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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지하철 선로 점검원 박씨의 하루: 보이지 않는 선로 위, 도시의 시간을 지키는 사람

우리가 매일 타고 다니는 지하철은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도시의 시간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 중 하나다. 하지만 지하철이 시간 맞춰 안전하게 달리기 위해서는 밤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로를 점검하고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민호(가명) 씨, 45세. 그는 17년째 서울 지하철의 선로 점검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하철은 낮에 멈출 수 없어요.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마지막 열차가 지나간 후부터 첫차가 들어오기 전까지입니다.” 오늘은 사람들이 모두 떠난 지하철역과 어두운 선로 위에서 묵묵히 도시의 안전을 지키는 박씨의 하루를 따라가 본다.

보이지 않는 지하철 선로 점검

마지막 열차가 떠난 뒤 시작되는 하루

박씨의 하루는 다른 직장인들의 하루가 끝나는 시간부터 시작된다. 밤 1시가 되면 마지막 열차가 떠나고, 역 안은 고요해진다. 그는 안전모와 형광 작업복,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동료들과 함께 선로로 내려선다. 전원이 완전히 차단된 선로 위는 조용하지만,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박씨는 먼저 선로와 전차선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망치와 장비를 이용해 이음새나 고정 볼트가 헐거워진 곳이 없는지 점검한다. 그는 말한다. “선로 점검은 작은 균열 하나도 놓쳐선 안 됩니다. 작은 흠집이 쌓이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선로 위에서 이어지는 치밀한 점검

점검 작업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박씨는 선로의 온도, 진동, 전류 상태를 측정하는 센서 장비를 사용해 이상 여부를 확인한다. 특히 여름철엔 열로 인해 선로가 팽창하고, 겨울철엔 수축해 틈이 벌어질 수 있어 계절마다 다른 변화를 체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선로를 따라 수 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며, 무거운 장비를 메고 이동해야 해 체력 소모가 상당하다. “밤새 걸어서 점검하고, 이상 있으면 바로 수리까지 해야 하죠. 쉬운 일이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이게 없으면 내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이 멈출 수도 있어요.”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흐르는 책임감

작업을 마치고 나면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지하철 첫차가 들어오기 전, 박씨와 동료들은 다시 역으로 돌아가 장비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는 사람들이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뭘 하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게 당연하죠. 우리가 잘했기 때문에 아무 일도 없는 거니까요.” 그는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도시의 시간을 지키며, 매일 같은 책임감을 다지고 있다.

 

지하철 선로 위에서 배운 것들

박씨는 이 일을 하며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태도라고 말한다. 선로 점검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임한다. “내가 확인한 이 작은 볼트 하나가 수백 명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걸 알면 절대 대충할 수 없어요.” 그는 오늘도 도시의 보이지 않는 심장을 지키며, 사람들의 하루가 무사히 이어지도록 묵묵히 선로 위를 걸어간다.

 

밤마다 이어지는 숨 막히는 긴장감

박씨는 선로 점검 중 가장 힘든 순간으로 예상치 못한 상황을 꼽는다. 드물지만, 전력 차단이 늦어지거나 갑작스러운 설비 이상으로 긴급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는 매일 정해진 절차대로 움직이지만, 변수가 항상 존재해요. 작은 부주의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죠.” 그는 작업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팀원들과 신호를 주고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선로 위를 걷는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고, 작은 금속음이나 진동에도 온몸이 반응한다. 그는 말한다. “이런 긴장이 힘들기도 하지만, 덕분에 한 번도 큰 사고 없이 일해올 수 있었죠.”

 

사람들의 무심함 속에서 배우는 보람

박씨의 일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는 노동이다. 지하철이 멈추지 않고 달릴 때 사람들은 그 안전을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가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지하철이 멈추거나 사고가 나겠죠. 하지만 그런 일이 없으니 사람들은 우리가 뭘 하는지 잘 몰라요.” 처음엔 이런 무심함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는 지금은 오히려 그 무심함이 자기 일의 성공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안전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게 제일 보람 있죠.”

 

박씨가 꿈꾸는 지하철의 미래

박씨는 앞으로 선로 점검 기술이 발전해 작업자들의 안전과 효율이 더 높아지길 바란다. 최근에는 센서와 드론, 자동화 점검 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마지막 확인은 사람의 눈과 손에 의존한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항상 이렇게 조언한다. “기계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마지막 책임은 사람에게 있어. 네가 직접 보고, 직접 확인해야 한다.” 박씨는 언젠가 자신이 은퇴한 뒤에도 후배들이 이 책임감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몰라도 괜찮아요. 우리가 지키는 건 단순히 철로가 아니라, 그 위를 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하루예요.”

 

오늘도 어둠 속을 걷는 이유

새벽 4시, 박씨는 선로 점검을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온다. 역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막 떠오르는 여명과 함께 도시의 소음이 서서히 살아난다. 그때 그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제 오늘 하루도 안전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사람들은 곧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를 시작하겠지만, 그 보이지 않는 안전 뒤에는 박씨와 같은 이들의 밤이 숨어 있다. 그는 오늘 밤도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 도시의 심장을 살피고, 수많은 발걸음이 안전하게 이어지도록 묵묵히 빛나지 않는 선로 위를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