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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석면 제거 작업자 김씨의 하루: 폐를 지키기 위한 목숨 건 노동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다니는 학교, 방문하는 병원조차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석면 제거 작업자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낯설지만, 절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직업군이다. 김씨는 올해로 11년 차 석면 제거 작업자다. 그는 매일 전신 방호복을 입고, 폐쇄된 철거 건물 안에서 석면 가루를 마주한다. 이 작업은 단순한 철거가 아니다. 석면은 사람의 폐를 천천히 파괴하는 1급 발암물질이다. 그렇기에 이 일은 단순한 '철거 노동'이 아닌, 사람의 호흡을 지켜내는 고위험 보건노동에 가깝다.
김씨는 말한다. "이 일이 힘든 건 몸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 일이 '위험한 줄도 모른다는 거'예요." 오늘은 석면 제거 전문가 김씨의 하루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희생 위에 서 있는지를 들여다본다.

 

석면 제거 작업의 현실

김씨는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난다. 작업 현장이 도시 외곽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침부터 이동해야 한다. 그가 오늘 향하는 곳은 서울 노후 상가 건물의 4층 석면 천장 제거 현장이다. 이곳은 199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내장재 대부분에 석면 함유 성분이 확인되었다. 김씨는 작업복을 갈아입으며 철저히 점검한다. 방호복, 마스크, 고글, 장갑, 장화까지 어느 하나 허술하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쟁하러 가는 거예요. 적은 눈에 안 보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요.”
김씨가 말하는 '적'은 바로 석면 가루다. 석면은 5미크론 이하의 입자로, 흡입 시 폐에 들러붙어 수십 년간 잠복 후 암을 유발한다. 석면 제거는 단순히 부수는 일이 아니다. 습윤처리 → 밀폐 → 정전기 방지 → 진공흡입 → 샘플 측정 등의 복잡한 절차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건물 전체에 석면이 확산된다. 김씨는 현장에서 "절차를 생명처럼 지킨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실제로 그는 현장 동료들이 습윤 처리를 생략하거나, 환기창을 열고 작업하려는 걸 보고 크게 다툰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 순간은 그냥 귀찮고 힘드니까 대충하려고 하는데, 결국엔 누군가의 폐 속으로 들어가죠. 나는 그런 일에 동조하고 싶지 않아요.”

석면 제거 폐를 지키기 위한 목숨 건 작업의 현실

목숨을 건 노동의 대가

김씨의 한 달 수입은 평균 280만 원 정도다. 날씨, 계약 일정, 공사 난이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특별히 여유 있는 형편은 아니다. 그러나 김씨는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건강의 불안정함이라고 말한다.
“이 일은 지금 당장 안 아파도 불안해요. 10년 뒤에 폐암 판정받는다는 말, 농담이 아니거든요.”
석면은 장기 노출 시 중피종, 석면증, 폐암, 후두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모든 질병이 수십 년 뒤에야 증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김씨는 특수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지만, 진단을 받아도 석면 노출이 원인임을 입증하기가 어렵다.
"산재 판정 받기도 힘들어요. 병원에서도 원인을 특정 못 하니까요. 그리고 석면 작업자들은 정규직도 아니니까, 보호도 잘 안 돼요."

게다가 작업 환경 자체도 인체에 치명적이다. 작업 중에는 마스크를 벗을 수 없어 탈수 증상이 자주 나타난다. 여름엔 방호복 내부 온도가 40도 가까이 올라가기도 한다. 김씨는 몇 해 전, 한 동료가 더위로 실신했던 일을 잊지 못한다.
“그 친구는 쓰러졌고, 마스크도 벗겨졌어요. 우리는 그때 다 같이 침묵했죠. ‘괜찮을까’보다 ‘그 먼지 얼마나 들이마셨을까’가 걱정됐어요.”

사회의 무관심과 차별

김씨는 자신의 일이 '더럽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차별받는다고 느낀다.
작업을 마치고 방호복을 입은 채 나올 때면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 특히 코로나19 시기엔 방호복이 마치 전염병 환자의 상징처럼 보여, 사람들이 눈에 띄게 피했다고 한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지나갔다.
“사람들이 피하는 건 이제 익숙해요. 다만,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를 위한 일'이라는 걸 아무도 모르니까… 그게 제일 속상하죠.”

김씨는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자신들의 직업이 다뤄지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뉴스에서는 철거만 나오고, 그 안에 석면을 제거하는 사람은 빠져 있다.
“우리도 전문직이에요. 단순 철거가 아니라 기술이 필요한 일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건물 부수는 일’ 정도로 생각하죠.”

또한 석면 제거 작업은 대부분 하청업체 소속의 일용직 형태다. 고용 안정성도 없고, 복지 혜택도 거의 없다. 김씨는 한때 직업을 속인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소개팅 자리에서 뭐 하냐고 물어보길래, 그냥 건설 관련 일 한다고 말했어요. 솔직히 창피해서가 아니라, 말해도 아무도 몰라요. ‘석면이 뭐예요?’라는 반응이 더 많죠.”

김씨가 바라는 것

김씨는 이 일이 평생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잘 알고 있다. 실제로 그의 동료들 중 절반 이상은 50세 이전에 그만둔다. 건강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가래에 피가 섞여 있었어요. 바로 병원 갔는데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이 일이 내 몸을 망가뜨리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그날 이후부터 매 작업이 끝날 때마다 방호복을 벗으며 ‘내가 오늘은 괜찮았을까’ 자문한다고 한다.
김씨가 바라는 건 크지 않다. 단지, 석면 제거 작업이 더 이상 숨겨진 일이 아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뉴스에 나올 필요도 없고, 상을 받을 필요도 없어요. 그냥 사람들이 ‘그런 직업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안전하게 숨 쉰다’는 걸 한 번쯤 생각해줬으면 해요.”

최근 그는 초보 석면 작업자들에게 작업 안전 교육을 해주고 있다. 마스크 착용법부터 습윤 처리 요령, 스트레스 관리까지 알려준다. 그는 말한다.
“내가 지금 11년 일했잖아요. 이제 후배들한테 이 일의 위험성과 자부심, 둘 다 알려주고 싶어요. 위험하다고 해서 무시받을 일이 아니니까요. 꼭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는 오늘도 현장으로 간다. 사람들의 기억에는 없을지 몰라도, 김씨와 같은 사람들이 지키는 ‘숨 쉴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