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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철거 현장 안전감시원 장씨의 하루: 무너지는 공간 속 질서를 지키는 사람

건물이 무너질 땐, 소리가 땅을 울리고 먼지가 하늘을 덮는다.
무너진 콘크리트 조각과 금속 철근이 바닥에 떨어질 때
그 모든 장면 속에 ‘파괴’만 있는 건 아니다.
그 현장에는 “어디까지 무너져야 하는지”, “누가 얼만큼 가까이 있어도 되는지”를
끝까지 확인하고 통제하는 사람의 눈이 있다.

장세윤(가명) 씨, 56세.
서울 도심 곳곳의 철거 현장에서 안전감시원으로 9년째 일하는 베테랑이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 중장비 앞을 오가며
“이대로 괜찮은지”를 끊임없이 묻는 사람이다.

“철거는 멈출 수 없어요.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그 끝까지 ‘멈춰야 할 순간’을 보기 위해 있는 거예요.”

오늘은 장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철거라는 거친 풍경 속에서 질서를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무너지는 건물 속 질서를 지켜야하는 철거 현장의 안전감시원

오전 6시 30분, 무너뜨리기 전에 먼저 세우는 체크리스트

장씨의 하루는 철거 시작 전 '안전 점검표'를 출력하는 일로 시작된다.
이 체크리스트에는 50가지 항목이 있다.
헬멧 착용 여부, 근로자 대기 위치, 가림막 고정 상태, 중장비 반경, 진입 차단선 설치 여부…

“사고는 대부분 시작 전에 정리 안 된 곳에서 나요.
철거는 한번 시작하면 후진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후진하기 전에 점검하죠.”

현장 작업자들은 바쁘게 몸을 움직이지만
장씨는 말없이 구조물의 기울기, 벽체 균열, 먼지 차단막의 바람 반응까지 살핀다.

그는 보통 굴착기 시작 위치에서 10~15미터 앞에 먼저 서 있다.
만약 균열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거나,
바닥 지지력이 흔들리면 작업을 ‘즉시 중단’시킬 권한이 있다.

“그 한마디 ‘스톱’이 사람 한 명 살려요.
그래서 그 말을 아끼지 않아요.”

 

철근이 튀는 순간, 감시는 멈추지 않는다

작업이 시작되면 철거 현장은 긴장감으로 꽉 찬다.
굴삭기의 쇠망치가 벽체를 두드리면,
먼지와 콘크리트 조각이 동시에 쏟아진다.
장씨는 비상벨, 무전기, 수신호를 손에 쥐고 작업자 옆을 지킨다.

“소리도 안 들릴 만큼 시끄럽기 때문에
손으로 하는 수신호가 생명줄이에요.
눈을 마주치는 게 안전의 시작이에요.”

그는 항상 2초 후 일어날 상황을 예측하며 위치를 바꾼다.
철거되는 방향, 벽체의 무게, 부서진 잔재의 낙하 위치까지
몸으로 계산하고, 가장 먼저 도망칠 수 있는 동선을 확보한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 피하는 거예요.
그래야 다른 사람도 같이 피할 수 있어요.”

장씨는 “철거는 감각이 아니라 훈련”이라고 말한다.
매일 비슷해 보여도,
벽체 하나 무너지는 각도가 5도만 달라도
사람이 설 자리는 완전히 달라진다.

 

무너진 자리에도 질서를 남기는 사람

하루 작업이 끝나면 장씨는 현장 포스트를 돌며 기록을 남긴다.
그날 부러진 철근의 크기, 잔재 이동 경로, 쓰러진 가림막 위치, 방진망 파손 여부…
이 모든 건 내일의 안전을 위한 사후 점검 데이터가 된다.

“철거는 하루에 끝나는 게 아니에요.
어제 남은 흔적이 내일의 위험이 돼요.”

장씨는 현장 한쪽에 붙은 “무사고 237일” 스티커를 볼 때마다 어깨를 한 번 피곤하게 펴본다.
작은 사고도 큰 사고도 없는 날,
비로소 그는 자신의 하루를 “잘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뭘 만들진 않아요.
하지만 누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사람은 될 수 있어요.”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그 안에서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보는 사람.
그게 철거 현장 안전감시원 장씨의 하루다.

 

누가 봐도 ‘지나간 자리’지만, 나는 그 안에서 계속 머문다

철거 현장은 흔적이 남지 않는 공간이다.
무너지고 쓸려나가고, 결국 텅 빈 공터만 남는다.
하지만 장씨에게는 그 공간이 “다녀간 이들의 기억이 쌓인 장소”로 남는다.

“여기 예전엔 슈퍼였어요.
작업할 때 그 사장님이 인사 와서, ‘내 가게 없어지는 거 아쉽지만 안전하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어요.”

그는 철거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공간 하나를 정리하고 다음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현장이 끝난 후에도 마지막 먼지를 닦고, 파쇄된 잔해를 수거하는 일까지 직접 확인한다.

“현장이 끝났다고 다 끝난 게 아니에요.
사람 마음도 같이 정리돼야 진짜 마무리예요.”

그는 어떤 철거 현장에서는
남겨진 어린이 낙서 하나를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지워지기 전에, 누군가의 삶이 있었던 자국이라는 걸 기억하고 싶었어요.”

 

장씨가 바라는 건, ‘아무 일 없었다는 기록’이 계속 이어지는 것

장씨는 자신이 한 일을 “기억에 남지 않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사고가 없으면,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 점에 가장 큰 자부심을 느낀다.

“기억 안 남는 하루,
그게 안전감시원이 가장 잘한 하루예요.”

그는 하루가 끝나면 무전기 배터리를 빼고, 헬멧을 닦고, 장갑을 말리는 시간이 가장 평온하다고 한다.
그날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철거를 파괴라고 보지만,
나는 그 안에서 ‘질서’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누구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제자리에 돌아가게 만드는 게 내 일이니까요.”

무너지는 건물이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
장씨는 이렇게 답했다.
“무서운 건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을 놓치는 순간이에요.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 서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