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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양봉가 김씨의 하루: 빌딩 숲 속에서 꿀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 벌이 사라진 도시에서 누군가는 벌을 지키고 있다도시는 점점 더 높아지고, 빠르게 돌아간다.콘크리트로 덮인 빌딩 사이, 사람들은 꽃이 피는지도, 새가 우는지도 모른 채 바쁘게 걷는다.그런 도시의 중심 한복판에서, 작은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바로 도시 양봉가다.양봉은 보통 농촌이나 산속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하지만,최근 몇 년 사이 도시의 옥상이나 공원, 폐교, 공공기관의 유휴 공간을 활용한 ‘도시 양봉’이 늘어나고 있다.꿀을 얻는 목적을 넘어서, 생태계 보존, 도시 생물 다양성 회복, 환경교육이라는 더 큰 의미를 가진 직업으로 자리잡는 중이다.김재훈(가명) 씨는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구청 건물 옥상에서 도시 양봉을 시작한 지 5년째인 40대 중반의 남성이다.처음엔 단순한 취미였지만, 지금은..
수목장 관리인 박씨의 하루: 나무 아래 잠든 이들을 돌보는 사람 조용한 숲, 그곳엔 매일 삶과 죽음이 함께한다사람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그리고 그 흙 위에 자라는 한 그루의 나무가,이제는 사람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수목장은 말 그대로 ‘나무 아래에 고인을 모시는 묘역’이다.묘지 대신 숲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나며,최근 몇 년 사이 환경적 가치와 생명 존중의 의미로 주목받는 장례 방식이 되었다.하지만 그런 자연장지를 매일 관리하고, 비석 없는 묘역을 정비하며, 고인을 돌보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박영호(가명) 씨는 충청 북부의 한 공공 수목장지에서 6년째 관리인으로 근무 중인 60대 중반의 남성이다.그는 매일 아침, 나무와 함께 잠든 이들의 묘역 확인, 헌화 정리, 조경 손질, 유가족 안내, 자연 훼손 방지 등의 업무를 맡는다.“비석이 ..
사찰 공양주로 살아온 8년: 조용한 부엌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향내보다 먼저 퍼지는 따뜻한 밥 냄새사찰은 조용하다.종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공간.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도 매일 새벽 가장 먼저 깨어나는 사람은 있다.바로 부엌에서 공양을 준비하는 사람, 공양주다.공양주는 절에서 스님들과 방문객, 수행자, 때로는 대중들을 위해 매 끼니의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이다.단순히 식사를 마련하는 일을 넘어, 노동이 수행이 되고, 정성이 기도가 되는 자리에서 일하는 존재다.최영자(가명) 씨는 전북 남원의 한 산사에서 공양주로 8년째 봉직 중인 60대 후반의 여성이다.도시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다 은퇴 후 산사로 들어와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스님들의 공양을 준비하고, 절에서 나는 재료로 정갈한 채식을 만든다.그녀는 말한다.“이 부엌은 조용하지만, 여기가 사찰의 심장..
폐가 철거 작업자 김씨의 하루: 붕괴 직전의 공간을 정리하는 사람 사람이 떠난 자리를 마지막으로 지나는 사람들도시의 시간은 늘 새로운 것만 향하는 듯 보인다.하지만 그 이면엔 반드시 사라지는 무언가가 있다.재개발 구역, 낡은 상가, 방치된 주택.한때는 누군가의 삶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담장이 허물어지고 창문은 깨진 채도시의 뒤편에 조용히 놓인 공간이 있다.그곳을 마지막으로 마주하고,무너질 준비가 된 건물 속을 정리하고 해체하는 사람이 있다.김민수(가명) 씨는 인천 지역에서 폐가 철거 작업을 9년째 해오고 있는 50대 중반의 건축 철거 기술자다.주로 재개발이나 도시정비사업 이전, 혹은 방치된 위험주택 해체 작업을 맡아폐기물 분리, 구조물 제거, 위험물 정리, 현장 안전조치 등을 담당한다.“사람들은 그 집을 한 번쯤은 스쳐지나갔을지도 몰라요.근데 그 집이 완전히 사라지기..
분리수거장 관리인 이씨의 기록: 뒤섞인 쓰레기 속 질서를 세우다 사람들이 버린 것들을 다시 세우는 사람아파트 단지에서 분리수거장은 하루 중 가장 무질서한 공간이 된다.누군가는 재활용과 쓰레기를 구분하지 않고 버리고,누군가는 야심한 시각에 몰래 음식물이나 가구 조각을 섞어 놓고 간다.아침이면 박스, 페트병, 종이, 비닐, 쓰레기가 뒤엉켜 ‘환경’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풍경이 펼쳐진다.하지만 누군가는 그 혼란을 정리하고, 뒤섞인 물건들 속에서 다시 질서를 세운다.이영복(가명) 씨는 경기 남부의 한 1,000세대 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분리수거장 관리인으로 7년째 근무 중인 68세 남성이다.매일 아침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는 단지 내 3곳의 분리수거장을 돌며 재활용품 분류, 불법 투기 단속, 적재 정리, 민원 대응을 맡는다.그는 말한다.“환경이 지켜지는 게 아니라,..
지하철 선로 보수원 박씨의 하루: 전동차 멈춘 밤에야 시작되는 일 모든 전동차가 멈추는 순간, 누군가의 일이 시작된다서울 지하철은 하루 평균 약 800만 명이 이용한다.수많은 사람들이 아침과 저녁,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이동하지만, 그들이 지나가는 선로 위에 매일 밤 누군가가 엎드려 있는 일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전동차가 모두 운행을 마친 후, 지하철 선로 보수원들의 하루가 시작된다.박경수(가명) 씨는 서울 지하철 5호선 유지보수팀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 선로 보수원이다.그는 매일 밤 11시 40분부터 새벽 4시 반까지, 열차가 완전히 멈춘 시간을 이용해 레일, 침목, 체결장치, 전선 등을 정비한다.그는 말한다.“우리가 철로에 들어가면, 시간은 곧 생명이에요.딱 새벽 4시 반까지만 작업하고, 그 전엔 다 나와야 해요.안 그러면 열차가 그대로 들어옵니다.”오늘은 박..
산불 감시원으로 일한 6개월: 불이 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하루 불이 나지 않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그 산을 매일같이 지켜보며 ‘아무 일도 없기를’ 기도하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산불 감시원.이들은 봄과 가을, 산불 발생 위험이 가장 높아지는 계절마다 전국 각지 산에 배치되어불씨 하나라도 빨리 발견하고, 번지기 전에 막기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다.최진섭(가명) 씨는 올해 61세.2024년 봄철, 강원도 평창군청 소속으로 산불 감시원으로 6개월간 근무했다.그는 매일 해가 뜨기 전에 출근해 산자락을 오르내리며, 망원경으로 능선을 훑고,산길을 따라 다니며 불씨, 연기, 무단 입산, 쓰레기 소각 행위 등을 감시했다.“사람들은 우리가 일 안 한다고 생각해요.근데 아무 일도 없게 만드는 게 우리 일이에요.”오늘은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
고물상 수거인 박씨의 이야기: 쓰레기 속에서 삶을 줍다 거리의 끝자락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른 새벽, 도시의 골목 어귀에서 뭔가를 싣고 끄는 바퀴 소리가 들린다.알루미늄, 종이박스, 플라스틱, 고철… 사람들은 버렸지만 누군가에겐 아직 '쓸모'가 남은 것들이다.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시간,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 길 위에서 고물 수거인들은 하루를 시작한다.박종태(가명) 씨는 올해 66세.서울 동작구 일대에서 고물 수거 일을 한 지 11년째 되는 어르신이다.그는 하루 10시간 넘게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종이와 플라스틱, 고철을 모은다.‘고물상 수거인’, 혹은 ‘폐지 줍는 노인’으로 불리지만, 그 안에는 단순 노동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현실이 있다.박씨는 말한다.“이게 쓰레기라고요? 아니요. 이건 내가 오늘 먹고살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오늘은 박씨의 하루를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