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에 솟은 고층 빌딩은 현대 도시의 상징이다.
유리로 마감된 외벽은 늘 반짝이고, 사람들은 그 투명한 표면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본다.
하지만 그 유리가 하루하루 유지되기 위해선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하다.
그것도 목숨을 담보로 한 고공 노동 말이다.
김도현(가명) 씨는 38세, 서울 강남의 초고층 빌딩 외벽 유리창 청소를 8년째 하고 있다.
매일 새벽, 그는 40층 높이에서 로프 하나에 몸을 맡긴 채 창문을 닦는다.
누군가의 시야를 맑게 하기 위해, 그는 자신은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는다.
그는 말한다.
“창문 밖에서 닦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래도 저는 저 아래 어딘가에서 제가 닦은 유리를 보고 있겠죠.”
오늘은 고공 작업자 김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사람들이 창밖으로 보는 세상 뒤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고층의 아침은 장비 점검으로 시작된다
김씨의 하루는 오전 6시 30분에 시작된다.
그는 출근과 동시에 작업 장비를 확인한다.
헬멧, 로프, 하강장치(디센더), 하네스, 추락방지 고리, 슬링, 무전기, 장갑, 안전화, 청소도구 등이다.
장비는 생명줄과 같다.
“장비 하나만 불량이어도 사고 납니다.
우린 실수 한 번이 끝이니까요.”
그는 로프의 마모 여부, 하네스의 고정상태, 앵커 고리의 강도까지 꼼꼼히 확인한다.
오늘은 강남의 45층 오피스 건물 유리창 청소 작업이다.
옥상에서 앵커 지점을 확보하고, 로프를 설치한 뒤 2인 1조로 움직인다.
한 명은 메인 작업자, 다른 한 명은 백업 역할을 한다.
김씨는 빌딩 옥상에서 유리벽면을 따라 천천히 하강하며 작업에 돌입한다.
그는 말한다.
“아래를 보면 안 돼요. 발끝 밑은 허공이에요.
유리창 하나씩만 보면서 내 일에 집중해야 하죠.”
외벽 청소는 단순한 닦기가 아니다.
▶ 유리 표면 세척
▶ 물때 방지제 도포
▶ 이물질 제거
▶ 유리 틈 오염 확인 등
복합 작업이다.
게다가 날씨에 따라 난이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여름엔 유리가 달궈져 뜨거워 화상 위험이 있고,
겨울엔 손끝이 얼어붙어 청소 도구를 떨어뜨릴 위험도 크다.
생명을 건 고공 노동의 긴장감
고층 외벽 청소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초적인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필요하고, 극도의 집중력도 요구된다.
가장 큰 변수는 날씨다.
“바람이 3m/s 이상 불면 절대 작업 안 해요.
한 번은 강풍 속에서 로프가 빙빙 도는 바람에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힌 적도 있었어요.”
김씨는 몸을 돌려 벽면을 감싸듯 붙어 있었지만, 순간적인 충격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또 다른 위험은 바로 ‘위에서 내려오는 물건’이다.
▶ 커피잔
▶ 담배꽁초
▶ 쓰레기
심지어 화분을 떨어뜨리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해도, 고층에서 떨어지는 물건은 흉기예요."
김씨는 외벽에 매달린 채로 갑자기 물벼락을 맞은 적도 있다.
"배수관 청소하면서 물을 아래로 그냥 버린 거죠.
아무도 없는 줄 알고요.
근데 우리는 거기서 일하고 있었던 거예요."
장시간 하강 작업을 하면 어깨, 팔, 허리 통증이 심각하다.
근육이 굳고, 손가락에 힘이 빠지면 작업 도구를 떨어뜨릴 위험도 있다.
"도구 하나 떨어지면 바로 비상입니다.
지상 안전요원이 다 통제해도 불안하죠."
게다가 작업 시간은 날씨에 따라 줄거나 길어지기 때문에
수입도 일정하지 않다.
“한 달에 300 벌 때도 있고, 비 많이 오면 150도 안 돼요.
아프면 그냥 ‘일 없는 날’이 되는 거죠.”
눈에 보이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존재
김씨는 자신이 도심 한복판에서 존재하지만 동시에 철저히 무시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창문 밖에 매달려 있어도 사람들은 거의 그를 보지 않는다.
“내가 유리를 닦고 있는데 안에서 전화 통화하고, 노래 따라 부르는 사람들이 보여요.
그런데 그 누구도 창밖의 나를 인식하지 않죠.”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다.
▶ 깜짝 놀라며 커튼을 닫거나
▶ 창문 가까이 다가와 구경하듯 쳐다보거나
그는 말한다.
"우리가 갑자기 나타나는 게 아니라, 매일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를 ‘이질적인 존재’로 봐요.
보이지 않거나, 봐도 불편하다고 생각하죠."
김씨는 또한 고공 노동자가 사회적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는 구조에 있다고 느낀다.
하청·파견 구조가 기본이고, 보험이나 정규직 전환은 어렵다.
“사고 나면 개인 책임이 되는 구조예요.
로프 불량이 원인이어도 ‘점검 안 했냐’는 말이 먼저 나와요.”
그는 동료가 앵커 고정 미비로 인해 다쳤을 때,
작업 책임이 전부 개인에게 돌아간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오늘도 작업 중 항상 주변을 먼저 살핀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눈치예요.
기계도 못 믿고, 사람도 못 믿는 게 현실이에요.”
40층에서 본 세상, 그리고 아래를 향한 바람
김씨는 하루를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오면 늘 혼자 남겨진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은 유리창을 닦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는 그 유리창 너머로 매일 수많은 사람의 모습을 본다.
누군가는 점심을 먹고,
누군가는 실연에 울고,
누군가는 창밖 하늘을 바라본다.
김씨는 그 창밖에서 그들을 바라본다.
"저 사람은 오늘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나...
닦은 유리 너머로 그런 생각도 해요."
그는 작업 중 자주 아래를 바라보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내려다보는 도시 전경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끼기도 한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하늘에 있지만, 실은 가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위에 떠 있지만,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요."
이제 그는 후배 작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목숨 걸지 마라. 장비를 믿어라.
두려움을 이기는 건 익숙함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다.”
오늘도 김씨는 옥상으로 올라간다.
한 장, 또 한 장 유리창을 닦는다.
누군가가 창밖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세상을 맑게 만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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