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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고속도로 졸음쉼터 청소원 김씨의 하루: 차창 너머 잠시 멈춘 그곳을 지키는 사람

모두가 떠나는 곳에서, 하루를 머무는 사람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주치는 작고 조용한 공간.
주유소도 없고, 식당도 없지만
그곳엔 벤치 하나와 공중화장실, 쓰레기통, 그리고 몇 그루의 나무가 있다.
바로 졸음쉼터다.

누군가에겐 몇 분간의 휴식처,
누군가에겐 사고를 피할 수 있는 숨구멍.
하지만 이곳에서 매일 12시간 넘게 자리를 지키며
청소하고 관리하는 사람들
이 있다는 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김성자(가명) 씨, 66세.
경부고속도로 중부 구간의 한 졸음쉼터에서
화장실 및 주변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낙서 제거, 야간 조명 점검, 간단한 안전 이상 신고까지 담당하는
청소원으로 6년째 근무 중이다.

“사람들은 다 지나가요.
근데 나는 여기서 하루를 보내요.
그 차창 넘어 다녀가는 사람들을 보면서요.”

오늘은 김씨의 하루를 통해
도시와 도시 사이, 도로 위의 쉼표 같은 공간을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고속도로에서 졸음쉼터로 출근하는 김씨

아침 6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어제의 흔적들

김씨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 졸음쉼터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전날 밤 쌓인 쓰레기, 화장실 바닥의 물자국,
벤치 옆에 흩어진 담배꽁초와 커피 캔,
그녀는 이 모든 걸 매일 새로 맞이하는 사람이다.

“밤엔 취객이 들르거나, 차에서 자다 일어난 분들이 어질러 놓기도 해요.
가끔은 거기서 술 마시고 토한 사람도 있고, 낙서도 있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화장실 소독과 바닥 청소.
변기 뚫기, 휴지 리필, 세면대 수압 점검, 악취 제거까지
모두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그다음은 쉼터 주변 도로, 벤치, 피크닉존 정리.

“여긴 누가 정해진 규칙으로 버리는 게 아니에요.
그냥 던져놓고 가요.
컵라면, 기저귀, 어린이 음료팩, 담배, 가래침까지 다 쓸어야죠.”

청소를 하다 보면 벌레에 물리고, 허리도 계속 굽혀야 한다.
특히 여름철은 악취가 심하고,
겨울엔 변기물이 얼어붙는 경우도 많다.

“화장실 얼었을 땐 손으로 뜨거운 물 부어 녹여요.
그래도 아침에 손님들 오기 전에 끝내야죠.”

모든 사람은 지나가지만, 나는 남아 있는 사람

졸음쉼터엔 하루 수백 대의 차량이 들렀다가 떠난다.
김씨는 그 차들이 떠나는 걸 바라보는 게
자신의 일과라고 말한다.

“누구는 신혼부부고, 누구는 출장 가는 사람이고,
누구는 부모님 모시고 병원 가는 사람도 있겠죠.
나는 그걸 그냥 다 바라봐요.”

그녀는 때때로 주차된 차 안에서 싸우는 커플이나,
쉼터에서 울고 있는 사람
을 목격하기도 한다.

“화장실 앞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펑펑 우는 거예요.
몰래 지켜보다가 휴지 하나 건네드렸죠.
그분이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떠났어요.
뭐가 있었던 건진 몰라도, 그날은 마음이 좀 아팠어요.”

가장 외로운 건 눈이나 비 오는 날이다.
운전자는 잠시 피하고 떠나지만,
김씨는 그 자리에서 계속 눈을 치우고,
바닥에 미끄럼 주의 팻말을 놓고,
젖은 화장실 바닥을 계속 닦아야 한다.

“난 여기가 회사예요.
누군가는 쉼터지만, 난 하루 12시간 머무는 곳이니까요.”

깨끗한 화장실 하나가 하루를 바꾼다

사람들은 졸음쉼터에 대해 별생각 없이 들르고 떠나지만
김씨는 그 몇 분이 누군가에겐 중요한 휴식이 되길 바란다.

“변기 하나가 더럽다고 기분 망치는 분들도 있고,
화장실이 너무 깨끗해서 놀랐다고 말하는 분도 있어요.
그 한마디에 진짜 기운이 나요.”

그녀는 한 번은 유치원 단체버스가 들러
아이들이 화장실을 줄지어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마치 자기 손주들이 온 것처럼 웃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눈치 없이 소리 지르고 뛰어다녀도
그게 참 밝고 좋더라고요.
나도 딸이 둘인데, 지금은 다 출가해서 가끔 생각나죠.”

청소가 끝나면 쉼터용 푸드트럭이나 자판기 주변을 정리하고,
야간 조명이나 간이 소화기 상태까지 확인한다.
무전으로 도로공사 본부에 이상 여부를 알리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사고나 고장, 낯선 차량이 오래 정차하면
신고를 해야 해요.
쉼터지만, 여기도 도로의 일부니까요.”

김씨가 바라는 건, 지나가는 이들이 남긴 말 한마디

김씨는 이 일을 오래 하면서
“사람은 다 지나가지만,
말 한마디는 남는다”고 느꼈다고 한다.

“어느 날 어떤 젊은 남성이
‘화장실이 너무 깨끗해서 놀랐어요,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어요.
그 말 듣고 하루 종일 힘이 났죠.”

그녀는 누가 주목하지 않아도 묵묵히,
지나가는 수천 명의 쉼을 위해 공간을 돌본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조금만 더 조심해달라는 마음”이다.

“세면대에 흙 묻은 신발 올리지 않기,
화장실 벽에 낙서 안 하기,
음식물 쓰레기는 통에 버리기…
그것만 지켜도 우린 훨씬 편하게 일해요.”

그녀는 오늘도 마지막 차량이 떠난 후
화장실 불을 끄고,
바람 부는 벤치 아래 커피 캔을 줍는다.

잠시 멈춘 그 공간,
그 잠깐의 쉼을 위해 하루를 건넨 사람.

그게 졸음쉼터 청소원 김씨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