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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맨홀 청소원으로 10년, 악취보다 무서운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하수와 빗물이 지나가는 그 어두운 통로는 매일 수많은 사람의 삶의 흔적을 품고 아래로 흘러간다.
그런데 그곳에는 매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이 버린 것들을 직접 손으로 걷어내는 이들이 존재한다.

김형수(가명) 씨는 서울 시내에서 맨홀 청소원으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50대 중반의 남성이다.
누군가 꺼려하는 일을 매일같이 해내는 그는, 자신이 맡은 구역의 하수관, 배수구, 맨홀 내부를 직접 들어가 청소한다.

그는 말한다.
“냄새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이 나를 더러운 사람 취급하는 시선이었어요.”
오늘 우리는 맨홀 아래의 노동자, 그 중에서도 김 씨의 하루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한 직업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맨홀 속 세상, 그곳은 또 다른 거리다

김씨의 하루는 보통 아침 6시에 시작된다.
서울 시청 산하 위탁업체에 소속된 그는 매일 지정된 지역으로 파견을 나간다.
작업복, 장화, 방진 마스크, 헤드랜턴, 특수 장갑을 챙겨 입고 현장에 도착하면 먼저 맨홀 주변의 교통을 통제한다.

시민들의 안전은 물론 본인의 안전도 지키기 위해서다.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가스 농도 측정기로 맨홀 내부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예전엔 가스 중독으로 쓰러지는 일도 많았어요. 지금은 장비가 좋아져서 그나마 나아졌지만, 아직도 항상 조심해야 하죠.”

그는 맨홀 뚜껑을 열고 천천히 내려간다.
깊이는 보통 3~5미터 정도지만, 비가 온 뒤에는 수위가 높아져 위험해질 수 있다.
맨홀 안에는 기름, 플라스틱, 음식물 찌꺼기, 담배꽁초, 그리고 때로는 동물 사체까지 떠다닌다.

김씨는 그것들을 고압세척기와 손도구로 하나하나 치워낸다.
겨울에는 냉기가 온몸을 파고들고, 여름철엔 작업복 속이 땀과 악취로 젖는다.
"맨홀 밑에선 땀이 아니라 기름과 물, 냄새가 다 섞여서 몸에 달라붙어요. 집에 돌아가면 바로 세 번은 씻어요."

무엇보다 김씨를 힘들게 하는 건 맨홀 안의 공간 자체다.
좁고 음습한 그곳은 소리의 반사까지도 다르게 들리는 공간이다.
“맨홀 밑에서 누가 차를 몰고 지나가면, 그 소리가 벽에 울려서 마치 지진처럼 들려요.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그는 스스로를 "도시의 혈관 청소부"라고 부른다.
사람의 몸에서 혈관이 막히면 생명이 위태롭듯, 도시도 하수가 막히면 순식간에 마비된다.
"비가 갑자기 쏟아졌을 때 맨홀이 막히면 도로가 순식간에 침수돼요. 그걸 미리 방지하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에요."

 

맨홀 청소원이 접하는 맨홀 속 세상

악취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의 눈빛

김씨가 이 일을 시작한 건 생활비 때문이었다.
대기업 경비직 계약이 끝난 후, 안정적인 수입을 찾던 중 지인의 소개로 시작하게 됐다.
초반에는 냄새와 비위가 가장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는 다른 벽을 마주했다.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다.

“작업 끝나고 지하에서 올라왔을 때, 옷에 뭐가 묻어 있으면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피해요.
어떤 분은 ‘냄새난다’고 들릴 정도로 크게 말하더라고요.”
김씨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지하에서 올라오는 걸 일부러 늦췄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 마주치는 게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어느 날 여름, 정류장 옆 맨홀을 작업하다가 초등학생 아이들이 “더러운 사람”이라 놀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그는 순간적으로 몸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더러운 게 아니라, 더러운 걸 치우는 사람인데 말이죠.
그날 이후로 작업복 위에 얇은 셔츠라도 걸치게 됐어요."

사회는 이들을 ‘존재는 필요하지만, 보기 싫은 사람들’로 취급한다.
하지만 김씨는 누구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
"우리가 없으면 빗물도 못 빠지고, 여름에 벌레가 더 들끓어요. 도시가 정지돼요."
그는 자신이 도시를 지탱하는 한 명의 노동자라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긴다.

육체노동의 한계와 안전 문제

김씨는 50대 중반이 넘었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다.
무릎 관절, 허리 디스크, 손목 통증은 일상이 됐다.
“매일 쪼그려 앉아서 작업을 해요. 그 자세가 몇 시간 지속되니까, 퇴근하고 나면 몸이 안 펴져요.”

이 일은 단순히 힘만 쓰는 일이 아니다.
맨홀 안은 좁고 미끄럽고, 고립되기 쉬운 구조다.
작업 중 한 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크게 다칠 수 있다.
그는 몇 해 전, 맨홀 안에서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왼쪽 어깨를 탈골했던 경험도 있다.
“혼자 작업하다가 기댈 데도 없고, 라디오 송신도 안 되니까 그냥 바닥에 앉아서 40분을 기다렸어요.
그때는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또한, 위험물질이나 날카로운 이물질이 맨홀 안에 섞여 있어 감염이나 찔림 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청소봉에 힘을 주다 손가락이 찢어진 적도 있고, 녹슨 철조각에 찔려 파상풍 주사를 맞은 적도 있다.

하지만 김씨는 산업재해 보상이나 장기 치료를 받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는 외주 직원이니까요. 사고 나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어요.
그냥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거죠. 우리끼리 말해요. ‘내가 나를 지켜야지’라고요.”

김씨가 바라는 세상

김씨는 이제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그의 소망은 그리 크지 않다.
"누가 칭찬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지나가다 맨홀 작업하는 사람을 보면
‘아, 고생하시네’ 하고 한마디만 해줬으면 해요."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하루 3곳 이상의 현장을 이동하며 작업한다.
막힌 배수구를 뚫고, 냄새 나는 퇴적물을 퍼내며, 맨홀 안에서 도시의 순환을 돕는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있다.

"더러운 걸 치운다고 내가 더러운 사람은 아니에요.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나는 그냥 그것을 잘 해내고 싶을 뿐이에요."
그의 말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김씨는 도시의 맨홀 아래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시를 지키고 있는 숨은 영웅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적지만,
그의 노동 덕분에 도시의 물길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깨끗한 길을 걷고, 비가 와도 안전한 이유.
그 시작점에는 김씨와 같은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