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를 가르는 단 3분, 그 준비는 누가 하고 있을까?
사람이 갑자기 쓰러졌을 때,
골든타임은 단 3분.
그리고 그 3분 안에 생사를 가를 수 있는 단 하나의 기계가 있다.
바로 자동심장충격기, AED다.
지하철역, 체육관, 학교, 관공서, 아파트 단지, 공항 등
우리는 어딜 가든 AED 기기를 마주친다.
하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은 그 장비가 ‘작동하는지’ 조차 모른다.
혹은, 그걸 누가 관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박상일(가명) 씨는 서울시 위탁 의료기기 점검 업체에 소속된 AED 점검원이다.
그는 하루에 약 20여 개소의 AED 설치 현장을 방문해
배터리 상태 확인, 패드 교체, 작동 테스트, 응급 매뉴얼 부착, 고장 보고 등의 작업을 수행한다.
“누가 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막상 필요할 땐 제대로 작동해야 하잖아요.
그걸 매일 확인하고 다니는 게 제 일이에요.”
오늘은 박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AED와 그 이면을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아침 8시, 오늘 점검할 18개의 위치를 확인한다
박씨의 하루는 매일 다르다.
서울시 위탁 관리 지역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하루는 성북구의 초등학교 7곳,
다음 날은 마포구의 체육센터, 아파트, 도서관, 주민센터 등
AED가 설치된 모든 공공장소를 돌아다닌다.
그는 매일 오전 8시, 회사 시스템에 들어가 당일 점검 리스트를 확인한다.
각 장소마다 방문 기록을 남기고, 점검 대상의 기기 번호, 위치,
배터리 잔량, 패드 유효기간 등을 사전에 파악한 뒤 장비 가방을 들고 출발한다.
“회사에서 준 태블릿이 있어요.
현장 사진, 점검 기록, QR코드 스캔까지 전부 실시간으로 기록하죠.”
가방 안에는 AED 테스트 키트, 예비 배터리, 새 패드, 스티커, 점검표, 수리 신청서가 들어 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기기는 로비 입구 벽면에 비치되어 있다.
“문제는 대부분 사람들이 위치도 몰라요.
화재경보기보다 AED를 더 빨리 써야 할 수도 있는데도 말이죠.”
박씨는 AED를 꺼내 작동버튼을 눌러본다.
정상 작동음이 나면 “작동 양호”로 표시하고,
배터리 잔량이 50% 이하면 교체.
패드 유효기간이 지난 경우엔 바로 새 걸로 교체한다.
작동은 정상, 인식은 비정상…AED는 방치되기 쉽다
박씨가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건 하나다.
“기계는 멀쩡한데, 사람 인식이 고장 났어요.”
많은 AED는 단순히 법적으로 설치만 되어 있고,
관리자는 없거나, 위치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패드가 없는데도 멀쩡하게 덮개 닫혀 있던 경우도 있어요.
그게 무슨 의미겠어요? 쓸 수가 없단 뜻이죠.”
그는 수백 건 넘는 점검을 하며 ‘있지만 쓸 수 없는 AED’를 수십 대 이상 마주쳤다.
AED는 정전에도 작동돼야 하며,
패드는 매 2~3년마다 교체,
배터리는 보통 5년 내외로 교체가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현장이 이 사실을 모르고 그냥 방치해둔다.
“특히 체육관 같은 곳은 땀에 젖거나 부식돼서 망가진 경우도 있었어요.
근데 사람들은 ‘어차피 안 쓸 건데 뭐’ 이런 태도죠.”
그는 가끔 기기 옆에 AED 사용법을 적어 붙인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걸 읽지 않는다.
“사람이 쓰러지면, 제일 먼저 AED를 가져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살 수 있어요.
근데 그 한 사람이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에요.”
그는 점검 외에도 관리자에게 간단한 사용 설명을 하기도 한다.
“버튼 누르고, 패드 붙이고, 음성 안내 따르기.
이게 끝이에요. 그런데 겁부터 먹어요.”
점검하는 건 기계지만, 결국은 사람을 위한 일
박씨는 스스로를 ‘응급 상황 대비자’라고 부른다.
그는 하루 종일 아무도 보지 않는 기계 앞에서
혹시 올지 모를 생사의 순간을 대비해 일하는 사람이다.
“하루에도 수십 대를 확인하지만,
그 기계 하나가 어느 날 진짜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그거 생각하면 내가 이걸 허투루 못 해요.”
그는 몇 년 전,
자신이 점검한 AED가 실제로 심정지 환자의 생명을 살린 사례를 직접 확인한 적이 있다.
“그게 뉴스에 짧게 나왔어요.
내가 점검했던 모델 번호, 배터리 상태까지 기억났죠.
진짜… 그날 집에 가서 처음으로 소주 한 병 비웠어요.”
박씨는 그때 이후로 더 집요하게 점검하고,
패드 날짜 하나도 안 넘기려 한다.
왜냐면 “그게 곧 한 사람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는 1년 365일 중 300일 이상을 현장에서 보낸다.
계단 없는 건물은 거의 없고,
지하에 설치된 AED를 찾으려면 건물 구조도를 따로 확인해야 할 때도 있다.
“몸은 힘들어요. 그런데 마음은 편해요.
나는 적어도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박씨가 바라는 건 AED의 존재를 ‘보는 것’
박씨는 자신이 유명해질 필요도, 누가 칭찬해주길 바라는 것도 없다고 말한다.
다만 한 가지.
“AED를 한 번이라도 ‘의식적으로 본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그게 전부예요.”
그는 점검이 끝나면 사진을 찍고, 태블릿에 결과를 입력하고,
배터리나 패드 교체 이력을 본사 서버에 전송한다.
“그 기록이 쌓이면 결국 생명을 살리는 통계가 돼요.”
요즘 그는 학교와 기업체에 AED 교육 요청도 자주 받는다.
간단한 사용법, 응급 상황 대처법, 심폐소생술 시연까지
“막상 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그걸 해볼 기회조차 없다는 게 제일 아쉬워요.”
그는 오늘도 땀을 닦으며 마지막 건물의 AED를 확인한다.
배터리 75%, 패드 유효. 음성 안내 작동 정상.
박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가방을 메고 이동한다.
누군가 쓰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쓰게 된다면 그 기계가 완벽하게 작동하길 바라는 사람.
그게 AED 점검원 박씨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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