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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도시 빗물펌프장 근무자 조씨의 하루: 물길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수호자

폭우가 쏟아질 때 우리는 도로가 잠기지 않길 바라며 창밖을 본다. 그러나 그 순간, 보이지 않는 지하 어딘가에서 수십만 톤의 빗물을 조용히 퍼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빗물펌프장 근무자다. 조영훈(가명) 씨, 51세. 그는 20년째 서울 도심의 대형 빗물펌프장에서 근무하며, 도로와 지하철이 침수되지 않도록 도시의 물길을 관리해 왔다. “비가 오면 사람들은 우산을 챙기지만, 우리는 펌프를 켜죠. 그게 우리 일이니까요.” 오늘은 폭우 속에서도 묵묵히 물길을 지키는 조씨의 하루를 따라가 본다.

 

물길을 지키는 도시 빗물펌프장 근무자

예보를 확인하며 시작되는 하루

조씨의 하루는 날씨 예보를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빗물펌프장의 근무는 비가 올 때 가장 바빠지는 특수한 직업이다. 그는 매일 기상청 정보를 꼼꼼히 확인하며 펌프 가동 계획을 세운다. “빗물은 예측 불가능해요. 1시간에 10mm만 넘어도 지하차도가 잠길 수 있죠.” 조씨는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는 날이면 평소보다 두 배 빠르게 준비한다. 전력 공급 상태, 배수관 밸브, 펌프 작동 여부를 사전 점검하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다.

 

빗물과의 전쟁이 시작되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면, 펌프장은 전쟁터로 변한다.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대형 펌프는 분당 수천 톤의 빗물을 퍼 올려 강으로 내보낸다. 조씨와 동료들은 모니터링실에서 수위와 유량 데이터를 실시간 확인하며 상황을 통제한다. 물이 급격히 불어나면 펌프를 최대 출력으로 돌리고, 배수관의 압력을 조정한다. “펌프가 제대로 안 돌면 도로가 금방 잠겨버려요. 그래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죠.” 빗물과의 싸움은 단 몇 시간 안에 도시의 안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다.

 

펌프가 멈추지 않도록 지키는 손길

펌프가 고장 나는 순간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폭우 속에서 정전이나 기계 이상이 발생하면, 곧바로 수동 모드로 전환해 수리해야 한다. 조씨는 이런 위기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펌프 안에 물이 역류하거나 모터가 과열되면, 직접 내려가서 점검해야 해요. 그때는 물과 진흙 속에서 맨손으로 밸브를 잠그기도 해요.” 위험하지만, 그는 이 일이 도시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두꺼운 고무 장화와 방수복을 입고, 몸을 기계 안으로 밀어 넣으며 작업을 이어간다.

 

빗물이 빠진 뒤 찾아오는 고요한 보람

폭우가 멈추고 수위가 안정되면, 펌프장은 다시 고요해진다. 조씨는 그제야 땀과 빗물에 젖은 옷을 벗고 한숨 돌린다. 도로가 멀쩡하게 유지되고, 지하철이 정상 운행되는 모습을 보면 그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사람들은 우리가 뭘 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침수 피해가 없다는 건 우리가 제 역할을 했다는 뜻이죠.” 그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도시의 안녕을 지키는 자신과 동료들을 ‘무명의 수호자’라고 부른다.

 

폭우 속에서 마주한 생사의 순간

조씨는 몇 해 전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던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펌프가 최대 출력으로 가동 중이었지만, 빗물 유입량이 너무 많아 배수관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그는 급히 장화를 신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밸브를 수동으로 잠갔다. 그 순간 갑작스러운 수압에 몸이 휘청였지만, 동료가 붙잡아주어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그때 솔직히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하지만 내가 안 하면 도시가 잠긴다는 걸 알았죠.” 그는 그 경험 이후 더더욱 매 순간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위기 상황을 대비해 훈련하고 있다.

 

가족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

조씨는 집에 돌아가면 폭우 속에서 있었던 위험한 순간들을 가족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할까 봐 일부러 웃으며 “오늘도 무사했어”라고만 말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비 오는 날이면 가족들은 그냥 우산만 쓰면 되잖아요. 하지만 난 비를 피할 수가 없어요. 그게 내 일이니까.” 그래도 조씨는 아이들이 가끔 “아빠 덕분에 우리 동네 안 잠겼어?”라고 물어볼 때마다 작은 자부심이 생긴다고 한다. 그 한마디가 그를 다시 펌프장으로 향하게 만드는 힘이다.

 

사람들이 모르는 ‘물길 지킴이’의 하루

빗물펌프장은 도시 한복판에 있어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다. 조씨는 가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설명할 때 “그게 무슨 일이에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는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비 오는 날 도로가 안 잠기면, 그게 바로 우리가 한 일이에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다. 조씨는 자신이 하는 일이 도시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없으면 도시는 물에 잠겨요. 보이지 않아도 꼭 필요한 일이죠.”

 

조씨가 꿈꾸는 도시의 내일

조씨는 앞으로 더 많은 빗물펌프장이 자동화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길 바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마지막 확인은 사람의 몫이라고 믿는다. “기계가 다 한다 해도, 결국 마지막은 사람이 봐야 안심이 돼요.” 그는 은퇴 후에도 후배들에게 이 일을 가르치며, 도시의 물길을 지키는 가치를 전하고 싶다고 한다. “도시는 우리가 지키는 물길 위에서 살아가요. 그걸 잊지 않았으면 해요.” 오늘도 그는 비가 내릴지 모를 하늘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시를 지키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준비한다.

 

빗물이 멈춘 뒤 찾아오는 조용한 감사

폭우가 지나간 다음 날, 조씨는 종종 출근길 사람들의 평온한 얼굴을 바라본다. 전날 밤 펌프장에서의 사투를 알 리 없는 시민들이 평소처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묘한 안도감이 든다. “사람들이 몰라도 괜찮아요. 이렇게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면 그게 우리가 잘한 거니까요.” 그는 여전히 빗물이 오지 않을 때도 펌프를 점검하고 청소하며, 다음 폭우를 대비한다. 사람들의 일상 뒤에서 조용히 흐르는 그의 시간은 마치 도시의 또 다른 물길과도 같다. 오늘도 그 물길은 잠잠하게, 그러나 확실히 도시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