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지상에서 보이지만, 지하에서 유지된다
우리는 도로를 걷고, 전기를 쓰고, 수도를 틀고, 인터넷을 연결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모든 편의는 지상 아래,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부터 시작된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는 전력선, 통신망, 수도관, 열배관 등이 모두 한데 모인
‘지하 공동구’라는 복합 관로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 어둡고 긴 공간을 매일 걷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전기 사고를 막고, 침수와 화재를 예방하며,
도시 전체의 기능이 끊기지 않도록 ‘도시의 혈관’을 순찰한다.
강문석(가명) 씨, 52세.
서울시 산하 지하 공동구 안전관리 전문회사에서
지하 공동구 순찰과 점검 업무를 14년째 맡고 있는 순찰원이다.
“도시는 지상에서 빛나지만,
그 빛을 유지하는 건 지하에 있는 우리가 해요.
내 일은 보이지 않게 도시를 지키는 거예요.”
오늘은 강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지하 깊숙한 곳에서 도시를 순환시키는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해본다.
오전 8시, 순찰일지와 가스측정기를 들고 지하로 내려간다
강씨의 하루는 보통 오전 7시 30분에 시작된다.
당일 순찰할 구역은 서울 서남부에 위치한 3km 길이의 통신·전력 공동구.
작업복과 헬멧, 헤드랜턴, 산소·유해가스 측정기, 무전기, 휴대 진단기를 챙긴 뒤
공동구 출입구로 향한다.
“내려가는 순간부터 공기가 달라요.
차갑고 습하고, 냄새도 좀 나죠.”
공동구 입구는 보통 관리사무소 안 잠긴 철문 안쪽에 위치해 있고,
열쇠를 2중으로 해제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입구를 열면 수직으로 이어진 철제 계단이 깊이 6~10미터까지 이어져 있고,
그 아래에는 지름 약 2미터, 폭 3~5미터의 콘크리트 통로가 뻗어 있다.
“지하에 있으면 휴대폰은 당연히 안 터지고,
가끔 쥐나 벌레가 지나가요.
좁고 미끄러운 길을 따라 3~4시간 이상 걸어요.”
그는 전력케이블, 통신선로, 수도관, 열배관 등의 표면 상태를 눈으로 점검하고,
진동, 이상소음, 결로, 누수, 온도 변화를 기록한다.
그리고 지점마다 설치된 센서를 수기로 기록하거나 휴대 단말기로 입력한다.
전기, 물, 열, 통신을 모두 감시하는 사람
공동구 순찰은 단순히 통로를 걷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양한 설비를 동시에 확인하고,
하나의 시스템 이상이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지 않게 막는 일을 한다.
“한번은 전력케이블 열이 올라가서
열배관 쪽에도 영향을 주고,
그 열 때문에 통신선 피복이 살짝 녹은 적 있어요.
그런 걸 사전에 발견해야 큰 사고를 막죠.”
강씨는 순찰 중 온도계, 가스검지기, 열화상카메라 등을 활용해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필요시 관제센터에 무전을 넣어 긴급 정비를 요청한다.
그는 특히 비 오는 날, 여름 장마철, 겨울 한파 전후로
지하관로의 침수·결빙·누수 가능성을 가장 경계한다.
“전기랑 물은 상극이에요.
물이 조금이라도 새면, 감전 위험이 커지고
화재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걸 막는 게 우리가 걷는 이유죠.”
또한, 가끔은 노후된 시설 근처에서 가스가 새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즉시 대피하고 전문팀을 부른다.
“여기선 실수 한 번이 사람 목숨이에요.
장갑 끼고 있어도 감각이 떨어지면 바로 중지해요.”
빛이 없는 곳에서 감각만으로 도시를 읽는 사람
강씨는 하루 평균 5~7km의 공동구를 걸으며
자신의 청각과 촉각, 시각을 모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하에선 기계 소음도 없고,
사람 목소리도 없어요.
오직 기계음, 물 흐르는 소리, 케이블 떨림 소리뿐이죠.”
그는 가끔 케이블 옆을 지나가다 ‘윙—’하는 낮은 진동을 들으면
“이건 설비가 과열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판단한다.
“사람들은 귀로 음악을 듣지만,
나는 귀로 도시가 이상한지 듣죠.”
순찰은 대부분 혼자 이루어지며,
사고 예방을 위해 30분마다 무전기 체크를 한다.
그는 작업 중 메모를 자주 하며
퇴근 전엔 모든 데이터를 디지털 시스템에 입력해 보고한다.
그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지하 감시자’이자 ‘예방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터지면 그건 누군가 이미 실수했다는 뜻이에요.
나는 문제가 터지기 전에 알아채야 해요.
그게 내 일이니까요.”
강씨가 바라는 건, 지하의 노동도 지상처럼 빛나길
강씨는 이 일을 하면서
“누구도 박수치지 않지만,
도시 전체가 나의 일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느낀다.
“전기가 끊기면 엘리베이터도 못 타고,
통신이 끊기면 병원도 마비돼요.
나는 그 연결을 하루에도 수십 번 확인하죠.”
그는 아직도 지하에서 혼자 걸을 때,
가끔은 ‘내가 지금 도시 밑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지상에선 모두 바쁘게 살아가지만,
그 위엔 우리가 만든 조용한 질서가 있어요.
나는 그 질서를 매일 확인하러 가는 거예요.”
강씨는 은퇴까지 몇 년 남지 않았지만
가능하다면 젊은 세대가 이 일을 이어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하 노동도 필요해요.
보이진 않지만, 없어지면 도시도 안 움직여요.”
오늘도 그는 계단을 타고
다시 어두운 통로로 내려간다.
도시의 빛은 지하의 발걸음 위에 있다.
그게 지하 공동구 순찰원 강씨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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