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거리마다 서 있는 전신주는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그 전신주 하나하나가 도시의 전기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점이다. 오래된 전신주는 시간이 지나면 균열이 생기거나 부식돼 교체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교체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고 고된 노동이다. 윤성호(가명) 씨, 44세. 그는 15년째 전신주 교체 작업을 하는 현장 기술자다. “전신주는 그냥 서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수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고 있어요. 우리가 바꾸는 건 단순한 기둥이 아니라 도시의 심장이죠.” 오늘은 윤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전신주 교체라는 보이지 않는 현장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새벽 준비, 오늘 교체할 전신주를 확인하다
윤씨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교체 대상이 되는 전신주는 대부분 노후되거나 태풍, 눈 등 자연재해로 손상된 것들이다. 그는 현장에 나가기 전 도면과 안전 지침을 확인하며 오늘 교체할 전신주의 위치와 특이사항을 체크한다. “주변에 상가가 있는지, 교통 통제가 필요한지, 전선 연결 상태가 어떤지 다 보고 나가야 해요.” 현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도로를 통제하고, 안전 표지판과 차단 장비를 설치한다. 차량과 사람 모두의 안전을 확보한 후에야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하늘 위에서 펼쳐지는 고난도의 기술
전신주 교체의 핵심은 오래된 전신주를 해체하고 새 전신주로 교체하는 것이다. 윤씨는 크레인을 이용해 전신주를 뽑아 올리고, 새 전신주를 정확한 각도로 세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선 연결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는데, 높은 곳에서 무거운 장비를 들고 전선을 정밀하게 연결하는 건 극도의 집중력과 숙련도가 필요하다. “바람이라도 불면 몸이 흔들려요. 그 상태에서 전선을 다루는 건 늘 긴장돼요.” 윤씨는 항상 전기 절연 장갑과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동료와 무전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업을 이어간다.
도로 위의 짧은 정적, 그리고 다시 흐르는 전기
전신주 교체가 진행되는 동안, 그 구간의 전기는 일시적으로 차단된다. 주변 상가나 가정은 잠시 불편을 겪지만, 교체가 끝나면 전기가 다시 흐르며 도시가 제 모습을 되찾는다. 윤씨는 그 순간을 가장 보람 있게 느낀다고 말한다. “불이 다시 들어오는 걸 보면 그제야 안심돼요. 내가 도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체가 끝나면 현장을 정리하고, 철거한 전신주는 재활용 센터로 이송된다. 모든 절차를 마친 후에야 윤씨의 하루는 끝난다.
도시의 전기를 지키는 이름 없는 영웅
윤씨는 말한다. “사람들은 전기를 쓰면서도 그 전기가 어디서 오는지 잘 몰라요. 우리가 무대 뒤에서 조용히 일하는 사람들이죠.” 그는 비바람 속에서도, 한여름 땡볕 아래서도 묵묵히 전신주를 세워왔다. 위험한 상황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이 일이 아니면 누가 할까?”라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한다. 전신주 교체 작업은 단순한 기술 노동이 아니라, 도시의 안전과 편리함을 책임지는 중요한 일이다. 오늘도 윤씨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전기를 잇는 이름 없는 영웅으로 살아가고 있다.
바람과 비 속에서 겪는 위험한 순간들
윤씨가 전신주 교체 작업을 하며 가장 두려운 순간은 예상치 못한 날씨 변화다. 갑작스럽게 바람이 세게 불거나 비가 내리면 전신주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그 위에 올라선 몸도 덩달아 불안정해진다. 특히 비 오는 날에는 전선이 젖어 미끄러지거나 감전될 위험도 있다. “전선 하나 잡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거예요. 젖어 있으면 손끝이 저릿하고, 바람 불면 몸이 좌우로 흔들려서 온몸의 근육을 다 써야 해요.” 그는 그런 순간마다 한 호흡 깊게 들이쉬고, 동료의 신호를 기다리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겁나지 않으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더 조심하게 돼요.”
가족이 지켜보는 마음, 그리고 미안함
윤씨는 두 아이의 아버지다. 그는 집을 나설 때마다 가족의 얼굴을 떠올린다. “아이들이 ‘아빠 오늘도 전봇대 올라가?’ 하고 물으면, 괜히 가슴이 뭉클해져요.” 그는 가족에게 일의 위험성을 다 이야기하지 못한다. 대신 늘 “아빠는 괜찮다”는 말로 안심시킨다. 하지만 때때로 집에 돌아와 온몸이 땀과 먼지, 흙투성이가 된 자신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이 밀려온다고 한다. “이 일이 힘들지만, 내 아이들이 매일 불 켜진 집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죠.” 윤씨는 가족이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오늘도 묵묵히 전신주 위에 오른다.
보이지 않는 노동, 그러나 꼭 필요한 이유
전신주 교체 작업은 대부분 시민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진행된다. 때로는 교체 작업으로 인해 전기가 잠깐 끊기면 불편하다는 민원도 들어오지만, 윤씨는 그럴 때마다 차분히 설명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불편이 있어야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어요.” 그는 사람들이 ‘왜 불이 나갔지?’ 하고 불평하는 대신, ‘누군가 그걸 고치고 있겠구나’ 하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돼요. 다만 안전하게 전기를 쓸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죠.”
윤씨가 꿈꾸는 도시의 전기 미래
윤씨는 앞으로 전신주 작업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바뀌길 꿈꾼다. 최근에는 지중화 공사나 스마트 전력망 기술이 도입되면서 전신주 교체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한 부분은 반드시 남는다”고 말한다. “기술이 좋아져도 마지막 확인은 사람이 해요. 전기는 생명과 직결되니까요.” 윤씨는 은퇴 후에도 후배들에게 이 일을 가르치고 싶다고 한다. “이 일은 단순히 전봇대를 세우는 게 아니라 도시의 생명을 이어주는 일이에요. 그걸 잊지 말고 후배들도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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