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달 전기요금을 낸다.
고지서에 찍힌 숫자를 보고 “이번 달은 많이 썼네”라고 생각하며
전기 사용량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그러나 그 숫자가 어떻게 계산되는지,
그 장치가 언제 어떻게 바뀌고 관리되는지는 거의 알지 못한다.
박종길(가명) 씨, 57세.
서울 외곽 한전 협력 업체 소속으로
주거지와 상가의 전기 계량기 교체 및 유지 점검 업무를 11년째 수행 중이다.
그는 매일 수십 곳을 돌아다니며
노후된 계량기를 철거하고, 새 계량기를 설치하고,
이상 전력 흐름이나 오차 수치를 직접 확인한다.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량기는 눈으로 보여요.
그 숫자가 잘못되면 요금이 틀어지고,
그 틀어진 걸 책임지는 게 제 일이에요.”
오늘은 박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도시 전기 흐름의 뒤편을 조용히 관리하는 손의 기록을 따라가본다.
오전 7시 50분, 배정표보다 먼저 날씨를 확인한다
전기 계량기 교체는 실내가 아니라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많다.
특히 오래된 주택이나 소형 상가, 창고, 공장 건물의 계량기는
벽면 외부나 좁은 골목 전신주 옆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장마철엔 누전 위험도 있어서,
비 오면 아예 작업이 연기되기도 해요.
날씨가 제일 중요한 변수예요.”
박씨는 아침마다 스마트폰 날씨 앱을 세 번 확인한다.
우비, 절연 장갑, 방수테이프, 절연드라이버, 전류 측정기, 예비 계량기, 데이터 패드를 들고
첫 작업지로 출발한다.
첫 번째 방문지는 1985년에 지어진 다세대 주택.
이 건물은 아직 디지털 계량기가 설치되지 않은 채
회전 바늘형 기계식 계량기를 쓰고 있었다.
“계량기 앞 투명 커버가 이미 뿌옇게 변해서
숫자가 거의 안 보였어요.
이럴 땐 무조건 교체 대상이죠.”
전기는 흐르지만, 손은 멈춰 있어야 한다
계량기 교체는 단순히 기계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가정이나 상가의 전기 흐름을 잠시 ‘멈추고’,
모든 회선을 정확히 연결한 뒤 다시 흐르게 만드는 섬세한 작업이다.
“계량기에서 전기가 직접 나오진 않지만,
기계 뒷단에 있는 배선은 전류가 살아 있어요.
순간적으로 감전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박씨는 항상
절연장갑, 접지테스터, 고무패드, 고무매트를 철저히 준비한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손이 ‘어디에 닿는지’ 끝까지 알고 있는 것이다.
“하나 잘못 연결하면 계량기 고장이 아니라
집 전체 전기가 나가요.
그래서 머릿속으로 도면을 상상하면서 손을 움직여야 해요.”
그는 하루 평균 1215개 계량기를 교체하거나 점검한다.30분.
1대당 평균 소요 시간은 20
여름철에는 작업 후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박씨가 연결하는 건 전기뿐 아니라, 집의 시간이다
박씨는 계량기를 바꿀 때마다
그 집의 시간이 하나 바뀐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예전 계량기는 10년, 20년 넘게 쓴 게 많아요.
그동안 어떤 전기를 썼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숫자에 다 들어 있어요.”
그는 가끔 교체한 계량기의 마지막 숫자를 사진으로 남겨두기도 한다.
“의미 없지만, 기분은 있어요.
그 숫자가 ‘이 집의 지난 시간’ 같아서요.”
또한 그는 종종
“전기요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느냐”는 민원 전화를 받는다.
그럴 때는 교체 전후 데이터를 비교해
전력 소비의 패턴 차이, 계절 영향, 오차 여부까지 친절히 설명해준다.
“전기는 결국 사람의 생활을 반영해요.
밝게 살았는지, 절약하며 살았는지
숫자 뒤에 그 삶이 있어요.”
그가 교체하는 건 기계지만,
그 기계 안엔 사람이 살아온 기록이 담겨 있다.
그게 전기 계량기 교체 기사 박씨의 하루다.
계량기 앞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그들의 표정은 다 다르다
박씨는 하루에도 여러 명의 고객과 마주한다.
누군가는 말없이 문을 열어주고,
누군가는 계량기 위치도 모른 채 당황하고,
어떤 이들은 “전기 끊기는 거 아니죠?” 하고 조심스레 묻는다.
“전기라는 건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조금만 말투가 딱딱해도 불안해하세요.
그래서 최대한 천천히, 설명을 먼저 해줘요.”
가끔은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도 없고,
좁은 틈 사이로 진입해야 하는 외부 계량기도 있다.
그럴 땐 마치 도시의 틈새로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문 사이, 창고 뒤, 담장 밑…
계량기는 말 그대로 집과 세상의 경계에 있어요.
그 경계를 여는 건 내 일이에요.”
기술직은 손보다 눈이 먼저 일해야 한다
박씨는 기술직을 20년 넘게 해온 베테랑이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건 “손보다 눈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계량기를 뜯기 전에 구조를 봐야 하고,
전선이 얼마나 늘어나 있는지,
외부 충격은 없었는지,
혹시 누전 흔적은 없는지 다 살펴야 해요.”
특히 요즘 디지털 계량기는
데이터 전송 기능, 원격 검침 기능, 누전 차단 회로 등이 포함돼 있어
기계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이해해야 하는 복합 기술이 필요하다.
“눈으로 미리 판단 못 하면, 손으로는 이미 늦어요.
기술은 힘이 아니라 ‘순간을 읽는 감각’이에요.”
그는 신입 기사들에게 항상
“전기 잡기 전에, 눈부터 훈련해라”는 말을 반복한다.
박씨가 바라는 건, 누군가의 전기가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하루 작업을 마치고 장비를 정리할 때,
박씨는 종종 계량기의 숫자가 천천히 돌아가는 소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딸깍, 딸깍…”
그 작은 소리는 한 가정의 삶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 소리가 멈추지 않는 게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예요.”
그는 자신의 일이 누군가에게
단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당연함’이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자부심도 함께 가지고 있다.
“전기는 늘 흐르고,
그 흐름을 지키는 손이 있어야
도시는 멈추지 않아요.”
계량기의 작은 숫자를 지키는 일,
그게 전기 계량기 교체 기사 박씨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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