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나타나는 300대의 바퀴
도심의 하루는 버스로 시작된다.
학생을 태우고, 직장인을 실어나르고, 노인을 싣고 병원으로 향한다.
매일 아침 5시, 정류장엔 어김없이 시내버스가 도착하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하루를 준비한다.
하지만 정작 그 버스를 준비하는 사람은 그 전날 밤부터 일하고 있었다.
바로 차고지 정비원들이다.
장성민(가명) 씨는 서울 서부 버스 차고지에서
시내버스 차량 정비, 타이어 점검, 오일 교환, 브레이크 상태 확인, 외관 검사를 담당하는
정비사로 근무한 지 14년 차다.
그는 매일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수백 대의 버스를 점검하며 다음 날의 운행을 준비한다.
“사람들이 첫차를 기다릴 때,
난 그 차의 바퀴를 조이고 있었던 사람이죠.”
오늘은 장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도시의 바퀴가 멈추지 않도록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저녁 8시, 차고지에 들어오는 버스마다 이상 유무를 살핀다
장씨는 오후 7시쯤 작업복을 입고 차고지로 향한다.
도착하면 정비반 회의가 시작되고,
당일 운행 보고서에 기재된 문제차량 리스트를 확인한다.
브레이크 마찰음, 엔진 소음, 와이퍼 불량, 배터리 이상 등
그날 접수된 모든 문제는 정비사들의 손을 통해 복구된다.
“그날그날 고쳐야 안 밀려요.
내일 아침에 고치면 운행 못 해요.”
장씨는 먼저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리프트 위에 버스를 올린다.
그다음 하부에 들어가 타이어 마모, 서스펜션 상태, 브레이크 패드 마모 정도를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을 교체하거나 윤활유를 보충한다.
“무게가 몇 톤이니까 볼트 하나만 풀려도 큰일 나요.
하부는 항상 제일 꼼꼼하게 봐야 돼요.”
정비는 1대당 평균 30분~1시간 이상 걸리고,
심한 경우 엔진 분해와 조립까지 해야 한다.
작업 중에는 금속 부품에 베이거나 뜨거운 오일에 손을 데는 일도 많다.
“손톱 밑이 늘 시커멓고,
무릎은 늘 구부려 있어서
정형외과 다니는 건 기본이에요.”
시동이 걸리는 그 순간까지, 정비는 끝난 게 아니다
장씨는 정비가 끝나면 바로 시동을 건다.
단순히 엔진이 잘 도는지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동, 연료 분사, RPM, 배출가스 상태까지 실시간으로 점검하기 위해서다.
“버스는 덩치가 커서
엔진 하나만 문제 생겨도 정류장에 멈춰 서요.
그럼 시민들 불편해지고 기사님도 곤란하죠.”
그는 차량 컴퓨터와 연결된 OBD 진단기로 오류 코드를 체크한다.
디젤 차량 특성상 DPF(매연 저감 장치) 적산량도 확인하고,
필요하면 강제 재생 작업까지 진행한다.
“가끔은 새벽 3시에 매연 재생하려고
30분 동안 차를 공회전 시켜야 할 때도 있어요.”
장씨는 정비만 하는 게 아니다.
차량 외관 흠집 확인, 블랙박스 작동 유무, 실내 전등 상태까지 보고
작은 문제라도 정비일지에 기록한다.
“기사님은 그냥 ‘이상 있어요’ 한마디 하고 가시죠.
그 한마디가 정확히 뭔지 찾는 건 우리 몫이에요.”
정비는 기술이 아니라 감각이다
장씨는 정비 일을 ‘기술보다 감각이 먼저’라고 말한다.
“차가 이상하면 소리가 바뀌어요.
하부에서 찌익 하는 마찰음이 들리면,
그게 브레이크인지 서스펜션인지
귀로 먼저 판단해요.”
그는 매일 수십 대의 차를 만지며
손끝과 귀로 차량의 상태를 파악한다.
정비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이 느끼는 감각이 정확한 진단을 만든다”고 말한다.
“한 번은 어떤 차가 자꾸 떨린다고 해서
이틀 동안 분해했다 조립했어요.
알고 보니 연료필터 한 구멍이 막혀 있었죠.”
그는 정비사라는 이름 뒤에
모든 계절을 땀과 기름으로 견뎌낸 시간이 있다고 했다.
“여름에는 기계실이 찜통,
겨울에는 금속이 얼음 같아요.
그래도 내 손을 믿고 맡겨준 차니까
제대로 마무리해야죠.”
장씨는 정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차량에 청소 완료 스티커를 붙인다.
“그걸 보는 기사님들이 안심하고 타는 거예요.
그게 작은 성취죠.”
장씨가 바라는 건, 보이지 않는 손에게 건네는 존중
장씨는 새벽 4시 무렵 퇴근한다.
그 시간, 첫 시내버스가 차고지를 나선다.
그는 자신의 하루가 끝나는 순간,
도시의 하루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우린 밤새 일했지만,
그 흔적은 어디에도 안 남아요.
그래도 차가 멈추지 않으면 그걸로 된 거죠.”
그는 때때로 기사님이나 관리자에게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한 마디를 들으면
그날 밤의 피로가 싹 사라진다고 한다.
“정비사는 사람 생명 다루는 의사랑 똑같아요.
차가 잘 굴러야 사람이 안전하니까요.”
장씨는 지금도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박여 있고,
작업복엔 오래된 기름 자국이 배어 있다.
하지만 그는 그 흔적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난 바퀴 아래서 일하지만,
도시 전체가 그 바퀴 위에 올라타니까요.”
오늘도 그는 마지막 버스를 정비대에서 내리고,
천천히 차고지를 나선다.
도시가 잠든 사이,
가장 먼저 하루를 준비한 사람.
그게 시내버스 차고지 정비원 장씨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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