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숲, 그곳엔 매일 삶과 죽음이 함께한다
사람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흙 위에 자라는 한 그루의 나무가,
이제는 사람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수목장은 말 그대로 ‘나무 아래에 고인을 모시는 묘역’이다.
묘지 대신 숲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최근 몇 년 사이 환경적 가치와 생명 존중의 의미로 주목받는 장례 방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자연장지를 매일 관리하고, 비석 없는 묘역을 정비하며, 고인을 돌보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박영호(가명) 씨는 충청 북부의 한 공공 수목장지에서 6년째 관리인으로 근무 중인 60대 중반의 남성이다.
그는 매일 아침, 나무와 함께 잠든 이들의 묘역 확인, 헌화 정리, 조경 손질, 유가족 안내, 자연 훼손 방지 등의 업무를 맡는다.
“비석이 없으니까 더 조심해야 해요.
여기가 누군가의 부모고, 자식이고, 마지막 자리니까요.”
오늘은 박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우리가 모르는 숲 속의 장례 공간,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아침 7시, 나무 아래 이름 없는 묘역을 걷다
박씨는 아침 6시 30분에 수목장지에 도착한다.
이곳은 약 6천 평 규모로, 총 2,500여 고인이 나무 아래 모셔져 있다.
묘비 대신 지름 30~50cm 정도의 표지석이 나무 아래 땅속에 묻혀 있으며,
각 고인의 위치는 GPS와 관리자 도면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표식이 작고 자연 친화적이라 외부인 눈엔 그냥 숲처럼 보여요.
하지만 우리한테는 여기가 다 주소예요.”
그의 하루는 전날 다녀간 유가족이 남긴 헌화나 비닐, 캔, 음식물 등을 정리하는 일로 시작된다.
수목장은 자연장지이기 때문에 플라스틱, 인공 장식물, 비료, 살충제 등은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도 음식을 놓거나 향을 피우는 분들이 많아요.
마음은 이해하지만, 동물이나 곤충이 몰리고 나무에 안 좋아요.
그래서 매일 다 돌아다니면서 조용히 치워요.”
박씨는 나무마다 줄기 상태, 뿌리 노출 여부, 토양 습기, 주변 생태 이상 여부를 꼼꼼히 살핀다.
“이 나무 하나가 한 사람의 묘지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단순히 조경수라고 보면 안 돼요.”
그는 나무가 병들거나 가지가 꺾이면 해당 유가족에게 먼저 연락하고,
필요하면 나무 교체나 이식까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무덤은 없지만, 책임은 더 무겁다
수목장은 무덤이 아니다.
하지만 박씨는 말한다.
“무덤이 없으니까 오히려 더 책임감이 커요.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그분이 있다는 걸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그는 고인에 대한 기록, 유족 방문 이력, 나무 상태 변화를 전부 일지에 남긴다.
“기억해주는 게 없는 사람들 대신, 내가 기록이라도 남겨야죠.”
가장 힘든 건 비 오는 날의 관리다.
비가 많이 내리면 토양이 무르고, 표지석이 떠오르거나
이름표가 흐릿해져 유가족이 위치를 못 찾는 일이 발생한다.
그럴 때면 박씨는 우비를 입고 손에 종이 지도를 들고 유족과 함께 묘역을 찾아다닌다.
“유족이 눈물 흘리면 말 못 하겠어요.
그냥 같이 묵묵히 걸어요.
‘괜찮습니다’ 이 말만 해도 위로가 되니까요.”
박씨는 때때로 장례 당일 유족을 맞이해 자연장 위치를 안내하는 업무도 맡는다.
그럴 땐 묵묵히 일정에 따라 안내하면서도, 유족의 말없는 표정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핀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이분이 오늘 어떤 마음으로 오셨는지.”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자란다
수목장은 슬픔이 가라앉는 공간이다.
묘비도, 봉분도, 묘석도 없이
그저 흙과 나무, 그리고 조용한 바람만 흐른다.
하지만 박씨는 그 속에서 매우 생생한 생명의 기운을 느낀다.
“매년 봄이면 새순이 올라오고, 여름이면 나무가 더 자라요.
고인이 잠든 그 땅 위에서 나무가 숨 쉬는 걸 보면,
진짜 삶과 죽음이 이어진다는 걸 실감하죠.”
그는 나무를 ‘고인을 품은 생명’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가지치기를 할 때도, 가위질 하나에 신중을 기한다.
“마구 자르면 나무도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게 곧 고인께도 실례가 되죠.”
박씨는 일을 하면서 사람이 죽은 뒤에도 누군가 돌봐줄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새삼 느낀다고 했다.
“사람들이 돌아가신 부모님 나무를 쓰다듬고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모습이 가장 따뜻해요.”
때로는 찾는 가족이 없어도 스스로 나무를 닦고 가지를 정리하며,
그분을 대신 기억하는 것이 박씨의 역할이다.
“안 찾아오셨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이 나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그분을 돌보는 사람이에요.”
박씨가 바라는 건 '기억해주는 것'
박씨는 수목장 관리인이란 직업에 대해 누군가 기억해주는 일이 드물다고 말한다.
묘지가 없고, 표지판도 없으니
사람들은 이곳을 그냥 ‘공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원은 공원이지만, 여기엔 누군가의 인생이 묻혀 있어요.”
그는 누가 특별히 고마워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단지 이 공간을 조금 조심스럽게 바라봐 주는 마음만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닐 한 장 안 놓고 간다든지, 나무를 함부로 흔들지 않는다든지.
그런 것들이 다 예의죠.”
그는 올해도 나무 하나하나의 성장 기록을 노트에 쓰고,
찾는 이 없는 나무 밑에 물 한 바가지라도 더 붓고 간다.
“나무가 잘 자라야 마음도 편해요.
여기가 잊힌 자리가 아니란 걸 알려주는 게 제 일이죠.”
박씨는 오늘도 숲을 걸으며 조용히 말 없이 일한다.
그가 남긴 흔적은 종이 한 장에 적힌 기록일 수 있지만,
그 공간을 다녀간 사람들에겐 고요한 위로로 남는다.
비석 없는 묘역에서, 생명을 품은 나무를 돌보는 손길.
박씨는 오늘도,
사람이 떠난 뒤를 가장 조용하게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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