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없는 도시, 그곳을 누비는 또 하나의 운전자
도심의 밤은 대체로 조용하고 텅 빈 듯하지만, 사실은 그 속에서도 수많은 일이 벌어진다.
더러워진 도로는 항상 다음날이면 깨끗해져있다.
특히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 누군가는 빗자루 대신 4.5톤짜리 청소차를 운전하며 도시의 거리를 닦는다.
‘도로 노면청소차’는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깨끗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며 먼지, 낙엽, 쓰레기 등을 쓸어낸다.
김성우(가명) 씨는 서울 강서구청과 계약된 노면청소차 기사로 일한 지 12년째 되는 베테랑이다.
그는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서울 강서구 주요 도로와 골목을 순회하며 거리를 청소한다.
그는 말한다.
“도로는 낮에 보면 깨끗하잖아요.
그게 그냥 깨끗한 게 아니라, 밤에 우리가 닦고 간 자국이에요.”
오늘은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자는 동안 벌어지는 도시의 또 다른 흐름,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청소차 운전석 뒤편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밤 10시, 브러시와 물탱크로 무장한 청소차의 시동이 켜진다
김씨의 하루는 밤 9시 30분, 차고지로 출근하면서 시작된다.
그가 몰고 있는 차량은 4.5톤 규모의 노면청소차다.
차량 양옆에는 회전 브러시가 달려 있고, 바닥 쪽엔 진공흡입장치와 물살포 장치가 결합돼 있다.
“이 청소차는 도로를 쓸어내고, 동시에 물을 뿌려서 미세먼지를 흡착하고 빨아들이는 기능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5시간 이상 운행하면 청소 범위가 30km가 넘어가죠.”
그는 구청의 청소노선에 따라, 대로변 – 이면도로 – 시장 골목 – 버스정류장 – 공원 앞 순서로 순회한다.
도로 위 작은 쓰레기, 담배꽁초, 흙먼지, 낙엽, 폐지 등이 브러시에 쓸려 모이고, 진공장치가 빨아들인다.
“낮엔 눈에 띄지 않는 먼지나 낙엽도, 밤에 보면 엄청 쌓여 있어요.
청소차 지나가면 도로 색깔이 달라질 정도예요.”
시작 전 차량 점검도 중요하다.
▶ 물탱크 수위 확인
▶ 브러시 회전 모터 점검
▶ 흡입 장치 막힘 여부 확인
▶ 타이어 공기압 체크
“장비에 이상이 생기면 도로 한복판에서 멈춰야 해요.
그럼 뒷차들 항의받고, 시간도 지체되고... 꼭 사전 점검이 필요해요.”
새벽 2시의 도심, 그곳에서 마주치는 또 다른 얼굴들
김씨가 느끼는 가장 특별한 순간은 새벽 2시 무렵이다.
도로엔 차량도 거의 없고, 인도도 조용하다.
“그때쯤이면 도시가 마치 숨을 멈춘 것 같아요.
그 적막 속에서 혼자 청소차 타고 가는 기분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
하지만 완전히 혼자인 건 아니다.
새벽 도로에는 택배 기사, 신문 배달원, 음식물 수거차량, 심야 택시기사들이 있다.
가끔씩 마주치면 서로 눈인사를 나누거나, 간단한 수신호로 인사하기도 한다.
“말은 안 해도 같은 밤을 견디는 동료라는 느낌이 있어요.”
위험도 있다.
밤에는 시야가 좁아, 도로 위 돌출물이나 불법 주차 차량에 브러시가 손상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인근 상가 앞에 방치된 쓰레기봉투나 목재들이 청소차를 막는 일도 잦다.
김씨는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풍경들을 기억한다.
“어떤 날은 한 밤중에 취객이 도로 한복판에 앉아 있었어요.
경찰 부르기 전에 내가 내려서 깨웠죠. 위험하니까요.”
그는 때로는 청소부이자 순찰자, 경비원 역할까지 함께 해내야 한다.
이 일을 오래 하게 만드는 건 의외로 ‘사람들’이다
김씨는 처음엔 이 일을 단순히 ‘생계형 직업’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10년 넘게 지속할 수 있었던 건, 작은 보람과 사람들의 반응 덕분이라고 한다.
“가끔 낮에 길 가다가 ‘어? 어젯밤에 청소차 지나갔구나’ 하는 소리 들으면, 괜히 뿌듯해요.”
그는 청소 후 길이 깔끔해진 모습을 보면 직업적 만족감을 느낀다.
“우리가 지나간 자리는 확실히 달라져요.
그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게 우리의 일이죠.”
노면청소차 기사라는 직업은 신체적 부담보다 심리적인 단절감이 크다고 한다.
밤에 일하고, 낮에 자니 사람 만날 시간도 없고,
가족들과 식사나 휴식도 늘 엇갈린다.
“사회랑 단절된 느낌, 진짜 커요.
명절 때 가족들이 밥 먹을 때 나는 혼자 운전대 잡고 있었죠.”
하지만 김씨는 도시를 ‘조용히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침 7시에 모든 사람들이 깨끗한 거리에서 하루를 시작하게 하려면,
우리가 그 전날 밤을 써야 해요.
밤을 건너야, 도시가 제대로 시작되죠."
그는 요즘 신입 기사에게 “이 일은 ‘보이지 않아야 잘하는 일’이다”라고 조언한다고 한다.
청소차가 흔적을 남기지 않을수록, 사람들이 더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김씨가 꿈꾸는 도시, 그리고 묻히지 않길 바라는 이름
김씨는 이제 60세를 바라본다.
이제는 브러시 교체나 차량 정비가 예전처럼 빠르지 않지만,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도시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정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가 바라는 건 간단하다.
“청소차가 지나갈 때, 클락션 대신 조용히 비켜주는 것.
그리고 출근길에 한 번쯤 ‘길이 깨끗하네’ 하고 생각해주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는 자신이 도시 한복판을 달리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늘 가장 외곽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름 없는 노동, 얼굴 없는 직업, 그래도 꼭 필요한 일.
그게 우리예요.”
김씨는 오늘도 브러시와 물탱크를 점검하고,
밤의 도시를 다시 한 번 출발한다.
사람들이 깨어나는 순간, 도시는 다시 조용히 빛난다.
그 바탕엔 늘, 보이지 않게 닦아낸 밤의 손길이 있다.
우리는 늘 그렇듯 깨끗한 도시를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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