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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외 직업군 인터뷰 기록

공공 체육시설 샤워실 관리원 정씨의 하루: 땀의 끝을 정리하는 사람

사람들은 땀을 흘리기 위해 체육관을 찾는다.
스트레칭을 하고, 러닝머신을 달리고, 근력운동을 한다.
그러나 그 땀이 마무리되는 장소는 대개 샤워실과 탈의실이다.
이용자들이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머무는 그 공간 역시 누군가가 청소하고 관리하고 정리한다.

정용남(가명) 씨, 62세.
서울시 ○○구민체육센터에서 샤워실 및 탈의실 관리 업무를 맡은 지 5년째.
그는 물기 제거, 세면대 청소, 수건 수거, 슬리퍼 정리, 분실물 정리, 온수 점검까지 도맡는다.

“운동은 자기 힘으로 끝내지만,
깨끗한 마무리는 누군가가 도와줘야 가능한 거예요.
나는 그 마무리를 맡은 사람이에요.”

오늘은 정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운동 뒤 남겨진 공간을 매일 새롭게 준비하는 손의 이야기를 기록해본다.

 

공공 체육시설 샤워실 땀을 정리하는 사람

오전 5시 30분, 체육관보다 먼저 물기를 닦는 사람

정씨의 하루는 체육센터 개장 한 시간 전인 새벽 5시 30분에 시작된다.
샤워실과 탈의실은 전날 마지막 이용 이후 누구도 손대지 않은 공간.
그는 도착하자마자 바닥 물기와 거울, 세면대 주변을 점검한다.

“샤워실은 밤새 수증기와 물기 때문에 곰팡이나 물때가 생기기 쉬워요.
매일 시작은 ‘물 닦기’부터죠.”

그는 수건 수거함을 비우고, 젖은 수건을 세탁실로 옮긴다.
공공 체육시설에서는 수건을 공용으로 제공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세탁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날 준비된 수건은 총 240장.
그는 수건을 종류별로 개어 탈의실 수납함에 비치하고,
슬리퍼는 매일 소독 스프레이를 뿌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말린다.

“냄새보다 ‘축축한 느낌’이 더 불쾌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항상 먼저 만질 바닥부터 신경 써요.”

 

샤워실은 물이 흐르는 곳이 아니라 신뢰가 머무는 공간이다

운동을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샤워실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정씨의 눈과 귀는 더욱 민감해진다.
물이 터지고, 문이 열리고 닫히고, 수건이 사라지고,
때때로 누군가의 물건이 분실되거나, 온수가 갑자기 식기도 한다.

“사람들이 옷을 벗는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더 신뢰가 있어야 하고, 눈에 보이지 않게 신경 써야 해요.”

정씨는 틈틈이 슬리퍼 위치, 세면대 상태, 머리카락 빠짐 여부를 체크하며
사람들의 이용 패턴을 몸으로 익힌다.

가장 바쁜 시간은 오전 6시8시와 저녁 6시9시.
그는 이 시간대에 거의 한 자리에 앉아있지 못한다.
“샤워실에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내가 먼저 알아야 해요.”

그는 수압 저하, 물때, 샤워기 노즐 고장, 비누통 비움까지
하루 10건 이상의 크고 작은 이슈를 처리한다.

 

물기 없는 바닥과 말라 있는 슬리퍼가 전부는 아니다

샤워실은 단지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이 마무리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정씨는 말한다.
“운동 끝나고 씻을 때, 조용히 눈 감고 있는 분들 많아요.
그 시간은 그냥 청결을 위한 시간이 아니에요.”

그는 이용자 중 혼자 말없이 운동하러 오는 노인들,
하루에 2번 오는 직장인들, 수건을 꼭 같은 자리에 두는 중년 여성
들을 기억한다.

“매일 똑같은 루틴을 가진 분들은
샤워실도 자기 리듬의 일부처럼 사용해요.
나는 그 리듬을 망치지 않게 조심해야 해요.”

그는 가끔씩
샤워실 벤치에 앉아 머물다 가는 어르신을 그냥 두고 지켜본다.
누구도 그를 쫓지 않지만, 정씨는 한발짝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으로 남는다.

 

정씨가 바라는 건, 나가기 전의 5분을 함께 기억하는 일

정씨는 사람들에게 ‘샤워실은 그냥 지나치는 공간’이지만
자신에게는 하루의 대부분이 머무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운동할 때보다
운동 끝나고 씻을 때, 훨씬 무방비해져요.
나는 그때, 최대한 조용히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그는 쓰레기통 옆에 벗어놓은 슬리퍼,
락커 안에 남겨진 수건,
샤워기 옆에 떨어진 린스 뚜껑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오늘도 다음 사람을 기다린다.

“사람들은 잊고 가지만,
그 공간은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그 기억을 매일 다시 정리해요.”

샤워실은 땀이 끝나는 곳이고,
정씨는 그 땀의 끝을 조용히 닦아내는 사람이다.

그게 공공 체육시설 샤워실 관리원 정씨의 하루다.

 

나는 샤워실의 관리인이 아니라, 사람의 리듬을 지키는 사람이다

정씨는 자신이 단순히 물기만 닦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을 “샤워실의 리듬 관리자”라고 표현했다.

“샤워실은 하루를 끝내는 리듬, 혹은 하루를 시작하는 리듬이 머무는 곳이에요.
나는 그 리듬이 망가지지 않도록 매일 조용히 뒤를 지킬 뿐이에요.”

그는 수건의 개수, 슬리퍼의 방향, 바닥 물기의 범위까지
모든 걸 이용자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체크한다.
가끔은 땀에 젖은 얼굴로 인사 없이 지나치는 사람에게도
속으로 “오늘 고생하셨어요”라고 말한다고 한다.

“내가 쌓은 건 ‘깨끗함’이 아니라, ‘예상 가능한 질서’예요.
사람들이 익숙한 환경에서 안심하고 씻고 갈 수 있도록
나는 늘 같은 순서로, 같은 시간에 정리해요.”

샤워실은 하루에도 수백 명이 다녀가지만,
그 뒤에는 늘 같은 사람이 같은 자리에, 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는 사실.
정씨는 그 반복 속에 있는 자신만의 가치를 조용히 쌓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