화가 만든 변화

승강장에서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설명을 반복한다. “문이 닫히면 밀지 마세요, 열차 출입문과 동시에 움직여요.” “안쪽 노란선 뒤에서 대기해주세요.” 어떤 날은 유모차 승객이 점형블록(시각장애인 유도블록) 때문에 끊기는 구간을 지적했고, 그 피드백은 곧바로 동선 안내 스티커 개선으로 이어졌다. “안내 방송보다 더 강력한 건 현장에서 들은 한마디예요.” 그는 이용자와의 대화를 데이터처럼 기록한다.

빗물과 한파, 계절이 만드는 변수

장마철엔 문틀 하부 배수구가 막히며 모터가 침수 위험에 노출된다. 실리콘 실링을 보강하고, 배수 트랩을 정기적으로 청소한다. 겨울엔 결빙으로 레일이 팽창·수축하며 리미트 위치가 미세하게 어긋나고, 냉기로 센서 오동작 빈도가 오르는 만큼 예비 가열 장치를 가동한다. 미세먼지가 심한 봄철에는 광센서 렌즈를 교체 주기보다 앞당겨 세척한다. 계절은 곧 예방점검 캘린더다.

데이터로 만드는 예방정비

최근 팀은 도어 개폐 전류와 속도, 개폐시간 변화를 데이터로 수집해 이상 징후를 예측한다. 특정 문이 평균보다 0.2초 느려지거나 전류 피크가 높아지면 ‘주의’ 알람을 띄우고, 야간에 선제 분해·청소를 배정한다. 정비 앱에는 부품 교체 이력과 고장 유형이 자동 축적되어 역별 취약부를 보여준다. “사람의 감을 데이터가 뒷받침해줘요. 둘이 만나면 고장은 뉴스가 아니라 기록이 됩니다.”

타 부서와의 합, 하나의 시스템으로

스크린도어는 혼자 작동하지 않는다. 신호·차량·관제·역무가 맞물려야 한다. 장씨는 관제팀과 정차 허용오차, 차량팀과 출입문 구동력, 역무팀과 혼잡 완화 동선을 상시 조율한다. 현장 파편을 연결해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는 일이 곧 그의 정비다. “누군가 1초를 양보해야 모두가 10분을 벌어요.”

사고를 막은 ‘별일 아닌’ 습관

몇 해 전, 그는 타 역 지원 중 바닥 청소요원이 남겨둔 미세한 금속 파편을 발견했다. 손톱만 한 조각이 레일과 롤러 사이로 말려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장씨는 그날 이후 점검 후 ‘빈손 걷기’라는 체크를 만들었다. 작업 후 1m 구간을 천천히 걸으며 눈에 밟히는 이물질을 주워 담는 루틴. “큰 사고를 막는 건 늘 별일 아닌 습관이에요.”

퇴근길, 귓속에 남는 소리

막차가 지나간 뒤 플랫폼에 서면, 역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진다. 장씨는 문이 닫히는 마지막 소리를 들어본다. ‘슥— 철컥’. 그 소리가 일정하면 내일도 괜찮을 것이다. “우리가 지키는 건 문짝이 아니라 사람의 리듬이죠.” 그는 다시 내일의 체크리스트를 열어, 첫 차보다 먼저 오는 새벽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