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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공공 체육시설 관리인 박씨의 하루: 운동 뒤 남겨진 공간을 돌보는 사람

운동은 잠깐, 관리의 시간은 하루 종일이다

햇살 좋은 봄날, 공원 한편에 설치된 실외 운동기구 위에는
노인들이 가볍게 몸을 풀고,
아이들은 기구에 매달려 장난을 치며,
누군가는 점심시간 짬을 내어 스트레칭을 한다.
공공 체육시설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열린 운동장이다.

하지만 운동하는 사람은 떠나고 나면,
그 자리에 다시 도착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철봉을 닦고, 고장 난 레그프레스 기계를 수리하고,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다.

박기호(가명) 씨, 62세.
서울 동남권 지역의 근린공원 3곳을 관리하는
공공 체육시설 점검 및 유지관리 전문 인력으로
9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운동 전보다
운동이 끝난 후의 공원을 더 많이 손본다고 말한다.

“운동기구는 하루에도 수백 명이 써요.
근데 그걸 관리하는 사람은 딱 한 명이에요.
그게 나죠.”

오늘은 박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도시 속 누구에게나 주어진 공간을 묵묵히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 체육시설

아침 7시, 첫 번째 공원에서 '기름칠'로 하루를 시작한다

박씨는 매일 아침 구청에서 제공받은 점검표와 순회리스트를 들고
동네 체육공원 세 곳을 도보로 이동한다.
하루 일정은 늘 같다.
“운동기구 볼트가 풀렸는지 확인하고,
유압이 정상인지 체크하고,
소음이 나면 바로 기름칠하죠.”

기구 종류는 총 22가지.
레그프레스, 철봉, 허리돌리기, 어깨 돌리기, 런닝트랙 계단기 등
다양한 연령대와 운동 방식에 맞춰 설치돼 있다.
박씨는 각 기구마다 용도에 맞는 테스트 동작을 해본다.
“앉아보고, 눌러보고, 돌려봐요.
기구는 움직여 봐야 이상이 느껴지거든요.”

가장 흔한 문제는 볼트 이완, 기름 마름, 부품 마모다.
그는 항상 6종 공구세트, 구리스, WD-40, 천, 장갑, 마스크를 가방에 넣고 다닌다.

“비 오는 날은 미끄럼 주의 표지 세우고,
눈 오는 날은 고무매트에 제설제 뿌리죠.”

그의 점검은 단순 청소가 아니라 안전 조치다.
“기구 하나가 고장 나면
노인분이 다칠 수도 있어요.
나는 그걸 하루라도 미루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체육시설의 가장 큰 적은 '무관심'이다

박씨는 운동기구보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운동은 열심히 하시면서
쓰레기는 아무 데나 버리고,
기계는 함부로 당기고 올라타요.
심지어 어린애들이 기구 위에 올라가서 뛸 땐 진짜 아찔해요.”

그는 하루에도 여러 번
파손된 장비에 안내문을 붙이고,
유압 장치가 고장 난 기구에 테이프를 둘러 임시 폐쇄
한다.
그런데도 일부 이용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사용한다.

“‘왜 이거 안 돼요?’라면서 화내는 분들도 있고,
‘요즘 일 안 하냐’는 말도 들어요.
고장 난 거 고치느라 쉬지도 못하는데 말이죠.”

또한 밤늦게 몰래 들어와 운동기구를 부순 뒤 도망가는 경우,
반려견이 운동기구에 배설을 하는 경우,
기구에 낙서를 하는 문제
도 끊이지 않는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잠깐 머무르고 가요.
근데 나는 그 자리를 10시간 넘게 지키는 사람이에요.”

운동기구보다 더 소중한 건, 그 안에서 이뤄지는 삶

박씨는 공공 체육시설을 단순한 운동 장소가 아닌
사람들이 연결되고 일상을 회복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노인들이 모여서 같이 허리 돌리고,
초등학생들이 철봉 타면서 웃고,
엄마들이 유모차 밀며 옆에 서서 대화해요.
그 풍경이 너무 좋아요.”

그는 어떤 날엔
운동 중 넘어져 무릎이 까진 할머니를 부축했고,
아이와 놀던 아버지가 운동기구 사이에 손을 낀 걸 빼낸 적도
있다.
“그럴 땐 내가 여기 있는 게 다행이죠.”

박씨는 매일 저녁, 퇴근 전 한 번 더 기구를 닦고,
바닥에 떨어진 낙엽과 물병을 정리
한다.
“깨끗한 운동기구가 있어야 사람들이 또 찾죠.
그래야 이 공간이 계속 살아 있죠.”

그는 시민들의 운동 루틴을 뒤에서 조용히 지원하는 존재다.
“누군가 오늘 어깨 스트레칭 잘 했다고 기분 좋아한다면,
그게 내가 이 기구를 잘 점검했기 때문일 수 있죠.”

박씨가 바라는 건, 이 공간이 존중받는 사회

박씨는 퇴근하면서 종종 기구에 기대어 쉬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론 조심스럽다.

“기계는 사람처럼 말하지 않지만,
잘못 다루면 반드시 말없이 고장 나요.”

그는 사람들이 운동기구를 ‘내 것’처럼 사용하고
함께 아끼는 문화가 생기길 바란다.
“깨끗이 쓰고, 이상 있으면 신고하고,
고장 났을 땐 기다려주는 것.
그게 진짜 공동체예요.”

박씨는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
공공의 공간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존중에서 시작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
이다.

오늘도 그는 공구가방을 챙기고
세 번째 공원으로 향한다.
기구 하나하나를 흔들어 보고,
볼트를 조이며 땀을 훔친다.

운동은 짧지만, 관리의 손길은 길다.
그게 공공 체육시설 관리인 박씨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