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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한씨의 하루: 보이지 않는 위험을 미리 막는 사람

아무도 몰랐지만, 당신 집에 누군가는 다녀갔다

주방 가스레인지 아래 밸브,
보일러 옆 연결관,
아파트 복도에 설치된 가스 계량기.
이 모든 곳을 매일 수천 명의 작업자들이 확인하고 지나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스 점검 나왔습니다”라는 말만 듣고,
그들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도시가스는 편리한 에너지지만
단 한 번의 누출이 폭발이나 대형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에너지다.
그래서 이 시스템을 지키는 사람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안전을 미리 예방하는 생명 관리인이다.

한상호(가명) 씨는 경기도 동탄지역을 중심으로
가정집, 상가, 아파트, 학교, 요양시설 등에 도시가스 안전점검을 다니는
53세의 점검원
이다.
하루 평균 70~80세대,
한 달이면 수천 세대를 직접 방문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대충 와서 보고 가는 줄 아는데,
그 안에 숨어 있는 위험을 발견하려고
우린 하루 종일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요.”

오늘은 한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보이지 않는 가스를, 더 보이지 않게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오전 8시, 현장 배정 리스트를 들고 첫 세대로 향한다

한씨의 하루는 회사에서 그날 배정된 점검 구역 확인으로 시작된다.
모바일 단말기에는 오늘 점검할 주소, 세대 수,
설치 유형, 이전 점검 이력, 민원 기록 등이 표시된다.
“예전보다 시스템은 좋아졌죠.
근데 현장은 늘 같아요.
계단 오르고 문 두드리고, 반복이죠.”

그는 점검가방을 둘러멘다.
그 안엔 가연성가스 측정기, 누설감지 스프레이, 몽키스패너, 테프론 테이프, 점검스티커, 휴대 단말기가 있다.
하루에 최소 20개 동 이상을 돌아야 하므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구역은 특히 힘들다.

“하루 계단 50층 넘게 오르내리는 날도 있어요.
여름엔 땀이 줄줄 흐르고, 겨울엔 손이 얼죠.”

현관 앞에 도착하면 “도시가스 안전점검 나왔습니다”라고 말하고,
가정에 들어가 주방 밸브 상태, 보일러 가스관 연결부 누설, 환기 상태, 차단기 작동 여부 등을 점검한다.

“주부들이 밥하다 말고 반갑게 맞아줄 때도 있고,
아예 문도 안 열어주는 경우도 있어요.”

그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위험을 찾는다.

“가스는 눈에 안 보여요.
그래서 감각을 더 믿어야 하죠.”

가스는 작은 균열에서도 빠져나온다

한씨가 가장 자주 발견하는 문제는 배관 노후, 밸브 이완, 실리콘 열화다.
작은 틈이 있어도 가스는 서서히 빠져나올 수 있다.

“특히 오래된 단독주택은 배관이 녹슬고,
세입자가 직접 설치한 중고 보일러는 연결이 헐렁한 경우도 많아요.”

그는 문제를 발견하면
현장에서 바로 조치하거나,
심각한 경우 본사 기술팀과 연결해 긴급 수리를 요청한다.
“바로 옆에 사람이 살아 있는 공간이잖아요.
여기서 문제 생기면 큰일 나죠.”

특히 겨울철에는 보일러 사용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연통 이탈이나 가스 누출 사고가 많다.

그는 2년 전, 한 가정집 점검 도중 실내에 일산화탄소가 유입되고 있는 걸 발견한 적이 있다.

“보일러 연통이 틀어져 있었어요.
거기서 가스가 새서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죠.
그대로 잠들었으면… 말 그대로 조용히 위험해졌을 거예요.”

그는 그 이후로 연통 연결부는 손으로 한 번 더 흔들어보고,
밸브는 두 번 조이고 나오는 습관
이 생겼다.

“사람 목숨은 숫자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한 명이라서
난 그걸 더 조심해요.”

사람마다 다르고, 위험도 집마다 다르다

한씨는 수천 세대를 다니면서 느낀 게 있다.
“집마다, 사람마다 위험도 달라요.
그걸 빠르게 감지하는 게 중요하죠.”

혼자 사는 노인의 집은 오래된 호스가 그대로고,
자취하는 대학생의 원룸은 환기가 안 되는 경우
가 많다.
가족이 많은 집은 복잡한 연결부가 문제다.
“보일러 옆에 커튼이 쳐져 있는 집도 봤어요.
그거 화재 위험 진짜 커요.”

그는 점검 도중 불만을 터뜨리는 주민,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
무시하거나 심지어 욕하는 사람
도 자주 만난다.

“그래도 해야죠.
한 세대라도 놓치면
그게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하루 종일 구역을 다니며 점검한 뒤,
퇴근 전엔 모든 세대의 점검 결과를 단말기에 입력하고,
주의 요구가 있는 세대는 따로 리포트로 작성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단순히 점검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 사는 공간의 안전을 보고 나오는 거예요.
그걸 매일 반복하는 거죠.”

안전하게 도시가스 점검 후 사용하는 가스레인지

한씨가 바라는 건, 점검을 귀찮게 여기지 않는 사회

한씨는 점검원의 존재가 불편하거나 귀찮게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들여다보러 가는 게 아니라,
지켜주러 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는 사람들에게 도시가스의 위험성을 조금만 더 인식해줬으면 한다.
“눈에 안 보인다고 없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우린 그 안 보이는 걸 막기 위해 일하는 거고요.”

그는 정년이 다가오지만,
지금도 아파트 복도에서 어린아이가 “아저씨 또 왔어요?”라고 말해줄 때가 제일 기쁘다고 했다.

“내가 매번 와도 아무 일 없게 해주는 게 내 일이에요.
일이 없게 만드는 사람.
그게 도시가스 점검원이죠.”

오늘도 한씨는 점검가방을 둘러메고
아파트 7동을 더 돌아야 한다.
그가 누른 벨 뒤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는 그들의 숨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