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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발전기 정비기사 박씨의 하루: 전기가 끊긴 순간을 대비하는 사람 불이 꺼진 순간, 그때 누군가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우리는 불이 켜진 공간에서 살아간다.전등, 엘리베이터, 냉장고, 인터넷, 자동문, 감시장비.이 모든 것은 ‘전기’라는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작동한다.하지만 그 흐름이 멈추는 순간,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전기는 곧 생명이라는 것을.정전은 생각보다 더 자주 일어난다.번개, 전선 단선, 노후 설비, 과부하, 누전, 지진, 화재 등한순간의 사고가 병원을 멈추고, 관제센터를 끊고, 공항을 마비시킬 수 있다.이때 작동하는 것이 바로 비상발전기(Backup Generator)다.그리고 그 발전기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매일 점검하고 돌보는 사람들,그중 한 명이 오늘의 주인공이다.박재민(가명) 씨, 45세.서울 서남권 전력안전관리업체에서 근무 중인 비상발전..
시립 납골당 관리인 조씨의 하루: 침묵 속에서 수천 명의 이름을 지키는 사람 죽음의 끝이 아니라, 기억의 시작을 지키는 자리도시 외곽의 한적한 언덕,잔잔한 바람과 정숙한 기운이 감도는 건물.그곳은 생이 끝난 이들의 이름이 머무는 공간, 시립 납골당이다.거대한 벽면엔 작은 위패와 사진, 봉안함들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그 아래엔 매일같이 그곳을 정돈하고, 지키는 한 사람이 있다.조현수(가명) 씨, 61세.서울 근교 시립 봉안당에서 봉안함 관리 및 유가족 응대, 시설 청결, 제례 공간 운영을 담당하는납골당 관리인이다.그는 12년 동안 수만 명의 마지막 주소를 지켜왔다.“여기 있는 분들은 죽었지만,누군가에겐 여전히 아버지고, 딸이고, 친구죠.내 일은 그 기억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오늘은 조씨의 하루를 따라가며죽음의 곁에 있지만, 삶을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항만 하역 노동자 정씨의 하루: 거대한 철의 덩어리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 컨테이너 한 개, 그 뒤엔 수십 명의 손이 있다항구는 항상 분주하다.거대한 선박이 도크에 접안하고,수십 미터 위에서 크레인이 움직이며하늘을 가릴 듯한 컨테이너가 하나 둘 땅에 내려온다.수출입의 최전선인 이곳에서,도시의 경제와 물류가 매일 새로 시작된다.그 복잡하고 위험한 작업 뒤에는하루 10시간 넘게 땀 흘리는 하역 노동자들이 있다.그들은 수만 톤짜리 선박 아래에서 화물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적재하며,철과 기계로 이루어진 세계 안에서 묵묵히 움직인다.정영철(가명) 씨는 부산항 인근 한 민간 하역업체에서 근무하는 55세의 항만 하역 노동자다.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일한 지 18년 차,지게차, 로더, 크레인 작업 보조, 수동 하역까지모든 단계의 하역을 경험해온 베테랑이다.“우린 눈에 띄지 않아요.하지만 이 항..
지하철 종단 청소원 유씨의 하루: 하루의 끝에서 도시의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 전동차가 멈춘 시간, 누군가는 움직이기 시작한다지하철이 멈추는 시각은 보통 자정 무렵이다.플랫폼이 조용해지고, 마지막 열차가 종착역에 다다르면도시는 비로소 하루를 마친 듯 보인다.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순간이 하루의 시작이다.그들은 전동차 문이 열리는 그 순간부터하나하나의 손잡이를 닦고, 좌석 밑 쓰레기를 줍고,바닥을 문지르며 수도권 지하철 전체의 ‘다음 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유정애(가명) 씨는 서울 지하철 5호선 차량기지에서 일하는 전동차 종단 청소원,올해로 근무 8년 차를 맞은 60대 초반의 여성이다.그녀는 지하철이 운행을 마친 후, 차량기지에 들어온 열차 내부를 전부 청소하고,낙서나 이상 유무를 기록하는 일을 맡는다.“사람들이 다 떠난 다음에야 우리가 시작해요.우린 조용히 일하지만,우리가 없으..
지하 송수관 점검원 이씨의 하루: 도시를 흐르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는 그 순간, 이미 누군가가 일하고 있다수돗물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흘러나온다.세수를 하거나, 밥을 지을 때, 설거지를 하거나, 화장실을 사용할 때도우리는 단 한 번도 ‘물이 어디서 오고 어떻게 도착하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하지만 그 흐름 뒤에는도시 지하 수십 미터 아래, 거미줄처럼 얽힌 송수관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그들은 땅속에서 수도관을 점검하고, 균열을 찾고, 낡은 배관을 교체하며도시의 혈관이라 불리는 물길을 지켜낸다.이인규(가명) 씨는 서울시 수도사업본부 위탁관리업체에 소속된 지하 송수관 점검원으로 12년째 근무 중이다.그는 주로 밤 시간대와 물 사용량이 적은 새벽 시간대에 도심 지하로 들어가관로 상태 점검, 누수 탐지, 밸브 정비, 수압 측정, 긴급 복구작업 등을 맡..
생활폐기물 수집차 동승자 김씨의 하루: 새벽 어둠 속을 달리는 도시의 청소 손길 우리가 눈뜨기 전, 누군가는 하루를 거의 끝낸다도시는 매일 아침 깨끗한 얼굴로 하루를 시작한다.도로 위엔 쓰레기 하나 없이 정돈돼 있고,아파트 단지의 분리수거장은 비워져 있으며,상가 앞에는 전날 밤 쌓였던 음식물 쓰레기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그 평온한 아침은 누군가의 새벽 노동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새벽 3시에서 5시, 우리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무렵도시 곳곳을 누비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이들이 있다.그리고 그 수거차의 운전자 옆에, 직접 뛰어내리며 쓰레기를 싣는 동승자가 있다.김세훈(가명) 씨는 인천 남동구 지역에서 생활폐기물 수거차의 동승자로 6년째 근무 중인 50대 중반의 남성이다.그는 새벽마다 골목골목을 돌며 종량제 봉투, 음식물 쓰레기, 마대자루, 대형 폐기물을손으로 하나씩 들고 수거..
자동심장충격기(AED) 점검원 박씨의 하루: 생명이 꺼지기 전, 버튼 하나를 지키는 사람 생사를 가르는 단 3분, 그 준비는 누가 하고 있을까?사람이 갑자기 쓰러졌을 때,골든타임은 단 3분.그리고 그 3분 안에 생사를 가를 수 있는 단 하나의 기계가 있다.바로 자동심장충격기, AED다.지하철역, 체육관, 학교, 관공서, 아파트 단지, 공항 등우리는 어딜 가든 AED 기기를 마주친다.하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은 그 장비가 ‘작동하는지’ 조차 모른다.혹은, 그걸 누가 관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박상일(가명) 씨는 서울시 위탁 의료기기 점검 업체에 소속된 AED 점검원이다.그는 하루에 약 20여 개소의 AED 설치 현장을 방문해배터리 상태 확인, 패드 교체, 작동 테스트, 응급 매뉴얼 부착, 고장 보고 등의 작업을 수행한다.“누가 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막상 필요할 땐 제대로 작동해야 하..
헌혈버스 간호사 이씨의 하루: 멈춰선 차 안에서 흐르는 생명 바퀴 위의 병원, 그 안에서 생명이 이어진다매일 아침, 붉은 십자가가 붙은 작은 버스가 도심 곳곳에 정차한다.작은 상가 옆, 학교 운동장 옆, 대기업 주차장 한켠.사람들은 그 앞을 무심히 지나치지만, 그 안에서는 매일 수십 명의 생명을 위한 준비가 이뤄지고 있다.이동식 헌혈버스, 그리고 그 안에서 묵묵히 일하는 간호사들이 있다.이씨(가명)는 대한적십자사 산하 헌혈버스에서 근무 중인 38세의 간호사다.그녀는 서울과 수도권 일대를 돌며 하루 평균 40~60명의 헌혈자를 맞이하고,문진, 혈압·맥박 측정, 채혈, 응급상황 대응, 채혈기 정비, 기록 정리 등헌혈 전 과정을 총괄하는 책임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작은 버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지만,그 안에 흐르는 건 진짜 생명이에요.우리는 매일, 그 생명의 한 부..