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농약을 뿌리는 일이 가장 힘든 노동 중 하나였다.
무거운 분무기통을 짊어지고, 긴 고무 호스를 들고
논두렁을 걸어 다니며,
사람이 직접 흙탕물과 뙤약볕 속에서 방제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그 일은 하늘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정환(가명) 씨, 42세.
충청남도 보령 일대에서 농약 살포 전문 드론 조종사로 4년째 활동 중이다.
그는 벼, 고추, 콩, 감자밭 위로 드론을 띄우며
하루에 수십만 평의 땅 위에 정밀하게 농약을 분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드론이 대신해준다고 쉽게 보지만,
그걸 조종하고 관리하는 일은 훨씬 더 예민하고 복잡해요.
하늘에서 약을 뿌린다는 건, 기술이 아니라 감각이에요.”
오늘은 이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농촌의 새로운 노동, 하늘 위의 방제를 책임지는 손을 기록해본다.
아침 5시, 햇빛보다 먼저 일어나는 날들
이씨는 해가 뜨기 전부터 장비를 꺼낸다.
드론 본체, 배터리팩 3~4세트, 약제통, 비행 컨트롤러, GPS 장비, 통신 송수신기, 태블릿 노트북.
그가 하루 동안 준비해야 하는 장비만 해도 승용차 한 대 분량이다.
“농약은 날이 너무 뜨겁기 전에 해야 해요.
약이 증발하거나 바람에 흩어지면 안 되거든요.”
작업 시작 전 이씨는 먼저
해당 밭의 면적과 경계, 고도, 비탈 각도, 방제 구역을 태블릿으로 그린다.
그다음 드론에 GPS 좌표를 입력하고,
약제를 정확한 비율로 희석해 약통에 주입한다.
“한 번에 10리터 정도 들어가는데,
너무 무겁게 하면 드론이 흔들리고,
가볍게 하면 뿌리는 범위가 줄어들어요.
매번 미세하게 조정해요.”
드론은 바람과 시간, 땅의 기분까지 읽어야 한다
작업이 시작되면 드론은 자동이지만 반자동이다.
위치나 경로는 미리 설정해도,
실제로 이씨는 바람의 방향, 고도 차이, 약제 양, 속도 변화, 장애물 유무를
항상 눈으로 확인하며 수동 조작을 병행한다.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면 센서가 오작동할 수 있어요.
논 위에 새 떼가 날아들면 다시 수동 모드로 전환해서 회피해야 하죠.”
게다가 이씨가 조종하는 드론은
한 대당 가격이 1,500만 원 이상.
한 번 추락하면 수리비만 수백만 원에 달한다.
“기계는 항상 완벽하지 않아요.
그래서 조종사는 항상 예측하고 준비하고 있어야 해요.
하늘 위지만, 발은 논두렁에 있는 기분이에요.”
그는 한 밭당 평균 1520분을 소요하며10곳을 이동해 작업한다.
하루에 7
그 시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이씨가 살포하는 건 농약이 아니라 믿음이다
이씨는 요즘 80대 농부들보다 자신을 더 자주 찾는 건 50~60대 자녀들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이제 논에 들어가기 힘들어서요”
“우리 밭은 방제 좀 더 꼼꼼하게 부탁해요”
이런 말이 늘어난다.
“이젠 농약을 직접 뿌리는 시대가 아니라,
맡기는 시대가 된 거죠.
그만큼 내가 정확하게 해야 해요.”
그래서 이씨는 끝나고도 항상 날아간 영상 기록과 방제 데이터를 공유한다.
언제, 어디를, 몇 리터 뿌렸는지
농가에 설명해주면 “고맙다”는 말이 돌아온다.
“내가 실수하면 밭 전체가 망가져요.
그래서 드론을 띄울 때마다
‘이건 그냥 기계가 아니라 책임이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해요.”
그가 하늘 위에서 뿌리는 건 농약이 아니라 신뢰다.
논두렁을 걸어보지 않은 조종사는 진짜 조종사가 아니다
이씨는 드론만 잘 조종한다고 해서
누구나 농약 방제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하늘에서만 보지 말고,
땅을 먼저 느껴야 해요.
논두렁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직접 서봐야 진짜예요.”
그는 처음 드론을 배울 때
일부러 며칠간 직접 농약통을 짊어지고 논을 돌았다고 한다.
그 일을 직접 해보니
왜 드론이 필요한지, 어디에 민감한지 몸으로 알게 됐다고.
“드론은 사람 대신 들어가는 거지,
사람을 완전히 대신할 수 없어요.
그래서 나는 항상 사람의 감각으로 기계를 다뤄요.”
이씨는 지금도 처음 작업하는 밭은
반드시 직접 걸어보고, 발로 경계선을 확인한다.
그게 그의 원칙이다.
고장, 비바람, 오해… 농촌 기술자에게도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드론 조종은 외형상 ‘스마트한 농업’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은 훨씬 거칠고 까다롭다.
“갑자기 비 오면 약을 다 버려야 해요.
중간에 송신 끊기면 드론이 추락하기도 하고,
배터리는 여름엔 과열되고, 겨울엔 너무 빨리 닳아요.”
또한 일부 마을에서는
드론 방제를 처음 보는 어르신들이
“그거 믿을 수 있냐”며 불안해하거나,
드론 소리가 벌을 쫓는다고 항의하기도 한다.
“이제는 설명하는 것도 제 일이에요.
‘약은 새는 게 없고, 땅에 떨어지지도 않아요’
하나하나 말해드려요.”
이씨는 이런 상황을 겪을수록
“기술자도 결국은 설득하고 신뢰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씨가 바라는 건, 농촌에 기술이 스며드는 풍경
이씨는 자신이 하는 일이
단순한 ‘일거리’가 아니라
농촌에 기술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는 장면을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논이 점점 사라지고 있잖아요.
남은 땅이라도 더 오래 쓰려면
기술이 조심히 들어와야 해요.
사람이 빠진 자리를 기계로 메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덜 아프게 만드는 게 기술이어야죠.”
그는 언젠가
각 마을마다 드론 조종사가 한 명씩 배치되고,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모아 방제를 조율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했다.
“드론은 결국 도구예요.
그걸 어떻게 쓰느냐는 사람한테 달렸고,
그걸 잘 쓰게 만드는 게 제 역할이에요.”
기술은 날아가지만, 책임은 땅 위에 남는다.
그걸 잊지 않는 조종사,
그게 농약 살포 드론 조종사 이씨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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