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장은 쓰레기의 끝이 아니라, 자원의 시작이다
밤이면 아파트 단지 뒤편에 종종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는 쓰레기봉투를 몰래 버리고,
누군가는 라면 용기를 손에 든 채 헷갈린 눈빛으로 분리함 앞에 서 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옆에서 매일같이 정리를 반복하며 쓰레기 더미를 자원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분리수거함에 재활용품을 넣는 순간
‘내 일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부터 누군가의 일이 시작된다.
최영자(가명) 씨, 63세.
경기도 남양주 소재의 한 대단지 아파트에서 재활용 분리수거장 관리자로 5년째 근무 중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이, 플라스틱, 캔, 비닐, 폐의약품, 스티로폼, 우유팩을 정리하고,
오투투(오투통) 오염물 분리, 혼합 폐기물 조정, 불법투기 신고 접수, 민원 대응까지 담당한다.
“사람들은 내가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난 자원을 구분하는 사람이에요.”
오늘은 최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도시가 배출한 것들을 다시 순환시키는,
현장의 진짜 목소리와 손길을 들여다본다.
오전 7시 30분, 어제의 ‘잘못된 분류’부터 수거한다
최씨의 하루는 늘 정리로 시작된다.
아파트 단지 내 4곳의 재활용장에 놓인
파란 통, 노란 통, 회색 통, 스티로폼 박스를 먼저 훑어본다.
“밤새 몰래 버리고 간 사람들 많아요.
일반쓰레기를 재활용통에 넣고 도망가는 거죠.”
그녀는 가장 먼저 페트병에서 내용물을 비우고,
종이류에서 코팅지와 혼합지를 골라내며,
캔과 병을 종류별로 분류한다.
“요즘엔 재질이 섞인 제품이 많아서 그냥 분리해서는 안 돼요.
마개는 뗀다, 안 뗀다… 기준이 너무 헷갈린다는 사람도 많죠.”
특히 어려운 건 음식물 오염된 재활용품 처리다.
“김치 국물 흘린 플라스틱,
깨진 유리 섞인 종이박스…
그건 재활용이 아니라 일반쓰레기예요.”
그녀는 손에 고무장갑과 두꺼운 보호 장갑을 겹쳐 끼고,
하루 평균 300kg 이상의 재활용품을 직접 손으로 정리한다.
“힘들죠.
근데 제대로 안 하면 수거차가 안 가져가요.
그럼 다시 내가 다 치워야 해요.”
쓰레기보다 더 힘든 건, 사람과의 마찰
최씨는 재활용품 자체보다
사람들과의 갈등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분리수거장 앞에서 싸우는 사람도 많아요.
누가 뭐 잘못 넣었네,
왜 혼자 몰래 갖다 버리냐고…
중재는 항상 제 몫이에요.”
가장 빈번한 문제는 사업장 폐기물 무단투기,
대형쓰레기 몰래 배출,
이웃 간 분리수거 방식 차이로 인한 민원이다.
“자꾸 내 말을 무시하고
‘아줌마가 뭔데?’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죠.”
그녀는 관리사무소, 동대표, 수거업체와 소통하며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를 돌리고,
민원 앱에 사진을 찍어 등록한다.
“하루 일의 반이 전화예요.
어디 신고하고, 해명하고, 안내하고…”
그럼에도 그녀는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여기 없으면, 이 공간은 바로 쓰레기장 돼요.
단 하루만 비워도 냄새, 벌레, 민원 바로 올라오죠.”
분리수거장도 ‘깨끗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최씨는 분리수거장을 그냥 지저분한 곳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서부터 도시의 환경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은 벽을 닦고,
통을 씻고, 플라스틱에 남은 스티커를 벗긴다.
“사람들이 깨끗하면 더 잘 지켜요.
지저분하면 ‘어차피 더러운데’ 하면서 막 버리죠.”
그녀는 최근 아이들이 분리수거 체험 교육으로 왔을 때,
어린아이가 ‘할머니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던 순간을
가장 오래 기억하고 있다.
“내 일이 의미 있구나, 처음으로 그렇게 느꼈어요.”
또한 플라스틱, 비닐, 종이를 얼마나 정확하게 나눴는지에 따라
수거 업체의 단가가 달라지고,
지자체의 분리배출 평가 점수도 달라진다.
“한 통을 잘 분류하면,
그게 재활용되고 다시 돌아와요.
나는 이걸 쓰레기로 안 보고, ‘다시 쓸 수 있는 것’으로 봐요.”
최씨가 바라는 건, 나 혼자만 깨끗할 수 없는 사회
최씨는 하루 10시간 이상 서서 일한다.
여름엔 악취와 더위에 숨이 막히고,
겨울엔 손끝이 얼어 쓰레기봉투를 제대로 묶을 수 없을 때도 있다.
“손목이 늘 아프고,
허리는 굽어 있고,
퇴근하면 몸이 굳은 것처럼 움직이질 않아요.”
하지만 그녀는 매일 아침,
단지의 분리수거장이 쓰레기로 넘치지 않고 정돈되어 있으면
그게 하루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나 혼자만 깨끗하면 뭐해요.
같이 안 지키면 소용없는 거예요.”
그녀는 오늘도 페트병 뚜껑을 돌려 빼고,
종이컵을 눌러 접고,
비닐봉지를 뒤집으며 분류함을 정돈한다.
누군가에겐 버린 것들이지만,
그에겐 다시 살아날 것들이다.
그게 재활용 분리수거장 관리자 최씨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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