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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분리수거장 관리인 이씨의 기록: 뒤섞인 쓰레기 속 질서를 세우다

사람들이 버린 것들을 다시 세우는 사람

아파트 단지에서 분리수거장은 하루 중 가장 무질서한 공간이 된다.
누군가는 재활용과 쓰레기를 구분하지 않고 버리고,
누군가는 야심한 시각에 몰래 음식물이나 가구 조각을 섞어 놓고 간다.
아침이면 박스, 페트병, 종이, 비닐, 쓰레기가 뒤엉켜 ‘환경’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혼란을 정리하고, 뒤섞인 물건들 속에서 다시 질서를 세운다.
이영복(가명) 씨는 경기 남부의 한 1,000세대 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분리수거장 관리인으로 7년째 근무 중인 68세 남성이다.
매일 아침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는 단지 내 3곳의 분리수거장을 돌며 재활용품 분류, 불법 투기 단속, 적재 정리, 민원 대응을 맡는다.

그는 말한다.
“환경이 지켜지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지키는 거예요.
제 일이 눈에 안 띄는 게 오히려 잘되고 있다는 뜻이죠.”
오늘은 이씨의 하루를 통해 사람들이 잊고 있는 ‘쓰레기 이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침 6시, 어제의 흔적부터 정리하는 일

이씨는 매일 아침 단지 전체를 한 바퀴 돈다.
3개 동을 중심으로 나뉜 분리수거장은 각각 박스, 캔류, 플라스틱, 스티로폼, 유리병, 비닐, 폐건전지 등의 전용 통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규칙대로 버려지지 않는다.

“제일 흔한 게 음식물 묻은 플라스틱, 안 헹군 우유팩, 비닐봉투에 섞어 버린 박스예요.”
이씨는 먼저 눈에 띄는 혼합 쓰레기를 골라낸 후, 손으로 일일이 종류별로 나눈다.
페트병 뚜껑을 돌려 빼고, 라벨을 찢고, 젖은 박스를 제거한다.
“사람들이 버리면서도 '누가 하겠지' 하는데, 그 누가가 나예요.”

그는 하루에 300~400kg가량의 재활용 쓰레기를 직접 손으로 옮긴다.
주 3회 고물상이 오면 그때까지 분류된 물품을 부피별로 압축, 포개기, 끈 묶기 작업을 마쳐야 한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불법 투기다.
밤늦게 몰래 가구, 매트리스, 폐건축 자재, 고장난 전자제품 등을 버리는 주민도 있다.
“CCTV 있어도 안 잡혀요. 이름표도 안 붙여요.
결국은 내가 정리해야죠.”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질서를 세우다

고단함보다 힘든 건 무관심

이씨는 하루 종일 고개를 숙이고 손을 움직인다.
손끝은 종종 상처가 나고, 비닐에 묻은 음식물은 장갑 안까지 스며든다.
겨울엔 손이 얼고, 여름엔 악취와 파리가 들끓는다.
“제일 힘든 건 여름이에요.
스티로폼 안에 썩은 국물이나 생선 뼈 넣고 버리면... 바로 구더기 생겨요.”

하지만 그는 육체적 고단함보다 더 힘든 건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말한다.
“지나가면서 인사 한 마디 없이 문 쾅 닫고 가는 사람들 보면,
내가 투명인간이 된 느낌이에요.”

가끔은 주민이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넣는다.
‘왜 냄새가 나냐’, ‘왜 청소가 안 되어 있냐’는 말.
“제가 청소한 걸 치우는 사람이 바로 민원 넣는 사람이에요.
그거 보면 한숨 나죠.”

그래도 그에게 가장 큰 보람은 아이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할 때라고 한다.
“어른보다 아이가 먼저 인사하면… 그날 하루가 다릅니다.”
그는 사람들의 무관심 사이에서 작은 인정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기준을 지키는 손길

이씨는 분리수거장의 질서를 ‘누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 혼합 쓰레기를 다시 분류하고
잘못 배출된 폐기물에는 경고 스티커를 부착한다.
“종이컵을 종이로 착각해서 버리는 분들 진짜 많아요.
겉은 종이지만 안은 코팅이에요. 일반 쓰레기죠.”

그는 틈틈이 아파트 입구 게시판에 ‘분리배출 안내문’을 붙이고, 경비원과 함께 방송 안내도 한다.
그럼에도 변화는 더디다.
“처음엔 10명 중 2명만 제대로 버려도 다행이었어요.
지금은 4~5명까지는 괜찮아요. 조금씩 나아지는 거죠.”

한 번은 초등학생이 재활용을 하러 와서 “라벨은 떼야 하죠?”라고 묻는 걸 듣고,
집에 돌아가 울컥했다고 한다.
“내가 뭘 가르친 건 아닌데, 누군가 배웠구나 싶었어요.”

이씨는 정확하게 분리된 재활용품은 비용이 되고,
혼합 쓰레기는 오히려 처리비용이 든다는 걸 주민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제대로 하면 돈이 돼요.
잘못하면 다 태우는 데 돈 드는 거고요.
결국 손해는 우리 동네가 보는 거예요.”

이씨가 바라는 건 쓰레기를 보는 태도

이씨는 이제 은퇴를 고민 중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만두고 나면 분리수거장이 다시 어질러질까 걱정이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내가 없으면, 여긴 금방 무질서해질 걸 알아요.”

그는 쓰레기를 줄이라는 말보다,
‘버리는 걸 제대로 보라’는 말을 더 하고 싶다.
“이건 쓰레기가 아니에요.
누군가가 다시 분리하고 정리해야 자원이 되는 거죠.”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내가 이걸 마지막까지 정리한 사람이라면,
이건 그냥 쓰레기가 아니라, 내 일이에요.”

그는 내일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혼자 고개를 숙이고 뒤섞인 플라스틱과 종이 사이를 구분할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어지럽게 돌아가도록 손을 대는 사람.

이영복 씨는 쓰레기 속에서 질서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손끝이, 우리가 버린 뒤의 세상을 다시 이어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