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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지하철 종단 청소원 유씨의 하루: 하루의 끝에서 도시의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

전동차가 멈춘 시간, 누군가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하철이 멈추는 시각은 보통 자정 무렵이다.
플랫폼이 조용해지고, 마지막 열차가 종착역에 다다르면
도시는 비로소 하루를 마친 듯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순간이 하루의 시작이다.

그들은 전동차 문이 열리는 그 순간부터
하나하나의 손잡이를 닦고, 좌석 밑 쓰레기를 줍고,
바닥을 문지르며 수도권 지하철 전체의 ‘다음 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유정애(가명) 씨는 서울 지하철 5호선 차량기지에서 일하는 전동차 종단 청소원,
올해로 근무 8년 차를 맞은 60대 초반의 여성이다.
그녀는 지하철이 운행을 마친 후, 차량기지에 들어온 열차 내부를 전부 청소하고,
낙서나 이상 유무를 기록하는 일
을 맡는다.

“사람들이 다 떠난 다음에야 우리가 시작해요.
우린 조용히 일하지만,
우리가 없으면 도시가 다시 아침을 못 맞이하죠.”

오늘은 유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사람들이 잠든 사이, 도시의 땀방울을 닦아내는 청소원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밤 11시 50분, 전동차 한 칸이 새로운 현장이 된다

유씨의 근무는 매일 밤 11시에 차량기지로 출근하면서 시작된다.
5호선 종착역 근처에 위치한 기지에는
마지막 열차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청소팀 3~4명이 대기하고 있다.

그녀가 맡은 작업은 전동차 내부 청소다.
한 열차는 보통 8량으로 구성돼 있으며,
길이만 해도 180미터 이상,
좌석 수는 총 300개, 손잡이는 수백 개에 달한다.

“기차 들어오면 쉴 틈이 없어요.
문 닫기 전에 먼저 타서
쓰레기 확인하고, 바닥부터 훑어요.”

청소 순서는 천장 송풍구 → 손잡이 → 유리창 → 좌석 → 바닥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좌석 틈에 낀 먼지,
창틀에 붙은 껌,
바닥에 흘린 음료 자국 등은
손걸레와 전용 세제로 직접 문질러야 한다.

“겨울엔 손이 얼고, 여름엔 땀이 줄줄 나요.
근데 그 열차는 아침 5시에 다시 나가야 하니까
우린 밤새 한 치 오차 없이 청소해야 해요.”

청소보다 힘든 건 반복과 무관심

유씨는 지하철 내부 청소가 단순 노동으로만 보이는 게 가장 속상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냥 쓰레기 줍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의 안전과 청결을 책임지는 사람이에요.”

그녀가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은
비오는 날 진흙 묻은 발자국이 온 바닥에 남았을 때,
누군가 일부러 흘린 음식 쓰레기와 토사물,
좌석에 낙서를 남긴 흔적을 볼 때
다.

“누가 일부러 그런 건진 몰라도
창문에 욕설을 써 놓고 가거나,
좌석에 음료를 다 쏟아 놓고 간 걸 보면
정말 허탈해요.”

반복되는 작업,
밤낮이 바뀐 생활,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압박감.
그녀는 하루에 평균 6~7편성(약 50량)의 차량을 청소한다.

무릎 관절은 이미 좋지 않고,
손목에는 보호대를 찼다.
“손가락이 안 펴질 때도 있어요.
그래도 내일 또 해야죠.
청소 안 하면, 시민들이 첫차 타고 뭐라고 할 테니까요.”

깨끗함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유씨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치우는 게 시민의 쓰레기인데,
그걸 시민이 알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누군가는 ‘수고 많으십니다’ 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전동차를 탈 때
“누가 언제 이걸 이렇게 치웠는지”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그녀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이
단지 이동 수단이 아니라, 도시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지하철 타고 기분 더러우면
하루 기분 다 망치잖아요.
근데 우린 그 하루를 깨끗하게 시작하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가끔은 전동차 한 구석에 놓인 편지나 유실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유치원 아이가 ‘우리 엄마가 청소하는 사람이에요’ 하고
그린 그림이 있더라고요.
그거 보고 참… 오래 울었어요.”

그녀는 자신이 정리한 열차를
다음 날 수천 명이 타고 내린다는 걸 알기에
청소를 단순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그 열차는 내 손이 닿은 공간이에요.
그게 자부심이죠.”

깨끗하게 청소된 지하철을 이용하는 우리들 모습

유씨가 바라는 건 누군가의 하루에 작게 기여하는 것

유씨는 이제 은퇴를 몇 년 앞두고 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가끔은 출근길이 겁나기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은 자신이 이 도시의 일부로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이 일이 좋다고 했다.

“지하철은 멈췄지만,
도시는 계속 흐르잖아요.
그 흐름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단지 쓰레기를 덜 버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한 번만 더 조심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지하철은 다음 날 또 달릴 거고,
난 오늘도 그걸 준비하겠죠.”
오늘도 유씨는 새벽 3시가 넘어가도록
바닥을 한 번 더 닦고, 창틀의 얼룩을 지운다.

도시가 잠든 밤,
깨끗함의 첫걸음을 준비하는 사람.

그게 지하철 종단 청소원 유씨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