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이 닫힌 뒤에도 학교는 계속 숨을 쉰다
해질 무렵, 운동장에 남은 공이 굴러가고
아이들의 발소리가 하나둘 사라질 때,
학교는 조용히 하루의 마지막 숨을 내쉰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서 눈을 뜨는 사람도 있다.
교문을 다시 잠그고, 복도를 순찰하며, 낯선 인기척을 막고,
그 공간을 하루 종일 지켜내는 한 사람의 하루가 시작된다.
박용덕(가명) 씨, 63세.
경기도의 한 공립 중학교에서
야간당직 보안원으로 6년째 근무 중이다.
그는 오후 5시 30분부터 다음 날 아침 7시 30분까지,
학교 안팎을 순찰하고,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며, 비상상황에 대응하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학교가 문 닫으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시간부터 내 하루는 시작이에요.
학교는 밤에도 계속 지켜져야 하니까요.”
오늘은 박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학생들이 없는 시간에, 학교를 지키는 사람의 조용한 노동을 기록해본다.
오후 5시 30분, 교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시간
박씨는 오후 5시 무렵 교문 앞 경비실에 도착한다.
야간당직 교대 시간은 정확하다.
낮 근무자가 출근부를 정리하고 퇴근하면
그는 곧바로 야간순찰 기록부에 자신의 이름과 날짜, 시작 시각을 기재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교내 전체 전등 확인이다.
- 외부 조명 이상 여부
- 복도 및 화장실 센서등 작동 여부
- 비상구 유도등 점등 상태
이 모든 걸 직접 두 발로 확인한다.
“아이들이 없는 공간은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요.
작은 불빛 하나가 불안함을 없애주니까요.”
그 다음은 건물 외부 순찰.
정문·후문·운동장·급식실·보건실 출입문이 모두 잠겼는지,
창문이 열린 교실은 없는지, 차량이 무단 진입해 있지는 않은지 등을 점검한다.
그는 항상 손전등과 무전기, 마스터키 뭉치를 허리에 차고 다닌다.
“사고는 항상 방심한 곳에서 생겨요.
그래서 나는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늘 새롭게 봐요.”
밤의 학교는 낮보다 더 많은 감각이 필요하다
해가 지고, 학교 전체에 어둠이 내리면
박씨는 2시간 간격으로 정기 순찰을 시작한다.
1층부터 옥상까지, 모든 복도, 계단, 교실, 창고, 전기실, 급탕실을 돈다.
“특이한 냄새, 문에 낀 종이 한 장,
새벽에 울리는 경보음 하나도 그냥 넘기면 안 돼요.”
가장 빈번한 상황은 인근 주민의 무단 출입 시도다.
“운동장 산책 나온 주민이 ‘잠깐만’ 하면서 들어오려는 경우,
야간에 공용 화장실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어요.
규정상 허용 안 돼요.
그래도 말은 조심히 해야 해요.”
박씨는 종종 화재경보기 오작동, 강풍에 의한 출입문 개방,
정전 후 시스템 재부팅 같은 기술적 문제에도 대처해야 한다.
“기술자가 올 수 없는 시간이니까,
간단한 건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해요.”
겨울철에는 보일러 배관 얼지 않도록 순환 체크,
장마철엔 누수와 빗물 고임 지점 점검도 중요한 일이다.
“학교가 작아 보여도
건물마다 수십 개의 작은 위협이 숨어 있어요.
그걸 밤새 지켜보는 게 내 일이에요.”
혼자 있는 밤,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으로
박씨는 “야간 보안원은 혼자 일하지만,
혼자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려 애쓴다”고 말한다.
새벽 2시, 복도에 울리는 냉장고 모터 소리.
멀리서 들리는 고양이 울음.
비상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금속음.
“이런 소리들은 익숙해져야 해요.
처음엔 겁도 났지만, 이제는 내 감각이 돼버렸죠.”
하지만 그는 가장 무서운 순간이
침입도 불도 아니고,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감정’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학생들이 집에 가고, 선생님들도 퇴근하고 나면
교정에 딱 나 하나 남죠.
그 고요 속에서 가끔은
내가 이 공간의 그림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마다 그는 교실에 남겨진 아이들의 쪽지,
칠판에 남은 수학 공식, 잊혀진 필통 하나를 본다.
“그걸 보면 아, 이 공간이 살아 있구나 싶어요.
내가 지키는 가치가 있구나 하고요.”
박씨가 바라는 건, 밤의 노고가 낮에도 기억되는 사회
박씨는 야간 보안원을
“학교가 낮에 안전할 수 있도록 밤을 지켜주는 조율자”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밤새 한 번도 꺼지지 않은 손전등과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은 경보음 뒤엔
늘 내가 있었어요.”
그는 아침 7시, 낮 근무자에게 인계를 마치고
천천히 퇴근길에 오른다.
그때 학생들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면,
그 한마디가 하루치 피로를 없애준다고 말한다.
“나는 이 학교에서 제일 늦게 잠들고,
제일 먼저 깨어 있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건 누군가가 내 뒤에서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함이죠.”
그는 오늘도 출입기록부에
“이상 없음”이라는 마지막 네 글자를 남기고,
다음 근무자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다.
학교는 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살아 있다.
그 조용한 시간을 누군가는 지키고 있다.
그게 학교 야간당직 보안원 박씨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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