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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폐가 철거 작업자 김씨의 하루: 붕괴 직전의 공간을 정리하는 사람

사람이 떠난 자리를 마지막으로 지나는 사람들

도시의 시간은 늘 새로운 것만 향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엔 반드시 사라지는 무언가가 있다.
재개발 구역, 낡은 상가, 방치된 주택.
한때는 누군가의 삶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담장이 허물어지고 창문은 깨진 채
도시의 뒤편에 조용히 놓인 공간이 있다.

그곳을 마지막으로 마주하고,
무너질 준비가 된 건물 속을 정리하고 해체하는 사람이 있다.

김민수(가명) 씨는 인천 지역에서 폐가 철거 작업을 9년째 해오고 있는 50대 중반의 건축 철거 기술자다.
주로 재개발이나 도시정비사업 이전, 혹은 방치된 위험주택 해체 작업을 맡아
폐기물 분리, 구조물 제거, 위험물 정리, 현장 안전조치 등을 담당한다.

“사람들은 그 집을 한 번쯤은 스쳐지나갔을지도 몰라요.
근데 그 집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그 안을 걷는 건 우리밖에 없어요.”

오늘은 김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눈에 띄지 않는 철거 현장의 이면
그 속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감정과 위험을 조명해보자.

붕괴 직전 공간 정리를 필요로 하는 곳

하루의 시작은 폐가 내부 구조부터 읽는 것

김씨는 보통 하루 2곳에서 작업한다.
현장마다 상태가 달라, 하루는 비교적 정돈된 철거 예정 가옥이고
또 하루는 벽이 무너지고 지붕이 내려앉은 ‘위험 판정 주택’일 때도 있다.

현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건 건물의 전체 구조와 붕괴 가능성을 파악하는 일이다.
“지도에 표시된 구조랑 실제 집이 다를 때도 많아요.
벽은 이미 한쪽 무너졌고, 바닥이 내려앉았는데 구조도면엔 그게 없어요.”
이럴 땐 감과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장에 남은 것들은 모두 쓰레기로 분류되지만,
그 안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쓸쓸하게 놓인 아이 장난감, 찢어진 가족사진, 벽에 걸린 달력,
사용하지 않은 약 봉투, 반쯤 마른 이불.

김씨는 말한다.
“이게 쓰레기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겐 남겨진 마지막 물건인지…
가끔 헷갈릴 때도 있어요.”

집 안에 가득 쌓인 오래된 책 더미나 벽장 안에 숨겨진 골동품을 발견할 때도 있다.
“한 번은 서랍 속에서 옛날 돈뭉치를 찾았어요.
가짜였지만, 그 순간엔 약간 긴장되더라고요.”

폐가 철거는 그냥 ‘부수는 일’이 아니라
공간을 해체하며 사람의 자취를 읽는 일이기도 하다.

철거는 무거운 짐보다, 예기치 못한 위험과 싸우는 일

많은 이들이 철거 현장을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맞다. 무거운 시멘트 블록, 녹슨 철제, 대형 가전제품, 파손된 가구 등
모든 걸 손수 들어서 정리하고 분리해야 한다.
하지만 김씨는 말한다.
“진짜 힘든 건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긴장 속에서 일하는 거예요.”

한 번은 철거 중 내부 계단이 무너져 동료가 다리를 접질린 적이 있다.
계단이 나무였는데 속이 다 썩어 있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밟는 순간 뚝 하고 꺼져버렸다.

비 오는 날에는 미끄러진 바닥 때문에 못에 찔리거나 넘어지는 사고가 많다.
김씨 본인도 팔뚝을 찢어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업자들은 산재 처리 없이, 개인 비용으로 치료한다.
“대부분 일용직이고, 외주이기 때문에
업체에서도 책임지려고 안 해요. 그냥 개인 실수로 넘어가는 거죠.”

또 하나의 문제는 건축폐기물 분리 기준이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타일, 콘크리트, 목재, 스티로폼, 유리, 전선, 가구는 각각 따로 분리해야 하고,
운반 차량도 종류별로 다르다.
작업자는 그 모든 걸 현장에서 수작업으로 정리해야 한다.

“도시가 깨끗해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 밑에서 우리가 뭐든 다 분리해서 처리하고 있다는 건
잘 안 알려진 일이죠.”

버려진 것들을 치우며 마주하는 감정들

김씨는 철거를 하면서 가장 이상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고요한 공간에 혼자 서 있을 때다.
“사람이 없는데, 어떤 감정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벽에 붙은 흔적, 침대의 눌린 자국, 책상 위 먼지가 말해줘요.
여기 누가 살았구나, 여기에 시간이 있었구나.”

철거 도중 그는 종종 사진, 편지, 유품, 기념품을 마주친다.
한 번은 벽장 안에 묶인 편지뭉치를 발견했고,
그 안엔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짧은 말들이 반복되어 있었다.
"그걸 보면서 참 이상한 감정이 들었어요.
이걸 쓴 사람도, 받은 사람도 다 없는 거잖아요."

이런 물건들을 그냥 버릴 수 없어서
별도로 모아 따로 폐기하거나 보관한 뒤 정중히 처리하는 게
그의 나름의 방식이다.
“나는 어차피 청소부가 아니에요.
사람이 살았던 공간을 정리하는 사람이에요.”

그는 동료들과 작업을 하면서도 자주 말을 하지 않는다.
폐허 속에서 쌓이는 감정은 대화로 쉽게 꺼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눈빛으로 알죠. 오늘은 좀 무거운 곳이구나. 오늘은 빨리 끝내고 싶구나.”

김씨가 바라는 건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부로 보지 않는 것

김씨는 폐가 철거 일을 시작한 후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집은 벽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집이에요.
사람이 떠난 공간은, 그냥 구조물이죠.
그래서 무너뜨릴 수 있는 거예요.”

그는 작업이 끝난 후에도 자주 뒤를 돌아본다.
하루 종일 함께 했던 공간이 이제 텅 비어 있고,
다음 날이면 굴착기와 포클레인이 들어와 흔적 없이 사라질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본 건물은 이제 세상에 없어요.
근데 그걸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책임감처럼 남아요.”

김씨는 특별한 보상을 바라진 않는다.
그저 사람들이 도시가 변할 때, 그 밑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고 말한다.

“철거는 사라지는 걸 정리하는 일이지만,
그걸 정리하는 사람도 있다는 건 꼭 기억해줬으면 해요.”

그는 오늘도 다시 철거 예정지로 향한다.
오래된 벽, 삐걱이는 문, 바스러진 계단,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처럼 묵묵히 손을 움직인다.

폐허 속에서 질서를 세우고,
사람이 살았던 공간을 존중하며 지워나가는 손.

그게 김씨가 도시를 떠받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