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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산불 감시원으로 일한 6개월: 불이 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하루

불이 나지 않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산을 매일같이 지켜보며 ‘아무 일도 없기를’ 기도하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산불 감시원.
이들은 봄과 가을, 산불 발생 위험이 가장 높아지는 계절마다 전국 각지 산에 배치되어
불씨 하나라도 빨리 발견하고, 번지기 전에 막기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다.

최진섭(가명) 씨는 올해 61세.
2024년 봄철, 강원도 평창군청 소속으로 산불 감시원으로 6개월간 근무했다.
그는 매일 해가 뜨기 전에 출근해 산자락을 오르내리며, 망원경으로 능선을 훑고,
산길을 따라 다니며 불씨, 연기, 무단 입산, 쓰레기 소각 행위 등을 감시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일 안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아무 일도 없게 만드는 게 우리 일이에요.”
오늘은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안전하게 숲을 즐기는 이면에서 누군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들여다본다.

새벽 6시, 등산객보다 먼저 산을 오른다

산불 감시원의 근무는 ‘비상 근무’ 체제다.
통상 34개월 단위로 계약하며, 봄철(3~5월), 가을철(10~11월) 산불 위험 기간에 배치된다.
최씨는 아침 6시 30분이면 산 아래 주차장에 도착한다.
그의 주요 장비는 망원경, 쌍안경, 무전기, GPS 단말기, 소화 삽, 긴급 소화분무기다.

“우리 구역은 해발 600m 능선까지예요.
경운기로 중턱까지 올라가고, 나머진 걸어서 가야 해요. 하루 왕복 10km쯤 되죠.”

그는 산불 감시 초소까지 올라가 시야를 확보한 후, 1~2시간마다 순찰 경로를 돈다.
순찰 중엔 마을 뒷산에서 논두렁을 태우는 농민이나, 무단 입산자를 자주 만난다.
"농사짓는 분들 중엔 '불 피워야 벌레가 안 생긴다'고 우기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바람 한번 불면 진짜 큰일 나는 거죠."

산불 감시원은 불이 난 이후가 아니라, 나기 전에 막는 사람이다.
그래서 작은 연기도 그냥 넘기지 않는다.
“연기가 하얗고 낮게 퍼지면 쓰레기 태우는 거예요.
회색이고 솟구치면 화재 가능성이 커요.
우린 그 차이를 눈으로 구별해야 해요.”

일이 없다는 게 최고의 하루인 직업

산불 감시원의 이상적인 하루는 ‘보고할 일이 없는 날’이다.
“오늘도 이상 없습니다. 그 말이 제일 좋은 말이에요.”
하지만 이상이 없는 날에도 감시원은 8시간 이상 산을 오르내린다.
점심은 대개 김밥, 계란, 물, 사과 정도로 구성된 간편식이다.
등산로 주변 평지나 나무 아래에서 간단히 먹고, 10분도 안 쉬고 다시 순찰에 나선다.

최씨는 봄철에만 무려 500km 이상을 걸었다.
한 번은 비 온 다음 날, 낙엽이 미끄러워 넘어져 갈비뼈에 금이 갔지만 병원도 못 가고 일을 계속했다.
"대체 인력이 없어요. 내가 빠지면 그날은 빈 구역이 생기거든요."

그는 일하면서 불안함과 외로움이 동시에 따라온다고 했다.
특히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은 실시간 상황보고 체계로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무전기를 손에 쥔 채 한 시간 단위로 통화 보고를 한다.
“바람 소리만 들어도 긴장돼요.
진짜 산불은 불이 아니라 바람이 키우는 거거든요.”

또한 그는 ‘산불 진화 훈련’도 수시로 참여한다.
“어떻게 소화기를 쓰고, 산불 번지는 방향 예측하는지 배우죠.
그런데 정작 실전에선… 눈앞이 다 연기뿐이에요.
그래도 그걸 대비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에요.”

감시원은 감시만 하지 않는다

최씨는 자신이 감시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사실상 예방 순찰자이자 등산 안내자이자 민원 대응자예요.”
그는 산행 중 만나는 사람들에게 담뱃불 조심, 무단 입산 금지, 화기 반입 금지 등을 설명해야 한다.
어르신 등산객 중엔 “나 산 타러 수십 년 다녔는데, 감시원이 뭔 상관이냐”고 화내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땐 그냥 웃어요. 그러다 진짜 불 나면 나도 같이 타요.”

게다가 일부 주민들은 감시원을 구청 직원으로 오해하고 민원도 넣는다.
“산길에 쓰레기 쌓였다고 나한테 욕한 적도 있어요.
감시원은 ‘보고자’지 ‘청소부’는 아닌데, 우리가 웬만한 건 다 치워요.”

그는 산에서 조난자 구조, 쓰레기 수거, 실종 노인 발견 같은 일을 여러 번 겪었다.
한 번은 등산로 아래로 굴러떨어진 등산객을 발견해,
무전을 통해 119를 부르고, 직접 응급처치까지 한 적도 있다.
“그때는 내가 감시원이 아니라, 구조대가 된 느낌이었어요.”

그가 가장 고마움을 느낀 순간은 등산객이 귤 하나를 건네며 "수고 많으세요"라 했을 때였다.
“정말 별거 아닌 말인데… 그게 유일한 인정이더라고요.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고마웠어요.”

 

산불 감시원이 바라지 않는 산불

불이 나지 않도록 지킨 날들, 그가 바라는 건 아주 작은 인식 변화

산불 감시원은 보통 60세 이상이 많다.
최씨 역시 일용직 퇴직 후 산불 감시원으로 일하게 된 경우다.
“요즘 일자리도 없고, 몸은 아직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겨울 지나고 봄 되면 긴장이 확 올라와요.
불이 나면 진짜… 내가 막을 수 있을까 싶거든요.”

그는 6개월의 감시원 업무를 마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불이 안 난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있었던 구간은 한 번도 불이 안 났어요.
그러면 된 거예요. 그게 성과죠.”

그가 바라는 건 존중이나 보상보다는 ‘조금의 이해’다.
“산 입구에서 감시원이 뭐라고 하면 그냥 한 번쯤 귀 기울여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괜히 말하는 게 아니라, 다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는 내년에도 다시 산불 감시원 공고가 뜨면 도전할 생각이다.
“아직은 산에 오를 수 있으니까요.
누가 뭐래도 내가 지킨 건 산이고, 숲이고, 마을이에요.”

그는 오늘도 고요한 능선을 걷는다.
불이 안 나야 가장 좋은 하루를 보내는 사람.
산불 감시원 최씨는 가장 조용한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