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사라진 도시에서 누군가는 벌을 지키고 있다
도시는 점점 더 높아지고, 빠르게 돌아간다.
콘크리트로 덮인 빌딩 사이, 사람들은 꽃이 피는지도, 새가 우는지도 모른 채 바쁘게 걷는다.
그런 도시의 중심 한복판에서, 작은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도시 양봉가다.
양봉은 보통 농촌이나 산속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도시의 옥상이나 공원, 폐교, 공공기관의 유휴 공간을 활용한 ‘도시 양봉’이 늘어나고 있다.
꿀을 얻는 목적을 넘어서, 생태계 보존, 도시 생물 다양성 회복, 환경교육이라는 더 큰 의미를 가진 직업으로 자리잡는 중이다.
김재훈(가명) 씨는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구청 건물 옥상에서 도시 양봉을 시작한 지 5년째인 40대 중반의 남성이다.
처음엔 단순한 취미였지만, 지금은 매일 꿀벌 수천 마리를 돌보고,
주기적으로 꿀을 채취하고, 도시 환경에 맞춘 벌통 관리를 진행하며
도심 속 생명을 지키는 조용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벌을 무서워해요.
하지만 벌이 없으면 우리가 먹는 식탁도 없어요.
나는 벌과 도시 사이에서 균형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오늘은 김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도시라는 콘크리트 세계 안에서 벌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침 7시, 옥상 위 벌통과의 첫 인사
김씨의 하루는 아침 7시에 시작된다.
출근 전에 옥상으로 올라가 벌통 주변의 안전 여부를 먼저 점검한다.
“도시 양봉은 건물 사람들과 공존해야 하니까
벌이 흥분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는 방충복을 입기 전, 벌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먼저 본다.
날씨, 기온, 습도에 따라 벌들은 행동 패턴이 달라진다.
“날이 흐리면 벌이 잘 안 나가고, 햇살이 강하면 일벌들이 일찍 움직여요.
벌도 예민한 도시 생물이거든요.”
그는 서울시와 함께 협업해 공공기관 옥상과 공원 내 양봉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관리하는 벌통 수는 총 12통.
벌 한 통당 약 2만 마리의 꿀벌이 살고 있고,
그 벌들이 도시 곳곳의 꽃을 찾기 위해 반경 2~3km를 날아다닌다.
“성수동에서 양봉하면, 중랑천까지 날아가요.
도시는 꽃이 적어서, 벌이 더 멀리 나가는 셈이죠.”
그는 이 꿀벌들이 다녀온 꽃 종류를 꿀의 색과 향으로 구별할 줄 안다.
“아카시아 꿀은 맑고 달고, 밤꿀은 진하고 쌉싸름해요.
벌이 어딜 다녀왔는지, 꿀 보면 알아요.”
꿀을 얻기보다 더 어려운 건 벌을 지키는 일
양봉이라고 하면 꿀을 따는 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도시 양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벌의 건강을 관리하는 일이다.
“도시는 생각보다 벌에게 위험한 공간이에요.
자동차 매연, 소음, 인공 조명, 살충제, 꽃의 부족.
이 모든 게 벌을 스트레스받게 만들어요.”
김씨는 매일 벌통을 살피며,
산란이 잘 되고 있는지, 여왕벌이 정상적으로 행동하는지,
병든 벌이 늘어나지 않았는지를 확인한다.
때로는 벌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측정하고,
꿀벌 바이러스 검사나 응애 방제도 직접 한다.
“한 통이 무너지면 그 주변 통에도 전염이 돼요.
바이러스는 눈에 안 보이니까 더 무서워요.”
그는 농촌 양봉장과 달리 도시에선 벌이 이탈하거나 흥분하면 주민 민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욱 세밀하게 관리를 한다.
특히 여름철 폭염이나 겨울철 한파는 도시 벌에게 치명적이다.
“벌도 열사병 걸려요. 벌통 안이 40도 넘으면 애벌레가 다 죽어요.”
그래서 여름에는 벌통 옆에 그늘막을 설치하고, 냉풍 장치나 물그릇을 둔다.
겨울에는 단열재로 벌통을 싸고, 꿀벌들이 모여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먹이를 더 넣는다.
꿀보다 더 중요한 건 꿀벌이다.
“꿀은 그저 보너스예요.
이 벌들이 도시에 있다는 사실이 진짜 기적이에요.”
벌과 사람이 공존하는 도시를 상상하다
김씨는 양봉을 통해 단지 꿀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도시 생태계의 연결점을 회복시키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벌이 꽃가루를 옮기지 않으면 과일도 채소도 열리지 않아요.
도시의 텃밭, 커뮤니티 정원, 아파트 화단까지
벌이 다녀가야 살아 있어요.”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환경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지역 어린이집, 학교, 시민 단체와 함께
‘벌 관찰 체험’, ‘도시생태교육’, ‘벌통 열어보기’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처음엔 다들 무서워해요.
근데 벌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알면,
애들이 먼저 이름을 붙여줘요. ‘꿀순이’, ‘벌이삼촌’ 뭐 이런 식으로요.”
그는 도시 양봉의 핵심은
벌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지역 식당, 협동조합과 협력해
‘도시 꿀’을 활용한 마을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작은 병에 담긴 꿀 하나가,
도시 생태를 위한 자부심이자 교육의 결과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서 벌이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우리가 뭔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김씨가 바라는 건 벌이 숨 쉴 수 있는 도시
김씨는 양봉가이자 도시 생태 관리자로서,
사람들이 꿀벌을 그냥 ‘벌레’가 아니라
도시의 이웃으로 봐주길 바란다.
“도시에서 꿀벌을 키운다는 건,
그 도시가 생명과 공존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벌이 살 수 있으면, 사람도 살기 좋은 곳이거든요.”
그는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도, 꿀을 많이 파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단지 이 도시 한복판에서
“벌들이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서울 외 다른 도시로도 도시 양봉 모델을 확대하고 싶다고 한다.
공공건물 옥상, 학교, 병원, 공동체 공간마다
작은 벌통이 놓이고,
그 옆에 사람이 함께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꿈꾼다.
“도시는 너무 빠르잖아요.
벌은 아주 느리고 섬세해요.
그 벌과 하루를 나누는 일이
결국 나를 바꾸더라고요.”
그는 오늘도 옥상에서 방충복을 입는다.
작은 벌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도시의 공기 속으로 날아오른다.
도시라는 이름 아래 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풍경.
그것이 김씨가 지키는, 조용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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