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낮보다 밤이 더 길다.
불빛은 꺼지지 않지만,
차량은 줄고 사람의 발자국은 사라진다.
그 텅 빈 도로 위를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차량이 있다.
바로 도로 청소차다.
이청만(가명) 씨, 59세.
서울 시내 야간 도로 청소차를 운전한 지 12년째.
그는 사람 없는 길 위에서,
사람이 다녀간 흔적을 닦아내고 사라지는 일을 매일 반복한다.
“낮에는 차가 많아서 청소가 어려워요.
그래서 우린 밤에 일해요.
사람들이 출근할 때 깨끗한 도로를 밟을 수 있도록.”
오늘은 이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밤의 도시를 닦는 사람의 손끝과 차바퀴 소리를 기록해본다.
오후 10시, 정비를 마치고 출발하는 첫 바퀴
이씨는 밤 10시에 차량 출고장을 출발한다.
도로청소차는 일반 차량과 다르다.
흡입 브러시, 물 분사 노즐, 분진 필터, 회전 솔 장치 등
복잡한 부속들이 달려 있어, 출발 전 점검이 필수다.
“브러시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도로에 먼지가 그대로 남아요.
내 눈이 먼저 확인하고 출발해야 하죠.”
그는 청소차의 각 부위를 수동 조작 패널로 조절하고,
구간별 브러시 속도와 물 분사 세기를 조정한다.
“골목은 강하게, 도심은 넓게, 커브 구간은 천천히”
그건 오직 경험이 쌓인 운전원이 해낼 수 있는 조율이다.
서울 시내는 야간에도 택시, 청소 차량, 물류 트럭이 다닌다.
이씨는 그 속에서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브러시를 돌리며
한 구간을 20~30분에 걸쳐 정밀하게 주행한다.
누군가 남기고 간 하루의 흔적을 지우는 일
도로 위에는 단순한 흙먼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낙엽, 음료수 병, 담배꽁초, 토사, 공사 잔해, 가로수 열매까지
사람들이 흘리고 놓고 간 하루의 자취가 도로 위에 쌓여 있다.
“비 오는 다음 날은 진흙이 많고,
주말 밤 뒤엔 유리조각도 많아요.
사람 없는 시간일수록, 사람이 더 많이 남긴 흔적이 보여요.”
이씨는 흡입 호스에 낀 비닐을 직접 제거하고,
도로 배수구 주변의 쓰레기를 손으로 건져내기도 한다.
단순히 차량만 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내려서 해야 할 일도 함께 존재하는 직업이다.
“청소차 안에는 온갖 냄새가 들어와요.
그래도 내가 지나간 자리가 깨끗해졌다는 걸 보면 참 묘하죠.”
그는 매일 새벽 3시쯤
중간 물탱크를 다시 채우고, 수거된 쓰레기를 분류장에 옮기며
다음 구간 청소를 준비한다.
아침이 오기 전, 도시는 다시 제 얼굴을 찾는다
이씨의 마지막 구간은 대체로 출근 차량이 몰리는 5시 이전에 끝나야 한다.
하루 5시간 동안,
그는 서울 시내 약 35~40km 구간을 순환한다.
“내가 지나간 자리엔 타이어 자국이 없고,
먼지가 없고, 이상하게 고요해요.
그걸 보면 아, 오늘도 잘 닦았구나 싶죠.”
도로 청소는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씨는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않는 게 최고의 칭찬”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매끄럽고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의미다.
“누군가 내 뒤를 밟을 때
‘깨끗하네’ 하고 한 번이라도 생각하면
그 하루는 잘 만든 거예요.”
작업이 끝난 새벽 5시 30분.
도시는 다시 출근길을 맞는다.
그리고 이씨는
햇빛이 비치기 직전에 가장 조용한 거리에서 조심히 차고지로 돌아간다.
그게 도로 청소차 운전원 이씨의 하루다.
야간 도로 위에서 느끼는 '도시의 맨얼굴'
이씨는 “밤의 도로를 지켜보면, 도시가 숨 쉬는 방향이 보인다”고 말한다.
낮에는 가려졌던 건물 틈,
불이 꺼진 상가의 창문,
이른 새벽 배달트럭이 분주히 드나드는 골목까지.
그 모든 모습이 이씨에게는 “가장 솔직한 도시의 얼굴”이다.
“낮에는 도시가 화장한 얼굴이라면,
새벽엔 세수하기 직전 모습 같아요.
그 꾸밈없음이 나는 좋아요.”
그는 조용한 도로 위를 달리며,
밤새 택시기사들이 세운 흔적, 유흥가에 버려진 박스들,
간신히 퇴근한 배달원들의 마지막 배기음까지 온몸으로 듣는다.
그 소리들이 겹쳐 도시의 리듬이 되고,
그 리듬 위에서 자신의 청소차가 ‘텅 빈 박자’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고요함 속에도 늘 긴장은 깔려 있다
청소차 운전은 조용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야간에는 무단 주정차 차량, 취객, 도로 함몰, 급정거 차량 등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특히 사고 위험이 가장 높은 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는 말한다.
“취한 사람이 도로 가장자리에서 자고 있을 때가 있어요.
그걸 못 보면 큰일 나요.
그래서 항상 시야를 넓게, 멀리 봐야 해요.”
이씨는 그래서 청소차 속도를 절대 30km/h 이상으로 올리지 않는다.
비가 오면 더 느리게, 눈이 내리면 경로를 바꾼다.
조용한 운전이지만, 매 순간은 예민하다.
“사람들은 내가 기계처럼 다닌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는 계속 판단하고 있어요.
도로 위의 모든 변화는 내 책임이에요.”
이씨가 바라는 건, 도시가 자신처럼 조용히 돌아가는 것
이씨는 누군가에게 자랑할 일 없는 직업이지만,
자신에게는 “확실한 존재감이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도시의 맨 끝을 닦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그냥 조용히 제자리를 만들어주는 사람이죠.”
가끔은 청소차 옆을 지나가며
아이들이 “엄마다, 청소차다!” 하고 소리칠 때가 있다.
그럴 때 이씨는 살짝 속도를 줄이며 손을 들어 인사한다.
그 짧은 순간이 하루 중 가장 사람답다고 느끼는 시간이다.
“내가 지나가고 나면 도로가 깨끗해지고,
그 위로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요.
그게 내가 하는 일이에요.
아무도 모르게,
모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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