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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마을버스 배차관리원 정씨의 하루: 시간 위를 달리는 차량을 조율하는 사람

도시의 분 단위 이동은 누군가의 계산에서 시작된다

출근길, 통학길, 장보러 가는 길.
마을버스는 짧지만 중요한 구간을 책임지는 도시의 모세혈관 같은 존재다.
길고 복잡한 지하철보다 빠르고,
택시보다 경제적이며,
무거운 짐을 들고 걷는 사람들에게는 버스 정류장까지의 마지막 연결선이 된다.

그런 마을버스가 정해진 시간에 멈추지 않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시간으로 배차 상황을 관리하는 사람들
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정재만(가명) 씨, 57세다.

그는 서울 강북의 한 마을버스 업체에서
전체 노선의 배차 간격 관리, 차량 정비 보고, 운전자 휴게 시간 조율, GPS 시스템 점검, 교통 상황에 따른 운행 조정
8년째 맡고 있는 마을버스 배차관리원이다.

“버스는 그냥 굴러가는 게 아니에요.
뒤에서 시간과 상황을 맞추는 손이 있어야
사람들이 ‘평소처럼’ 탈 수 있는 거죠.”

오늘은 정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마을버스라는 작지만 치밀한 교통망을 유지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분 단위로 조율되어 운행되는 마을버스

 

오전 5시 30분, 배차표와 운행기록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정씨의 하루는 누구보다 이른 새벽에 시작된다.
마을버스는 첫차가 대개 오전 5시 50분~6시 사이에 출발하기 때문에
그보다 먼저 도착해 차고지에서 차량 상태를 확인하고, 운전자 출근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버스는 정시에 출발 못 하면
사람들이 정류장에서 진짜 불편해하죠.
그래서 시간 약속은 절대 못 어겨요.”

그는 가장 먼저

  • 배차표 출력
  • 출발 시간 확인
  • 전날 운행일지 검토
  • 정비 상황 체크
  • 차량별 GPS 점검
  • 운전자 출근 여부 파악
    을 마친 뒤, 각 차량의 배차 간격을 조율한다.

마을버스는 대부분 1015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차량은 한 노선당 48대까지 구성
되어 있다.
정씨는 이 시간 간격이 들쭉날쭉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일 중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고 한 번 나거나, 교통체증 심한 구간이 생기면
전체 흐름이 깨져요.
그럴 땐 순서 바꾸거나, 휴게시간 줄여서라도 맞춰야 해요.”

시간과 차량 사이에서 숨 쉬듯 조율하는 손

오전 7시부터는 출근길 승객이 몰리는 ‘피크타임’이다.
정씨는 이 시간에 모니터 앞에 거의 붙어 있는다.
GPS 기반 운행관제 시스템으로
버스가 어느 정류장에 있고,
정류장 사이에 얼마나 밀렸는지,
정해진 속도보다 늦거나 빠른 차는 없는지
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누가 빠르면 뒤차가 따라잡고,
누가 느리면 정류장에 두 대가 서요.
그걸 조절하는 게 내 손가락이에요.”

정씨는 무전을 통해 기사들에게
“5분 뒤에 출발하세요”
“잠깐 멈춰 계세요”
“지금 그대로 가면 겹칩니다” 같은 안내를 계속 전달한다.

또한 중간에

  • 사고 접수
  • 타이어 펑크
  • 급체 기사 교체 요청
    같은 돌발상황이 생기면
    정씨는 예비차량을 투입하거나, 다른 기사의 배차표를 조정해 구멍을 메운다.

“여기선 한 명만 아파도 전체 흐름이 흔들려요.
그래서 모든 경우의 수를 늘 머릿속에 넣고 있어야 해요.”

마을버스의 흐름은 사람의 리듬으로 이어진다

정씨는 자신이 일하는 공간을
“작은 교통센터”라고 말한다.
화려한 장비는 없지만, 하루에 150여 회 왕복하는 버스가
단 한 번도 비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작은 관제탑
인 셈이다.

“내가 잘하면 사람들은 평소처럼 출근해요.
근데 내가 놓치면,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느끼죠.”

그는 매일 오전 10시 무렵
1차 회차 차량이 차고지에 들어오면
운전자와 간단한 상황 브리핑을 하고, 차량 하부를 점검한다.
문제 없는 차량은 세척 후 다시 배차되고,
이상 소음이나 진동이 감지되면 예비차량으로 교체된다.

또한 배차표를 실시간 수정해
중식시간 확보, 기사 교대시간 분배, 도로 통제 시 우회 노선 결정까지
하루 종일 “시스템 위에서 사람과 차량의 균형을 맞추는 일”을 한다.

“버스는 기계지만,
그 기계를 움직이는 건 결국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하루를 살아가도록 리듬을 만들어주는 거죠.”

정씨가 바라는 건, 작지만 정직한 흐름을 이해받는 일

정씨는 마을버스를 “가장 작은 교통이지만,
가장 가까운 삶과 연결된 교통”이라고 말한다.
“지하철역 앞까지 걷지 못하는 노인,
집 앞에서 바로 출발하고 싶은 직장인,
아이를 픽업하는 부모…
다 마을버스 타고 다녀요.”

그는 한 번도 “정말 수고한다”는 인사를 듣기 어려웠지만,
정류장에서 기사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승객을 볼 때마다 뭉클하다고 말한다.

“나는 안 보이지만,
내가 만든 시간표 덕분에 누군가 편히 이동하면
그게 내가 있는 이유죠.”

정씨는 오늘도 노선표에 빨간 펜으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정확한 배차를 맞추고,
내일을 위한 차량 정비 계획서를 정리한다.

정확히 11분 후,
다음 버스가 도착해야 한다.

그게 마을버스 배차관리원 정씨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