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먹는 고기, 그 시작점의 이름은 '도축장'
마트에서 진열된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보면 사람들은 맛있는 요리 생각부터 떠올린다.
삼겹살, 갈비찜, 불고기, 돈까스 같은 단어들이 빠르게 입 안에 맴돈다.
하지만 이 고기들이 어디서, 어떻게 우리 식탁까지 오는지, 그 과정을 직접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글은 한 청년 도축 노동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기록이다.
이 청년은 20대 후반, 경기도에 위치한 중형 도축장에서 3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나 피와 내장, 소리와 냄새가 뒤섞인 현장으로 출근한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고기는 좋아하지만, 그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알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의 말엔 원망이 담겨 있는 것도, 자랑이 담긴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보지 않으려는 곳에서 누군가는 묵묵히 ‘식탁의 시작’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은 그 청년의 하루를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하는 고기의 이면,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노동과 감정, 그리고 무관심을 마주해보자.
새벽 4시, 고기가 되기 전의 풍경
청년은 새벽 4시에 눈을 뜬다.
다른 사람들의 하루가 시작되기 한참 전, 그는 고무장화와 방수 작업복을 챙긴다.
도축장은 육류 가공업체와 도매상 사이에 있는 중간 기지 같은 곳이다.
그곳에선 살아 있는 소와 돼지가 들어오고, 도축·해체 과정을 거쳐 고깃덩어리로 나가게 된다.
작업은 도축라인에 따라 엄격히 나뉜다.
생체 입장 – 기절 – 출혈 – 내장 제거 – 해체 – 세척 – 급속 냉장까지 모두 팀별로 배정되어 움직인다.
그는 주로 기절과 출혈 구간을 맡는다.
가장 처음, 가장 거친 구간이다.
기절은 전기 충격 방식이거나, 공압식 쇠망치(볼트 건)로 이뤄진다.
청년은 하루에 수십 마리의 돼지나 소가 이 과정을 거치는 걸 본다.
가끔은 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생명도 있다.
그는 말한다.
“도축은 단순 반복 작업이지만, 생명을 직접 다룬다는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무뎌지지 않아요.”
기절 후 출혈 단계에선 목 부위를 절개해 피를 뽑는다.
피는 곧 살균 처리 후 폐기되거나 일부 부위는 부산물로 활용된다.
작업장은 항상 피비린내가 섞인 습기와 고열로 가득하다.
장갑과 앞치마는 몇 분 만에 붉게 물든다.
냄새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
많은 사람들이 도축장에서 가장 힘든 건 냄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청년은 말한다.
“악취야 며칠 지나면 적응돼요. 근데... 생명이 죽는 걸 매일 보는 건 적응이 안 돼요.”
그는 동물들이 라인 위로 올라오기 직전까지 서로를 밀고 울부짖는 장면을 자주 본다.
특히 돼지는 감정 표현이 강해, 눈물을 흘리거나 바닥을 긁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한 마리는 앞다리를 접고 엎드려서 도저히 움직이질 않았어요.
그 순간 기계가 멈췄고, 결국 그 애는 억지로 끌려갔어요.”
그런 날은 퇴근 후에도 입맛이 없고, 기분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는 이럴 때 서로 “오늘은 눈 마주치지 말자”고 말하기도 한다.
“누가 감정 보이면 다른 사람도 흔들리거든요. 그냥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하는 게 서로한테 좋아요.”
냄새, 피, 부산물보다 더 버거운 건 죽음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느끼는 무감각이다.
한때 그도 이직을 고민했지만,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이 일 말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대학교 중퇴 이후 계속 여기서만 일했어요.”
이제 그는 ‘동물을 죽이는 사람이 아닌, 고기를 만드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려 애쓴다.
그는 이 일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잖아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 이 과정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없는 존재’처럼 살아가는 기분
청년은 직업을 말할 때마다 망설인다.
지인들이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식품 유통 관련 업무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도축장’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상대방의 표정이 굳거나 분위기가 어색해진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제가 ‘도축일 한다’니까, 다음부터 저를 좀 꺼려하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사람들이 나를 더럽거나 잔인한 사람처럼 볼 수 있구나.”
그는 고기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서 거리감이 생긴다는 역설을 느낀다.
실제로 도축장 근무자 대부분은 일터 밖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무관심, 혐오, 또는 불편한 시선을 마주하기 싫어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절대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누군가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면,
누군가는 고기를 절대 먹을 수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식탁을 지탱하는 직업이에요.”
그는 누구도 박수쳐주지 않는 일을 하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책임감과 자부심을 찾는다.
“나는 소나 돼지를 정성스럽게 다루고 싶어요.
죽음을 대충 다뤄선 안 되니까요.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요.”
고기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 그가 바라는 단 한 가지
그는 더 이상 도축 현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히 말한다.
하지만 그는 당장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고졸 학력, 전과 없는 경력, 그리고 도축장 경험 외에는 이력서에 쓸 게 없다.
그래서 그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장화를 신고 출근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피비린내 속에서, 누군가의 식탁에 오를 고기를 준비한다.
그는 사람들이 고기를 먹기 전에 단 5초만이라도 이 과정을 떠올려줬으면 한다.
"나를 알아달라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 고기가 그냥 포장돼 나온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해줬으면 해요."
그는 언젠가 동물복지 도축 시스템을 도입하는 업체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기절도 더 humane하고, 스트레스도 덜 주는 방식으로 바뀌어가는 사례를 그는 매일 찾아본다.
“죽는다는 건 똑같지만, 그 과정이 존중받을 수 있다면…
그게 진짜 고기를 다루는 사람의 역할 아닐까요.”
그는 오늘도 새벽 4시에 알람을 끈다.
그리고 익숙하게 피 묻은 작업복을 입고, 또 하루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고기만 기억하지만, 그는 고기 이전의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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