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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수문 관리원 이씨의 하루: 강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

강물은 흐르지만, 그 흐름은 누군가에 의해 지켜진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그 위엔 다리가 놓이고, 그 아래엔 사람들이 산책을 한다.
하지만 비가 내리면 강은 순식간에 얼굴을 바꾼다.
물이 넘치고, 길이 잠기고, 때로는 생명을 위협한다.

그 강물의 흐름을 매일 조절하며
홍수와 가뭄 사이에서 도시를 지켜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수문 관리원이다.

이정학(가명) 씨는 경기도 남부 한 국가하천의 자동 수문 통제소에서 근무 중인 58세의 관리원이다.
그는 매일 수위, 유속, 강우량, 기상 데이터를 확인하고,
필요할 땐 수문을 개방해 홍수를 예방하거나 농업용수 공급을 조절한다.

“강물은 흐르는 게 당연하지만,
그 흐름이 제멋대로면 도시도 사람도 위험해져요.
내 일은 흐름을 ‘안정되게 만드는 일’이에요.”

오늘은 이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강의 숨결을 읽고 조절하는, 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강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수문의 모습

새벽 5시 30분, 수위계와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이씨는 동이 트기 전 일어난다.
그가 근무하는 수문 통제소는 하천 중류 지점,
3개 시군에 걸쳐 있는 농업용 저수지와 수문 시설을 원격으로 연결해
하루 24시간 자동 관제와 수동 대응을 병행한다.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수위계, 유속 센서, 기상청 API 데이터다.
태블릿과 모니터에 표시되는 숫자를 보며
“오늘 비가 얼마나 오고, 얼마나 빠르게 흘러갈지를 예상”한다.

“비가 조금만 더 오면 수위를 열어야 해요.
농경지에 피해 없게,
하류도 넘치지 않게,
모든 걸 동시에 계산해야 하죠.”

수문은 자동으로 열리기도 하지만,
그 판단은 결국 사람이 내린다.
그는 기상 상황, 상류 유입량, 하류 용량, 제방 상태까지 종합
수문을 10cm, 20cm, 때로는 1m씩 조절한다.

“사람들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무섭다고 해요.
근데 내가 수문 안 열면 더 큰일 나요.
우린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게 일이에요.”

물은 말이 없지만, 항상 변한다

이씨는 물을 ‘조용하지만 가장 예민한 존재’라고 말한다.
“햇살 한 줌, 바람 한 번에도 물길은 변해요.
그 흐름을 매일 같이 들여다봐야 감이 생겨요.”

그는 지난 10년간 하천 수위 이상, 국지성 집중호우, 태풍 전후 상황
모두 직접 겪었다.
“2018년 여름, 밤 11시에 갑자기 비가 쏟아져
3시간 동안 수문을 15번 넘게 열고 닫았어요.
그때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었어요.
하류 마을로 전화도 직접 돌리고,
시청이랑 통신도 했고요.”

가장 힘든 건 예상하지 못한 돌발상황이다.
수문에 나뭇가지나 부유물이 끼어 막힐 때,
기계 이상으로 원격 조작이 먹히지 않을 때

직접 현장에 나가야 한다.

“하천은 위험해요.
밤에 손전등 하나 들고 수문 구조물 올라가서
잡초 치우고, 낙석 확인하고…
그런 거 아무도 모르죠.”

그래도 그는 말한다.
“물이 넘치지 않고, 마르지 않게 조절하는 그 균형이
내가 매일 만드는 작은 질서예요.”

도시와 농촌 사이, 흐름을 나누는 일

이씨는 단순히 강물을 조절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물을 이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이 많다고 다 좋은 게 아니고,
적다고 다 나쁜 것도 아니에요.
그걸 잘 나누는 게 내 일이죠.”

봄철엔 농업용수 공급,
여름엔 홍수 예방,
겨울엔 결빙 방지 및 배수로 확보
계절마다 수문 운영 방식도 달라진다.

그는 하류의 논에 물이 안 간다는 민원을 받으면
직접 현장에 가서 물꼬를 확인하고,
수로가 막히면 공사팀에 연락해 복구를 요청한다.

“물 한 방울이 그 사람들한테는 생계니까요.
하나라도 놓치면 안 돼요.”

그는 수문 하나를 조작할 때도
도심 배수펌프장, 하수관 수용량, 도로 침수 가능성,
인근 마을 지형
까지 고려한다.

“모두가 물 걱정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내가 새벽부터 수문 앞에 서 있는 거예요.”

이씨가 바라는 건, 물의 흐름을 함께 이해하는 사회

이씨는 은퇴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수문 조작 패널 앞에 앉으면
손끝이 가장 예민해지고, 긴장감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게 내 일이고,
도시 전체와 연결돼 있다는 걸 아니까.”

그는 자신의 일이 ‘드러나지 않는 공공안전’임을 잘 안다.
“사람들은 홍수 나면 놀라고,
가뭄 오면 불편해하지만,
그걸 막기 위해 매일 땀 흘리는 사람은 잘 몰라요.”

그래도 괜찮다고 말한다.
“나도 물처럼 조용히 일하면 되니까요.”

그는 오늘도 수문 제어실 모니터 앞에서
수위 곡선을 따라가며 흐름을 읽고,
작은 버튼을 눌러 도시를 지킨다.

강은 흐르지만,
그 흐름 뒤에는 항상 한 사람이 있다.

그게 수문 관리원 이씨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