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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생활폐기물 수집차 동승자 김씨의 하루: 새벽 어둠 속을 달리는 도시의 청소 손길

우리가 눈뜨기 전, 누군가는 하루를 거의 끝낸다

도시는 매일 아침 깨끗한 얼굴로 하루를 시작한다.
도로 위엔 쓰레기 하나 없이 정돈돼 있고,
아파트 단지의 분리수거장은 비워져 있으며,
상가 앞에는 전날 밤 쌓였던 음식물 쓰레기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평온한 아침은 누군가의 새벽 노동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새벽 3시에서 5시, 우리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무렵
도시 곳곳을 누비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수거차의 운전자 옆에, 직접 뛰어내리며 쓰레기를 싣는 동승자가 있다.

김세훈(가명) 씨는 인천 남동구 지역에서 생활폐기물 수거차의 동승자로 6년째 근무 중인 50대 중반의 남성이다.
그는 새벽마다 골목골목을 돌며 종량제 봉투, 음식물 쓰레기, 마대자루, 대형 폐기물
손으로 하나씩 들고 수거차에 실어 도시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을 한다.

“사람들이 다 잠들었을 때 나와서,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일을 끝내죠.
그게 우리 일이에요.”

오늘은 김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도시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쓰레기를 수집하는 쓰레기 수집차량

새벽 2시 50분, 첫 번째 골목으로 출발

김씨의 하루는 새벽 2시에 알람을 끄는 것부터 시작된다.
몸을 일으키고 옷을 입고 나가면,
차가운 공기가 몸에 먼저 와닿는다.
차고지에 도착해 조끼, 안전장갑, 방수 바지, 무릎 보호대, 스틸캡 안전화를 착용하고
수거 차량의 점검 사항을 확인한 뒤
동승한 기사와 함께 3시부터 운행을 시작한다.

“우리 구역은 동별로 나뉘어요.
한 구역에 아파트 10동 이상, 단독주택 20채 넘어요.”

김씨는 차량이 멈추는 족족 내려서
종량제 봉투를 들어올리고, 마대에 든 쓰레기를 분리해,
차량 뒷문에 있는 압축 투입구로 넣는다.
무게는 하루 평균 3~4톤,
개수로 치면 하루에 약 1,000개 이상의 봉투를 들어올린다.

“비 오는 날은 봉투가 젖어서 더 무거워요.
겨울엔 손이 얼고, 여름엔 숨이 막히죠.
근데 그날도 그냥 하는 거예요.”

특히 음식물 쓰레기 수거는 악취와 접촉 위험이 크다.
뚜껑을 열면 벌레, 구더기, 썩은 물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장갑을 껴도 소용없어요.
손에 냄새가 밴 채로 하루를 살아야 하죠.”

고된 건 쓰레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

김씨는 이 일이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맞지만,
가장 버거운 건 사람들의 인식이라고 말한다.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시선…
그게 이 일 하면서 제일 속상해요.”

그는 일을 하다 보면 주민들이 수거 시간 맞춰 안 버리거나,
규격 외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도망가듯 사라지는
모습을 자주 본다.
가끔은 욕을 들은 적도 있다.
“그 봉투 안 가져간다고 화내면서
‘치워주는 주제에 뭐 그렇게 까다롭냐’고요.”

그는 말한다.
“우리가 규칙대로 안 하면, 수거 시스템 자체가 무너져요.
아무거나 다 가져가면 결국 처리비용만 늘어나고요.”

그래도 간혹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해주는 주민이 있으면
그 말이 하루를 버티게 해준다고 한다.
“말 한 마디가 그렇게 큰 위로가 될 줄 몰랐어요.
내가 이 일 해도 되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김씨는 매일 다섯 시간 이상 차량에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그만큼 무릎, 허리, 어깨 통증은 일상이 됐다.
“퇴근하고 나면 관절이 부서진 느낌이에요.
그래도 다음 날 또 일어나야죠.”

수거는 끝나도,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는다

보통 오전 8시쯤이면 수거 작업이 마무리된다.
하지만 김씨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는다.
집하장으로 향해 압축된 쓰레기를 내리고,
차량 내부 청소, 쓰레기 누수 제거, 장비 정리까지 끝내야
비로소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다.

“여름엔 악취가 너무 심해서
차 안 청소 안 하면 벌레가 꼬여요.”
그는 항상 차량 뒷칸을 직접 닦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차를 다음 날 내가 또 타야 하니까요.”

이후 오후엔 자유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어디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몸이 녹초가 돼 침대에 쓰러지기 때문이다.

“하루에 2~3시간 자고 일할 때도 있어요.
잠을 자도 푹 자는 느낌은 아니에요.
계속 온몸이 묵직하죠.”

그는 식사를 할 때도 맵고 짠 음식은 자제한다.
위장이 자주 안 좋고, 탈이 나기 쉬워서다.
“건강관리? 지금은 그냥 안 아픈 게 관리죠.”

김씨가 바라는 건 쓰레기보다 사람을 봐주는 마음

김씨는 이 일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일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여전히 차갑다.

“TV에는 멋진 직업만 나오잖아요.
우리는 그 밑에서 도시는 만들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안 봐줘요.”

그는 자신이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초등학생이 그림을 그려준 종이 한 장이었다고 한다.
‘쓰레기 치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웃고 있는 청소차와 작업복 입은 아저씨가 그려져 있었다.

“그거 액자에 넣어놨어요.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애가 더 잘 아는 것 같더라고요.”

그는 은퇴까지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단지 조금 더 안전하게, 건강하게, 그리고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다면.

“우린 쓰레기를 보는 게 아니에요.
우린 사람들의 하루를 치우고,
그 다음을 준비해주는 사람이에요.”

오늘도 그는 새벽 어둠 속을 달린다.
수거차의 붉은 깜빡이 불빛 아래,
도시의 하루가 조용히 정리되고 있다.

그 속엔 김씨의 땀과 손끝이, 묵묵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