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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사찰 공양주로 살아온 8년: 조용한 부엌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향내보다 먼저 퍼지는 따뜻한 밥 냄새

사찰은 조용하다.
종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공간.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도 매일 새벽 가장 먼저 깨어나는 사람은 있다.
바로 부엌에서 공양을 준비하는 사람, 공양주다.

공양주는 절에서 스님들과 방문객, 수행자, 때로는 대중들을 위해 매 끼니의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식사를 마련하는 일을 넘어, 노동이 수행이 되고, 정성이 기도가 되는 자리에서 일하는 존재다.

최영자(가명) 씨는 전북 남원의 한 산사에서 공양주로 8년째 봉직 중인 60대 후반의 여성이다.
도시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다 은퇴 후 산사로 들어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스님들의 공양을 준비하고, 절에서 나는 재료로 정갈한 채식을 만든다.

그녀는 말한다.
“이 부엌은 조용하지만, 여기가 사찰의 심장 같은 곳이에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하루가 먼저 시작되니까요.”

오늘은 최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조용한 부엌 안에서 피어나는 정성과 수행,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공양주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새벽 3시, 하루의 첫 불을 지피는 시간

공양주의 하루는 사찰 종각의 새벽 타종보다도 먼저 시작된다.
최씨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작은 손전등을 켜고 부엌으로 향한다.
겨울엔 부엌이 꽁꽁 얼어 있기 때문에, 불을 지피는 게 하루의 첫 일이다.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불부터 피워요. 그래야 물도 끓고, 밥도 지을 수 있으니까요.”

그녀가 맡은 사찰은 상주 스님 6명과 수행자, 때때로 오는 방문객까지 하루 평균 15~20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식사는 철저히 채식으로, 고기와 향신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조미료도 최소한의 국간장, 집에서 담근 된장, 마늘, 생강 정도다.
“단맛은 무에서, 감칠맛은 다시마에서 나와야 진짜지요.”

그녀는 보통 쌀 씻기 – 국 끓이기 – 나물 데치기 – 장 반죽 – 반찬 배열 순으로 일을 시작한다.
동시에 대형 솥에서 죽을 끓이고, 소박한 나물 한두 가지를 준비해 ‘무심한 듯 정성스러운 식사’를 완성한다.

“공양은 자극적이지 않아야 해요.
정신을 맑게 하고, 욕심을 줄여주는 게 음식의 역할이에요.”
그녀의 손끝은 말이 없지만, 정성을 담은 밥상 하나가 수행자들의 하루를 열어준다.

 

노동은 수행이고, 음식은 마음의 거울이다

공양주에게 음식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가장 먼저 들키는 통로다.
“화가 난 날은 나도 모르게 간이 세지더라고요.
몸이 피곤하면 된장국이 텁텁하게 나와요.
공양은 내 안의 상태가 그대로 반영돼요.”

그래서 그녀는 하루 세 번 밥을 짓지만,
그보다 더 많이 하는 건 자기 마음 다잡기다.
음식을 하는 동안에도 마음을 고요히 유지하려 애쓴다.
“소금 뿌리면서 기도해요.
‘이걸 먹고 하루를 잘 보내시길’ 하고.
그냥 마음으로요.”

공양주는 늘 조용히 일한다.
식사 시간이 되면 스님들이 묵언으로 식당에 들어오고,
그녀는 빈 그릇을 보고 다시 음식을 리필하거나, 필요한 재료를 조용히 보충한다.

그녀는 음식이 많이 남았을 때 가장 마음이 쓰인다고 한다.
“혹시 반찬이 짰을까, 밥이 설익었을까.
그날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아요.”

공양주라는 자리는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성을 기르는 수행의 공간이다.
그녀는 그 부엌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다스리는 중이다.

혼자 있는 시간, 그러나 결코 외롭지 않은 자리

공양주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
하지만 최씨는 그 시간이 외롭다기보다 평화롭다고 말한다.
“불 앞에서 가만히 국을 저을 때, 그 시간이 참 좋아요.
바람 소리, 국 끓는 소리,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
이런 걸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지금밖에 없거든요.”

하루 식사가 끝나면 오후에는 식기 정리, 쌀 씻기, 재료 손질, 장독 관리, 다음날 준비를 한다.
텃밭에서 무나 배추를 캐기도 하고, 고추장 항아리 뚜껑을 열어 상태를 살피기도 한다.
절기마다 김장, 된장 담그기, 묵 만들기, 산나물 절이기 같은 작업도 이어진다.

“여기선 계절이 음식이에요.
봄에는 취나물, 여름엔 애호박, 가을엔 들깨, 겨울엔 묵은지.
그냥 자연 따라가요.”

특별한 날엔 법회, 초하루, 백중, 산신제 같은 일정에 맞춰
더 많은 공양을 준비해야 한다.
그럴 땐 자원봉사자나 사찰 내 다른 보살님들이 도와주지만,
전체 조율과 맛 조정은 공양주가 책임진다.

“공양주는 물러나면 안 돼요.
맛이 흐트러지면 전체가 흐트러져요.
내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조율하는 거예요.”

그녀가 바라는 건 고요한 식탁 위의 고마움

최씨는 공양주 일을 시작하고부터
‘음식은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한다.
“도시에선 장사였어요.
이윤 남겨야 하고, 손님 붙잡아야 했죠.
여기선 아무도 돈을 내지 않아요.
그런데도 내가 더 정성을 들이게 되더라고요.”

그녀는 사람들이 사찰 공양을 ‘밍밍하다’, ‘심심하다’고 할 때
그 말이 이상하게 아프다고 했다.
“그 심심한 맛이 바로 마음을 덜어내는 맛인데…
그걸 못 느끼는 게 안타까워요.”

그녀는 공양주로서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일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식사 끝에 스님이 그릇을 닦아 반납하거나,
조용히 합장하며 눈인사를 건넬 때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느낀다.

“음식은 말하지 않지만, 마음은 전해져요.
누군가 그걸 알아채는 순간, 그 부엌은 부처님 방보다 고마운 곳이 돼요.”

최씨는 오늘도 새벽 가장 먼저 불을 지핀다.
부엌에선 국이 끓고, 쌀 씻는 물이 따뜻하다.
고요한 부엌에서 사람을 위한 하루를 준비하는 손길.

그녀는 말한다.
“공양주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자리지만,
그 자리가 없으면 절도 하루를 시작할 수 없어요.
그게 제가 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