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불빛은 하루도 쉬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불빛 뒤에는 지하 깊숙한 곳을 따라 이어진 전력구가 있다. 전력구는 도시 전체에 전기를 공급하는 통로이자, 수많은 케이블과 설비가 얽힌 보이지 않는 혈관이다. 강민수(가명) 씨, 46세. 그는 18년째 지하 전력구 점검원으로 일하며,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하 전선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있다. “지상은 환하지만, 지하는 늘 어둡죠. 하지만 그 어둠을 지켜야 도시가 빛날 수 있어요.” 오늘은 강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지하에서 펼쳐지는 전기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출근과 함께 시작되는 안전 점검
강씨의 하루는 지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매일 아침 점검 계획표를 확인하고, 작업복과 안전 장비를 갖춰 입은 후 지하로 내려간다. 전력구 입구는 보통 눈에 띄지 않는 도로변이나 건물 뒤편에 숨겨져 있다. 철문을 열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좁고 긴 터널 같은 공간이 끝없이 이어진다. “여긴 하루 종일 습하고 어두워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긴장해야 하죠.” 점검 전 그는 산소 농도와 가스 누출 여부를 먼저 확인하고, 이상이 없으면 본격적인 순찰을 시작한다.
전력의 심장을 살피는 세심한 눈
전력구 점검의 핵심은 전선 상태와 온도, 케이블 연결부의 균열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다. 강씨는 손전등과 열화상 카메라, 전력 측정 장비를 들고 몇 킬로미터씩 걸으며 전선을 살핀다. 전선 피복이 조금만 손상돼도 합선이나 화재로 이어질 수 있기에, 작은 흠집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전기가 왜 끊기는지 알지 못하죠. 그걸 미리 막는 게 우리의 일이에요.” 그는 발견한 문제를 기록하고, 긴급 상황일 땐 즉시 수리팀에 연락해 조치를 취한다.
지하에서 마주하는 고독과 긴장
전력구 안은 외부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종종 들려오는 것은 케이블에서 흐르는 미세한 전류음뿐이다. 강씨는 그 고요함 속에서 도시의 소음을 떠올린다. “지상에선 수천 명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여기선 오직 나와 전선만 있어요.” 밀폐된 공간 특유의 답답함과 고독감이 힘들 때도 있지만, 그는 이곳에서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시를 지탱하는 게 전기예요. 그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제 역할이죠.”
강씨가 지키는 도시의 하루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강씨는 다시 소음과 빛 속으로 들어간다. 도시의 전기가 정상적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마음이 놓인다. “사람들은 우리가 뭘 하는지 몰라도 괜찮아요.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제 역할을 했다는 거니까요.” 그는 오늘도 묵묵히 도시의 심장을 살피며, 내일도 같은 길을 걸을 준비를 한다. 강씨의 하루는 화려하지 않지만, 그가 만든 안정 속에서 도시의 수많은 불빛이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위험 속에서 마주한 순간들
강씨가 전력구 점검을 하며 가장 두려운 순간은 예상치 못한 누전과 화재 위험이다. 케이블 사이에서 미세한 스파크가 튈 때면, 그는 온몸의 긴장이 극도로 높아진다고 한다. “그 작은 불꽃이 몇 초 만에 큰 사고로 번질 수 있어요. 그래서 항상 한 손에는 소화기를 들고 다녀요.” 몇 년 전, 그는 점검 도중 전력구 한 구간에서 화재가 발생해 순식간에 연기가 가득 차는 상황을 겪었다. 그때 침착하게 탈출구를 찾아 나와 동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더 철저하게 안전을 챙기게 됐어요.”
동료들과 나누는 무언의 믿음
전력구 점검은 대부분 2~3인 1조로 진행된다. 좁고 긴 공간에서 한 사람의 안전은 곧 동료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강씨는 말한다. “이 일은 혼자 할 수 없어요. 서로의 위치와 상태를 계속 확인해야 하죠.” 때로는 긴 침묵 속에서도 동료의 손전등 불빛 하나로 안심할 수 있고, 무전기로 주고받는 짧은 한마디가 가장 큰 격려가 된다. 그 무언의 믿음 속에서 그들은 오늘도 도시의 심장을 함께 지킨다.
사람들이 모르는 ‘전력구의 얼굴’
강씨는 사람들이 지하 전력구의 존재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종종 느낀다. “도로 밑에 이런 길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도시의 숨은 얼굴을 매일 마주한다. 빗물의 흔적, 지나간 전선 교체 작업의 자국, 그리고 전기를 통해 이어진 도시의 맥박. 그는 이곳에서 오히려 지상보다 더 도시와 가까이 있다고 느낀다.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도시의 생명이 여기에 다 있어요.”
강씨가 꿈꾸는 전력구의 미래
강씨는 앞으로 전력구 점검이 더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최근엔 드론과 로봇 점검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기계가 도와줄 수는 있어도, 마지막 판단은 사람의 눈이에요.” 그는 은퇴 후에도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하며 도시의 전기를 지키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불빛은 당연한 게 아니에요. 누군가 지키고 있어야 빛나는 거죠.” 오늘도 그는 지하 깊숙한 어둠 속에서, 도시의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걸음을 내딛는다.
지하에서 올려다본 도시의 불빛
점검을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강씨는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본다. 그는 방금 전까지 그 불빛의 근원이었던 지하 전선 사이를 걸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조용히 안도한다. “저 불빛 하나하나가 우리가 지킨 흔적이에요. 사람들이 그냥 걸어가고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죠.” 강씨의 하루는 언제나 어둠 속에서 시작해 빛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빛은 내일도 변함없이 도시의 사람들을 비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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