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54)
재래시장 냉장고 수리 기사 최씨의 하루: 식재료를 지키는 숨은 기술자 전통 시장은 음식 냄새, 사람들 목소리, 물건 고르는 손끝으로 살아 있는 공간이다.그러나 이 생생한 풍경 뒤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기술의 작동이 있다.고기점의 정육 냉장고, 생선가게의 수조 냉각기, 반찬가게의 쇼케이스, 김치 냉장고…이 모든 장비들이 멈추지 않도록 24시간 대비하며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최종석(가명) 씨, 55세.서울 ○○구에 위치한 전통 재래시장에서 냉장·냉동 장비 전문 수리 기사로 18년째 일하고 있다.그는 전화 한 통이면 곧장 시장 구석으로 달려가,철제 뚜껑을 열고, 누수와 냉매를 확인하고, 모터를 교체하며, 시장 상인의 하루를 복구한다.“냉장고는 멈추면 장사가 멈춰요.그래서 우리는 시간하고 싸워요.‘지금 빨리’가 제일 많은 말이에요.”오늘은 최씨의 하루를 따라가며재래시장의 음식 ..
공공 체육시설 샤워실 관리원 정씨의 하루: 땀의 끝을 정리하는 사람 사람들은 땀을 흘리기 위해 체육관을 찾는다.스트레칭을 하고, 러닝머신을 달리고, 근력운동을 한다.그러나 그 땀이 마무리되는 장소는 대개 샤워실과 탈의실이다.이용자들이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마지막으로 머무는 그 공간 역시 누군가가 청소하고 관리하고 정리한다.정용남(가명) 씨, 62세.서울시 ○○구민체육센터에서 샤워실 및 탈의실 관리 업무를 맡은 지 5년째.그는 물기 제거, 세면대 청소, 수건 수거, 슬리퍼 정리, 분실물 정리, 온수 점검까지 도맡는다.“운동은 자기 힘으로 끝내지만,깨끗한 마무리는 누군가가 도와줘야 가능한 거예요.나는 그 마무리를 맡은 사람이에요.”오늘은 정씨의 하루를 따라가며운동 뒤 남겨진 공간을 매일 새롭게 준비하는 손의 이야기를 기록해본다. 오전 5시 30분, 체육관보다 먼..
구청 민원실 문서 스캔 담당 윤씨의 하루: 행정의 디지털 뿌리를 만드는 사람 디지털 시대라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은 종이에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는다.출생신고서, 인감증명 신청서, 주민등록 정정신고서, 세대 분리 동의서…그 수많은 종이들은 어디로 갈까?누군가는 그 종이를 받아들고, 확인하고, 정확히 스캔한 뒤, 디지털로 기록해 남긴다.윤경순(가명) 씨, 60세.서울 ○○구청 민원실에서 문서 스캔 및 전자기록화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출근부터 퇴근까지 그녀의 책상 앞엔오늘 하루 시민이 남기고 간 모든 서류가 차곡차곡 쌓인다.“사람들은 그냥 접수하고 가지만,그 종이는 저한테 한 번 더 들러요.그리고 정확히, 아주 조심스럽게 디지털로 남겨져야 해요.”오늘은 윤씨의 하루를 따라가며종이 위 행정을 디지털로 이어붙이는 사람의 조용한 일상을 기록해본다. 오전 8시 30분, 하루가 시작되기 ..
시립 도서관 정리사서 김씨의 하루: 책이 서가에 꽂히기 전, 사람의 손을 거치는 시간 이 우리 손에 닿기까지, 누군가 그 자리를 만들어 놓는다누군가는 도서관을 ‘책을 찾는 곳’이라고 말한다.누군가는 ‘조용한 공간’이라고 한다.하지만 정리사서 김수진 씨에게 도서관은 조금 다르다.그녀에게 도서관은 책이 머물 자리를 설계하는 곳,그리고 그 자리에 머무르도록 돕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다.김수진(가명) 씨는 서울시립 ○○도서관에서 11년째 정리사서로 근무 중이다.대출 창구에서 책을 건네는 일도, 추천 도서를 고르는 일도 그녀의 일이 아니다.대신 그녀는 책이 도서관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서가에 놓이기까지의 모든 흐름을 손으로 직접 다룬다.“많은 사람들이 책을 ‘꺼내는 것’만 기억하죠.하지만 그 책이 ‘그 자리에 놓인 이유’를 아는 사람은 드물어요.그 이유를 만드는 사람이 저예요.”오전 8시 50분,..
학교 야간당직 보안원 박씨의 하루: 아이들이 떠난 공간을 지키는 사람 교문이 닫힌 뒤에도 학교는 계속 숨을 쉰다해질 무렵, 운동장에 남은 공이 굴러가고아이들의 발소리가 하나둘 사라질 때,학교는 조용히 하루의 마지막 숨을 내쉰다.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서 눈을 뜨는 사람도 있다.교문을 다시 잠그고, 복도를 순찰하며, 낯선 인기척을 막고,그 공간을 하루 종일 지켜내는 한 사람의 하루가 시작된다.박용덕(가명) 씨, 63세.경기도의 한 공립 중학교에서야간당직 보안원으로 6년째 근무 중이다.그는 오후 5시 30분부터 다음 날 아침 7시 30분까지,학교 안팎을 순찰하고,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며, 비상상황에 대응하는 일을 한다.“사람들은 학교가 문 닫으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그 시간부터 내 하루는 시작이에요.학교는 밤에도 계속 지켜져야 하니까요.”오늘은 박씨의 하루를 따라가며학생들이 없..
마을버스 배차관리원 정씨의 하루: 시간 위를 달리는 차량을 조율하는 사람 도시의 분 단위 이동은 누군가의 계산에서 시작된다출근길, 통학길, 장보러 가는 길.마을버스는 짧지만 중요한 구간을 책임지는 도시의 모세혈관 같은 존재다.길고 복잡한 지하철보다 빠르고,택시보다 경제적이며,무거운 짐을 들고 걷는 사람들에게는 버스 정류장까지의 마지막 연결선이 된다.그런 마을버스가 정해진 시간에 멈추지 않고 돌아가기 위해서는,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시간으로 배차 상황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정재만(가명) 씨, 57세다.그는 서울 강북의 한 마을버스 업체에서전체 노선의 배차 간격 관리, 차량 정비 보고, 운전자 휴게 시간 조율, GPS 시스템 점검, 교통 상황에 따른 운행 조정을8년째 맡고 있는 마을버스 배차관리원이다.“버스는 그냥 굴러가는 게 아니에요.뒤에서 시간과 상황..
아동센터 조리사 김씨의 하루: 아이들의 밥을 짓는 손 누군가의 하루는 밥 한 그릇으로부터 시작된다우리는 종종 밥을 ‘그저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아이들에게 밥은 안정이고, 위로고, 힘이 되는 시간이다.특히 집에서 제대로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아이들에게학교 밖에서 제공되는 따뜻한 한 끼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마음을 살피는 기회가 된다.김명자(가명) 씨, 61세.경기도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방과후 급식 조리와 배식, 식자재 관리, 알레르기 확인, 잔반 정리, 조리실 위생까지전부 혼자 책임지는 조리사로 8년째 근무하고 있다.“나는 요리사가 아니에요.그냥 이 아이들이 밥 굶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이에요.”오늘은 김씨의 하루를 따라가며아이들이 웃으며 밥을 먹기 위해 묵묵히 하루를 준비하는 손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오전 9시, 하루의 장보기는 조용한 전쟁처럼 시작된..
공공목욕탕 탕비실 관리인 윤씨의 하루: 따뜻함 뒤를 묵묵히 지키는 사람 수증기 가득한 공간의 온도는 누가 맞추는가몸을 씻고, 땀을 흘리고, 피로를 풀기 위해 사람들은 대중목욕탕을 찾는다.뜨거운 물과 증기, 차가운 냉탕, 뽀얀 욕실 타일 위로사람들의 하루가 녹아들고 흘러간다.그러나 그 따뜻한 공간을 가장 먼저 열고, 가장 늦게 닫는 사람은욕탕 한쪽, 보이지 않는 문 안쪽 탕비실에 있다.윤호길(가명) 씨, 59세.서울 중부 지역의 한 시립 공공목욕탕에서탕비실 온수 시스템, 소독시설, 배수 상태, 보일러 운영, 락스 희석, 수온 유지, 기계 점검 등을 담당하는탕비실 관리인으로 10년째 근무 중이다.“사람들은 그냥 물이 나오는 줄 알아요.근데 그 온도를 맞추려면 몇 시간 전부터 움직여야 해요.”오늘은 윤씨의 하루를 따라가며뜨거운 수증기와 배관 뒤에서 하루를 맞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