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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시립 도서관 개관 전 청소원 이씨의 하루: 책이 숨 쉬는 공간을 먼저 맞이하는 사람

독서가 시작되기 전, 가장 먼저 움직이는 사람

도서관은 도시의 가장 조용한 공간이다.
사람들은 거기서 책을 펼치고, 필기를 하고, 시간을 보내고, 삶의 방향을 정한다.
하지만 그 고요한 공간이 아침을 맞이하기 전,
먼저 움직이는 손이 있다.
먼지를 닦고, 창을 열고, 화장실을 정리하고, 책상을 정돈하는 사람.

이인순(가명) 씨, 64세.
서울 북부의 한 시립 도서관에서 개관 전 청소 업무를 6년째 맡고 있는 환경미화원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5시 30분 도서관에 도착해
열람실, 화장실, 자료실, 복도, 계단, 사무실, 어린이 자료관까지
1시간 30분 동안 도서관의 모든 구역을 순회하며 정리한다.

“책은 조용하지만 먼지를 참 잘 먹어요.
누가 안 썼다고 깨끗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매일, 꼭 손으로 닦아야 해요.”

오늘은 이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도서관이 열리기 전, 책보다 먼저 자리를 잡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시립 도서관 개관 전 가정 먼저 움직이는 사람

새벽 5시 30분, 아직 닫힌 문 앞에서 손에 빗자루를 든다

이씨의 하루는 세상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시작된다.
정문 경비와 인사를 나눈 뒤, 지하 보관실 옆 청소도구실에서 장비를 챙긴다.
밀대, 대걸레, 물걸레, 소형 쓰레받기, 고무장갑, 유리창 전용 와이퍼, 탈취제.
그녀는 익숙한 동선으로 1층 로비부터 3층 어린이 자료실까지 순서대로 올라간다.

“사람이 없을 때가 청소하기 제일 좋아요.
발자국도 없고, 조용하니까 내 손 소리만 들려요.”

그녀가 가장 먼저 하는 건 책상 위 먼지 닦기와 의자 정렬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퇴실할 땐 책상 정리 없이 나가기 때문에,
밤새 쌓인 먼지와 책상 위 흘린 음료자국, 남겨진 메모지, 연필 부스러기 등을 정리해야 한다.

“학생들이 새벽부터 와서 앉는데,
그 자리가 깨끗해야 하루를 잘 시작하겠죠.”

화장실은 다음 순서다.
변기 세정, 세면대 물때 제거, 바닥 물기 제거, 페이퍼 수거, 손건조기 상태 확인, 악취 제거까지
모두 손으로 직접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하루라도 안 닦으면 금방 냄새 나고 곰팡이 피죠.
도서관은 냄새 나면 절대 안 돼요.”

조용한 공간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건 반복 덕분이다

이씨는 ‘깨끗함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매일 반복하는 습관’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도서관은 늘 깨끗하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바로 우리가 매일 하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오전 7시 전까지는 책꽂이 사이 복도,
복사기 주변, 엘리베이터 앞, 계단 난간, 유리문 손잡이
까지 전부 닦아야 한다.
“가장 먼지가 많이 묻는 데가 손잡이랑 버튼이에요.
사람 손이 닿는 자리가 제일 더러워요.”

책꽂이 위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은 책 위 먼지를 하나하나 털고,
도서관 직원과 협조해 벽 틈, 환풍구 청소도 같이 진행
한다.
“먼지는 높은 데서 떨어지니까, 위에 쌓이면 안 돼요.”

또한, 아이들이 많은 어린이 열람실은
장난감이나 쿠션, 책상 사이에 음식물 부스러기
가 자주 남는다.
“간식 먹고 그냥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그거 안 치우면 벌레 생겨요.”

그녀는 매일 정해진 루틴을 반복하면서도
‘어제보다 오늘이 더 깨끗하게 느껴지도록’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일한다.

조용한 인사 하나가 하루를 바꾸는 순간

이씨는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사람이 책보다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많다고 말한다.

“한 학생이 어느 날 그러더라고요.
‘청소하시는 분 덕분에 공부 잘 돼요’
그 말이 하루 종일 생각났어요.”

대부분의 이용자는 그녀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가끔은 “안녕하세요” 한마디,
“오늘도 고생 많으시네요”라는 인사가
큰 힘이 된다.

“어떤 날은 말 한마디 없이 하루가 끝날 때도 있어요.
그래도 내가 닦은 자리에서
누군가 집중하고 있다면 그걸로 된 거죠.”

도서관 직원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서가 정리팀, 사서팀과 협조하며
불편한 구역이나 보수 요청 사항을 수시로 공유한다.
“고장 난 문이나 전등이 있으면 내가 먼저 발견해요.
청소하면서 늘 보고 다니니까요.”

그녀는 조용한 도서관의 작은 ‘관리자’이자
‘공간의 감시자’로서 매일 그 자리를 지킨다.

이씨가 바라는 건, 책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존중

이씨는 매일같이 책이 숨 쉬는 공간을 준비하며,
그 책을 읽는 사람들도 조금 더 조심해주길 바란다.

“책은 소중히 다루면서
책상이랑 의자는 함부로 써요.
음료 쏟고도 그냥 나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녀가 바라는 건 크지 않다.
사용한 자리를 가볍게 닦고 나가기,
쓰레기는 직접 분리배출하기,
화장실은 다음 사람을 위해 깔끔히 쓰기.

“그것만 해줘도 나는 일이 반은 줄어요.”

이씨는 곧 정년을 앞두고 있다.
그래도 은퇴 전까지는
‘도서관의 아침을 항상 깨끗하게 시작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나는 책을 좋아해요.
책은 사람을 고요하게 하잖아요.
근데 그 고요가 유지되려면
내가 매일 그걸 정리해줘야 해요.”

오늘도 그녀는 대걸레를 접고,
깨끗한 창틀을 한번 더 닦은 뒤
8시 정각, 개관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는다.

도서관은 책으로 열리고,
그 책은 누군가의 손이 닿기 전에 이미 준비돼 있다.

그게 시립 도서관 청소원 이씨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